“황우석 교수가 만들었다고 주장한 줄기세포는 현재 찾을 수 없고, 만들어졌다는 증거도 찾지 못했다.”
2005년 12월 29일 황우석 당시 서울대 교수의 연구부정 의혹을 조사한 ‘서울대 조사위원회’가 밝힌 내용이다. 이는 그해 11월 ‘황우석 연구팀’이 연구용 난자를 매매했다는 의혹에서 출발한 각종 연구윤리 위반 논란의 마침표를 의미했다. 국민은 ‘거대한 거짓말’에 충격을 받았고, ‘차세대 먹을거리’로 큰 기대를 모았던 한국 바이오산업은 이후 급격히 침체의 늪에 빠졌다.
꼭 10년이 지난 2016년 초, 한국에는 다시 ‘바이오 열풍’이 불고 있다. 이번엔 10년 전 ‘스타’ 한 명이 독식했던 관심을 관련 산업 전반이 나눠 가진 모양새다. 김선영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가 1996년 창업한 바이오벤처 바이로메드는 2015년 12월 초 미국 기업에 유전자를 이용한 면역치료제 관련 기술을 수출하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바이로메드에 따르면 자체 개발한 ‘키메라 항원 수용체(CAR-T)’를 환자의 면역세포에 주입할 경우, 이 세포가 스스로 암세포를 찾아내 치료한다. 미국 바이오기업 블루버드바이오는 이 기술을 최대 4800만 달러(약 556억 원)에 사들이기로 했다. 계약금 100만 달러(약 12억 원)를 먼저 내고, 신약 개발 성공 단계에 따라 추가금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업계-정부 한목소리로 ‘바이오산업’ 강조
2006년 창업한 바이오벤처 신라젠의 경우 ‘백시니어 바이러스’(우두 바이러스) 유전자를 이용한 체내 암세포 탐지 기술을 바탕으로 항암제 ‘펙사벡(Pexa-Vec)’을 개발해 눈길을 끌고 있다. 펙사벡은 2015년 4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임상시험 3상 허가를 받았고, 이 성과 등으로 신라젠은 2015년 정부가 시작한 ‘바이오의약품 글로벌 진출사업’ 대상에 선정됐다. 정부는 신라젠을 비롯해 코오롱생명과학㈜, 제넥신, 메디포스트 등 4개 바이오기업에 총 400억 원을 지원해 해외 진출을 도울 계획이다.미래창조과학부(미래부) 관계자는 “2024년이 되면 세계 바이오시장이 현재 한국의 3대 수출 효자산업인 반도체, 화학, 자동차시장 규모를 모두 합친 것보다 더 커질 것”이라며 “바이오기술은 정보기술(IT)에 이어 우리 경제를 살릴 구원투수”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정부는 2015년 한 해에만 3400억 원에 이르는 지원금을 바이오산업 육성에 쏟아부었고 미래부와 보건복지부, 산업통상자원부, 식품의약품안전처 등 4개 관련 부처가 함께 ‘바이오헬스 미래 신산업 육성’ 정책을 펴기로 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2015년 10월 미국 방문 당시 ‘경제사절단’에 최태원 SK그룹 회장, 박상진 삼성전자 사장 등 대기업 경영인뿐 아니라 김선영 바이로메드 연구총책임자, 이우석 코오롱생명과학 대표, 서정선 서울대 의대 유전체의학연구소장 등 바이오 및 제약 분야 관계자를 대거 포함해 눈길을 끌었다.
업계에 따르면 2015년 11월 초에는 조신 미래전략수석과 양성광 과학기술비서관, 권석민 미래부 생명기술과장 등 바이오산업과 관련된 정부 내 핵심 관계자들이 줄기세포업체를 찾아 현황을 살펴보고 애로사항 등을 듣기도 했다. 정부의 바이오산업 육성 의지가 강함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이에 따라 일부에서는 1990년대 말 외환위기 이후 20년 넘게 ‘미래 먹거리’로 불린 바이오산업이 드디어 ‘오늘 먹거리’가 되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기대가 커지면서 돈도 몰리고 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2015년 한 해 동안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수익률을 기록한 펀드는 국내 제약 및 바이오 기업에 투자하는 ‘미래에셋타이거(TIGER)헬스케어 ETF’였다. 코스닥 시장도 1년 내내 제약 및 바이오 분야 기업이 주도했다. 퇴행성관절염에 대한 유전자치료제 ‘티슈진C’를 개발해 2015년 미국 FDA 3상 임상시험 허가를 받은 코오롱생명과학의 주가가 연초 4만 원대 후반에서 7월 30만 원대까지 뛰어오른 게 한 사례다. 2015년 말 현재 코스닥 시가총액 상위 10개사 가운데 바이오벤처는 셀트리온, 메디톡스, 바이로메드, 코미팜 등 4곳이다. 한국벤처캐피탈협회에 따르면 국내 벤처캐피털들의 바이오·의료 분야 투자 규모는 2013년 1463억 원에서 2014년 2928억 원으로 증가했다. 반면 같은 기간 정보통신기술(ICT) 분야 투자는 2955억 원에서 1705억 원으로 줄었다.
