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
#2 직장인 정모(37) 씨는 요즘 온라인쇼핑을 할 때 ‘네이버쇼핑’을 주로 찾는다. 네이버쇼핑에서 구매할 경우 구매금액의 1~3%까지 적립되는 네이버페이 포인트가 꽤 쏠쏠하기 때문이다. 네이버쇼핑에서 주로 사용하는 신용카드로 결제해 신용카드가 제공하는 포인트와 할인 혜택을 누리는 동시에 네이버페이 포인트도 적립하는 것. 이사를 앞두고 여러 물건을 구매한 1월 한 달간 정씨는 2만p 넘는 네이버페이포인트를 쌓았다.
#3 여행을 좋아하는 유모(41) 씨는 10년 가까이 ‘1000원당 1항공마일리지’를 제공하는 신용카드 한 장만 사용하고 있다. 항공마일리지를 모아 여행 경비를 충당하기 위해서기도 하지만, 여러 장의 신용카드를 사용하는 것보다 한 장의 신용카드만 사용할 때 소비 내역을 파악하기가 훨씬 수월하기 때문이다.
제로페이의 경쟁 상대는 신용카드다. 현금을 제외한 결제시장에서 신용카드 비중이 78.7%(2018년 기준)에 달하는 상황에서 신용카드 결제를 제로페이 결제로 전환하지 않고서야 승산이 있을 수 없다. 그런데 한국인은 신용카드 사용에 익숙해져 있다. 신용카드사가 주는 각종 혜택도 무시 못 할 정도로 매력적이다. 신용카드 전문 사이트 ‘카드고릴라’에 따르면 최근에는 대중교통이나 이동통신 요금을 할인해주거나 마일리지 적립·전환율이 높은 카드가 인기가 많다. 알뜰족 사이에선 ‘피킹률’이란 용어가 통용된다. 신용카드 사용액 대비 소비자 혜택 금액 비율을 가리키는 말로, 보통 피킹률이 2%를 넘어야 ‘알짜카드’로 불리며 인기를 누린다. 제로페이가 소상공인 점포 위주로 사용된다고 해도 신용카드와의 경쟁은 피할 수 없다. 각종 혜택을 제공받는 데 필요한 최소 사용금액 요건을 채우려고, 혹은 최대한으로 마일리지나 포인트를 쌓으려고 편의점, 식당, 카페에서도 신용카드로 결제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제로페이에 없는 여신 기능, 즉 외상으로 소비할 수 있다는 점도 신용카드가 갖는 강점이다.
한 달 새 2배 성장했어도 개인카드 대비 0.0009%
3월 5일 서울 관악구 신원시장에서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이훈 의원의 설명을 들으며 제로페이를 이용해 과일을 구매하고 있다. 앞줄 오른쪽부터 박원순 서울시장, 송기춘 신원시장상인회장, 이 대표, 이 의원. [뉴스1]
처참한 성적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여당, 서울시의 제로페이 확산 의지는 여전하다. 3월 4일 “신용카드 소득공제와 같이 도입 취지가 어느 정도 이뤄진 제도에 대해서는 축소를 검토하겠다”는 홍남기 기획재정부 장관 겸 경제부총리의 발언은 제로페이 확산을 위해 신용카드 소득공제를 폐지하는 것 아니냐는 논란을 일으켰다(3월 13일 청와대는 당정청협의회를 통해 올해 일몰되는 신용카드 소득공제 제도를 3년 연장하기로 했다). 3월 5일에는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 홍종학 중기부 장관, 박원순 서울시장이 함께 서울 관악구 신원시장을 찾아 상인들을 상대로 제로페이 가맹점 가입을 독려했다. 중기부와 서울시는 공동 보도자료를 통해 4월 이후 6대 편의점 및 60여 개 프랜차이즈가 제로페이에 동참해 사용처가 넓어질 것이며, 서울시 공공자전거 따릉이, 공영주차장, 문화시설 등에서 제로페이 결제 시 이용료 할인을 추진할 것이라고도 밝혔다.
하지만 정부와 서울시가 약속한 ‘제로페이 혜택 프로그램’은 기약이 없거나 한시적이다. 정부와 서울시가 제로페이의 최대 강점으로 강조하는 ‘제로페이 사용 시 소득공제 40% 혜택’은 법안 마련까지 갈 길이 멀다. 올 한 해 열심히 쌓은 제로페이 결제금액을 내년 연말정산 때 소득공제받을 수 있을지 여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먼저 누구를 소상공인으로 볼 것인지 규정하고 지원 내용을 열거하는 소상공인기본법이 제정돼야 한다. 그래야 이 법을 근거로 제로페이 사용자에게 소득공제 40% 혜택을 부여하는 내용으로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추진할 수 있다. 소득공제 40%를 향한 1단계라 할 소상공인기본법에 대해 기획재정부는 올 하반기에나 발의가 가능할 것으로 본다. 여당에서 소상공인기본법 대표 발의를 맡은 더불어민주당 홍의락 의원실은 “법안은 3월 내에 발의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지만 여느 법안이 그렇듯 최종적인 법안 제정 시기는 확신할 수 없다”고 말했다.