규제완화, 생명윤리법 개정
이처럼 바이오산업이 ‘활황’을 거듭하는 데는 정부의 규제 완화도 한몫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보건복지부는 2015년 11월 첨단의약품의 경우 안전성과 유효성 등이 모두 입증돼 최종적으로 판매 허가를 받기 전이라도 환자에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의약품 상용화를 앞당겨 바이오헬스 산업을 신성장동력으로 키워나가려는 정부의 의지를 담은 것”이라는 게 보건복지부 관계자의 설명이다.국회도 이에 화답하고 있다. 2015년 12월 국회는 본회의를 열고 유전자치료 기준을 대폭 완화하는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의결했다. 종래 우리나라에서는 질환이 ‘생명을 위협하거나 심각한 장애를 초래’하고, 그것을 치료하는 데 ‘현재 이용 가능한 치료법이 없거나 유전자치료의 효과가 다른 치료법과 비교해 현저히 우수할 것으로 예측되는 경우’에만 유전자치료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개정법은 두 가지 중 한 가지 조건만 충족해도 유전자치료를 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이에 따라 ‘티슈진C’ 등의 개발에 탄력이 붙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당초 이 약은 ‘생명을 위협하는 병’의 치료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허가 여부가 불투명했다.
그러나 이러한 ‘바이오산업 육성 드라이브’에 대해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첫째로 지적되는 것이 위험성이다.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이 2015년 3월 한국줄기세포학회와 함께 발간한 ‘제대로 묻자! 제대로 알자! 줄기세포 치료의 모든 것’에 따르면 줄기세포는 여러 종류의 세포를 생산할 수 있는 특이한 능력(다중분화능)을 가진 세포로, 손상된 신체 부위를 재생할 수 있다. 이에 따라 노화로 발생하는 각종 퇴행성 질환이나 심한 외상으로 인한 장애 등을 치료하는 ‘혁신적’ 신약이 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스스로 분화하는 세포를 체내에 넣는다는 점에서 면역이상반응, 이상세포(암)로의 변화 등이 발생할 위험도 높다. 세포치료의 특성상 이런 부작용이 처치 후 수개월 혹은 수년 후에 나타날 수 있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유전자를 변형한 세포를 몸속에 넣어 질환을 치료하는 방식의 유전자치료제 역시 예기치 못한 부작용의 위험을 안고 있다.
‘대박’ 욕심은 금물, 차근차근 성장해야
이에 대해 오일환 가톨릭대 의대 교수는 “줄기세포를 암 덩어리에 집어넣는 방식으로 진행하는 줄기세포 관련 연구 논문들을 분석해보면 줄기세포가 오히려 암세포에 영양을 공급해 암을 키우는 사례도 나타난다”며 “줄기세포 기술이 많이 발전하기는 했지만 아직은 더 많은 연구가 진행돼야 할 단계”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대박’을 노리고 성급하게 바이오 신약 개발에 뛰어들 경우 득보다 실이 많을 수 있다고도 지적한다.바이오 신약이 사람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 발전시켜야 한다는 점에서 ‘황우석 사건’ 같은 윤리적 문제의 발생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상자기사 참조). 김옥주 서울대 의대 교수는 2012년 교육과학기술부(현 교육부)로부터 의뢰받아 작성한 ‘줄기세포 연구에 관련된 생명윤리의 정착 및 응용에 관한 연구’에서 ‘황우석 사태에서 익히 보고 배웠듯 윤리적 장치가 부재한 상황에서 이루어진 잘못된 연구는 가치로 환산될 수 없는 엄청난 후유증을 초래할 수 있다. 또한 줄기세포 연구와 같은 최첨단 영역의 연구는 과학 연구에 대한 공적 신뢰성을 제고하기 위하여 신뢰성 있는 과학 연구의 모델이 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신약 개발은 막대한 비용과 긴 시간을 요구한다. 노바티스는 2003년 항암제 ‘글리벡’ 출시 당시 개발 비용이 약 8억8000만 달러(약 1조348억 원)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2014년 미국 터프츠대 신약개발연구센터(TCSDD)는 현재 제약사가 신약을 개발해 시판하기까지 드는 비용이 총 25억5800만 달러(약 3조82억 원)라고 발표했다. 10년 새 신약 개발비용이 급증한 것이다. 현재 한국 바이오업계가 이를 감당할 역량을 갖췄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윤리적이고 과학적이며 혁신적인 바이오 의약품 개발을 위해 ‘숨고르기’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동물복제로 재기 노리는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
2015년 12월 23일 대법원은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가 서울대 총장을 상대로 낸 파면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에 따라 황 전 교수가 2006년 복직 소송을 낸 후 9년에 걸쳐 다섯 차례 이어졌던 재판이 최종적으로 막을 내렸다.
2006년 ‘사상 최악의 거짓말쟁이’로 낙인찍힌 채 서울대를 떠난 황 전 교수는 이후 10년간 학교뿐 아니라 과학계로 돌아오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왔다. 2006년 서울대 수의대 제자 등과 수암생명공학연구원을 세운 그는 이듬해 골든레트리버 등 개 복제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며 복귀 시동을 걸었다. 최근엔 중국 기업과 손잡고 ‘복제소 연 100만 마리 생산’ 계획도 밝혔다. 세계 최초로 식용 복제소를 시장에 내놓겠다는 구상이다.
이러한 황 전 교수의 재기 움직임은 2014년 과학저널 ‘네이처’와 ‘사이언스’, 미국 언론 ‘뉴욕타임스’ 등에 보도돼 화제를 모았다. 그러나 당시 네이처는 황 전 교수에 대한 관심이 그처럼 큰 연구부정을 저지른 과학자가 명예회복을 시도하고 상당한 성공을 거둔 매우 드문 사례이기 때문이지, 그의 연구 업적 때문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했다. 과학계에서도 동물복제와 인간용 치료제 개발은 전혀 다른 영역이라는 점에서 최근 황 전 교수의 연구가 과학적 가치는 높지 않다고 말한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황 전 교수는 과학적으로 결코 뛰어난 업적을 낸 학자가 아니었다. 그를 둘러싼 엉터리 신화를 더는 용납해서는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