서울시가 공언한 6대 편의점 및 60여 개 프랜차이즈에서 제로페이를 사용할 수 있는 시기는 일러야 5월 이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제로페이 결제를 포스(POS)기와 연동한 뒤에야 이들이 제로페이 결제를 개시하기 때문이다. 지금 제로페이는 포스기와 연동돼 있지 않아 사용이 불편하다. 제로페이로 결제하려면 소비자는 ①제로페이 결제를 지원하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 실행 ②개인 비밀번호 입력 ③점포에 비치된 제로페이 QR코드 스캔 ④결제금액 입력이라는 4단계를 거쳐야 한다. 신용카드를 주고받는 것에 비해 복잡한 것이 사실. 실제 기자가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제로페이로 결제하려 하자 아르바이트생이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사장님이 안 계셔서 제로페이로 결제한 돈이 제대로 입금됐는지 확인할 수 없다”며 기자의 스마트폰 앱에 뜬 결제승인 내역을 꼼꼼히 확인한 뒤 커피를 내줬다.
이 같은 불편을 개선하고자 현재 중기부는 기존 포스기와 연동해 점포 직원이 바코드를 찍으면 결제금액이 자동으로 요청되는 방식으로 시스템을 개선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중기부 관계자는 “16개 부가통신사업자(VAN·밴사(社))가 참여해 4월 완료를 목표로 각각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며 “밴사에게 지급하는 수수료는 소상공인이 부담하지 않고 은행과 간편결제사가 부담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한 편의점 본사 관계자는 제로페이와 포스기 연동 시기에 관해 “정부와 서울시는 4월을 목표로 삼지만 시스템 개발에 시간이 더 필요할 것으로 보여 5월은 돼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서울시가 제공하는 각종 이용료 할인 혜택도 더 기다려야 한다. 서울시는 현재 한강공원 시설 이용료, 시민청 대관료, 서울상상나라 입장료, 서울대공원 입장료, 시가 운영하는 공영주차장 주차요금 등을 10~30% 할인해주는 내용을 골자로 한 조례 개정을 입법예고한 상태. 4월 말 서울시의회 의결을 거쳐 5월 중에 할인을 시행할 예정이다. 그런데 이마저도 제로페이를 온라인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개편한 뒤에야 가능하다. 서울시 자전거정책팀 관계자는 “지난해 제로페이로 결제할 경우 따릉이 이용료를 할인해줄 수 있도록 조례를 개정했지만, 아직 따릉이 모바일 앱에서 제로페이로 결제할 수가 없다. 현재 시스템을 개발 중인데, 이르면 6~7월에 요금 할인을 개시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따릉이 할인? 온라인 결제가 안 돼서…
아직 제로페이 온라인 · 모바일 결제시스템이 개발되지 않아 서울시가 약속한 ‘제로페이로 결제할 경우 따릉이 이용료 할인’은 몇 달 더 기다려야 한다. 그마저도 올해 말까지 한시적 할인에 그친다. [홍중식 기자]
서울시는 이러한 공공시설 이용료 할인을 올 연말까지 한시적으로 제공할 예정이다. 서울시 기획조정실 관계자는 “공공시설 이용료 할인은 서울시 세수에 영향을 미치는 일이라 제로페이 확산을 위해 일시적으로 제공하는 것이지, 영구적인 것이 아니다”라며 “올해 연말 제로페이 사용 실태를 지켜본 뒤 내년에도 할인 혜택을 제공할지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서울시 관계자는 “이용료 할인을 제공하려면 내년에도 또 시의회 의결을 거쳐 조례를 개정해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을 것 같다”고 견해를 피력했다.
중기부는 온누리상품권 등 지역상품권을 제로페이 포인트로 충전해 제로페이 가맹점에서 사용할 수 있게 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이 경우 소비자가 얻는 혜택은 종이상품권을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되는 정도다. 최근 온라인쇼핑몰이나 온라인서점 등은 고객이 자사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온라인 캐시를 충전할 경우 충전금액의 2~5%에 해당하는 포인트를 추가로 지급한다. 중기부 관계자는 “지역상품권을 제로페이 포인트로 전환할 경우 추가 포인트를 제공할지는 아직 검토한 바 없다”고 전했다.
“포인트 줄 여력 없다”
제로페이의 경쟁 상대라 할 수 있는 신용카드나 온라인쇼핑은 포인트 적립, 할인 등 각종 소비자 혜택을 제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