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소년단 [사진 제공 · 스포츠서울]
이번 시상식이 더욱 특별했던 건 대리수상이 상대적으로 적었고, 참가자들이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는 점이다. 수상하지 못한 후보자들은 다른 동료들의 기쁨을 함께 축하했으며, 수상한 후보자들도 인상적인 소감으로 한국대중음악상이 ‘그들만의 리그’가 아닌 진정한 음악인의 잔치임을 입증했다.
장필순 [ⓒ페이지터너]
한국 음악인이 국내 기성 언론의 인정을 받는 길은 해외시장에서 성공이 가장 빠르다. 만약 방탄소년단이 빌보드를 비롯한 세계 음악시장을 정복하며 ‘유튜브 시대의 비틀스’가 되지 못했다면 국내 기성 미디어에서 그들을 이토록 주목했을까. 윤하가 예언했고 소녀시대가 증명했다. 방탄소년단은 그 화룡점정이었다. 실제로 이번에 한국대중음악상을 수상한 뮤지션들은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인정받고 있다. 어떤 팀들일까.
부산을 거점으로 유럽 무대 두드리는 세이수미
세이수미 [동아DB]
부산 출신인 그들은 2012년 결성돼 부산에서 활동하고 있다. 부산은 서울, 인천과 더불어 한국 록을 삼분했지만 2000년대 이후 피아, 레이니썬 등 부산을 대표하던 팀들이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자 서울로 진출했고, KTX를 비롯한 교통의 획기적 발달로 부산의 음악 팬들이 공연 관람을 위해 서울을 당일치기로 다녀오는 것이 가능해졌다. 이에 음악을 하겠다는 야심을 가진 친구들은 어떻게든 서울로 올라가고, 지역에 남은 팀들은 일종의 패배 의식에 휩싸이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세이수미는 2013년 데뷔 앨범을 낸 후에도 계속 부산에서 활동했다. 스케줄이 잡힐 때만 서울행 열차에 몸을 실었을 뿐이다. 전체적으로 인디 신이 침체해가는 상황에서 무리하게 근거지를 서울로 옮길 필요가 없었다. 마치 처음부터 해외시장을 노리기라도 한 듯 영어로 노래하는 세이수미를 주목한 건 영국을 비롯한 서구의 인디 팝 시장이었다. 2016년 즈음 영국 인디 레이블과 계약해 현지 투어를 시작했으며, 최근에는 미국 음악 웹진 ‘피치포크’에 리뷰가 실리고, 엘튼 존이 자신의 라디오에서 세이수미의 음악을 집중 소개하기도 했다. 1960년대 스키플 사운드와 서프 팝, 그리고 1990년대 미국 인디 록의 전성시대를 연상케 하는 세이수미의 음악이 ‘원산지’에서도 그대로 먹힌 것이다. 그 결과 세이수미는 현재 매년 유럽 투어를 하며 해외 활동에서 더 두각을 나타내는 팀이 됐다.
일본시장부터 파고든 다크 미러 오브 트레지디
다크 미러 오브 트레지디 [사진 제공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이럴 수 있었던 건 그들 역시 주 타깃을 국내가 아닌 해외로 잡았기 때문이다. 매년 일본에서 투어를 펼쳤을 뿐 아니라, 이번 앨범의 첫 공연 장소 역시 일본이었다. 세계 2위 음악시장답게 일본은 장르 음악 수요도 그만큼 탄탄하기 때문이다. 또한 장르 음악이야말로 ‘국적’보다 음악의 ‘내용’ 자체가 중시되기에 마니아들로부터 꾸준한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다. 불모지인 한국시장을 향한 공허한 외침이 아닌, 그 외침에 공명하는 지점이 다른 것이다. ‘랩&힙합’ 노래를 수상한 XXX, ‘댄스&일렉트로닉’ 음반을 수상한 공중도둑도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많은 주목을 받았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한국 대중음악이 더는 내수용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상업적 성과, 즉 음악인의 경제적 만족도와 별개로 초연결시대의 음악에서 국적은 이제 고려 대상이 아니다. 애플뮤직, 스포티파이를 비롯한 다국적 스트리밍 서비스와 유튜브를 통해 노출도가 높아졌고, 국내에 비해 열려 있는 해외 케이팝(K-pop) 팬은 아이돌뿐 아니라 다양한 한국 뮤지션에 호기심을 보이고 있다. 자기만족과 욕망에 충실한 음악이 그에 합당한 결과물로 등장할 때, 예전보다 더 강력한 리액션을 거둘 확률이 높아진 것이다. 이는 더욱더 양질의 음악을 이어갈 수 있는 힘이 된다.
그렇다면 남은 건 무엇일까. 하나다. 음원 차트를 비롯한 국내시장의 혁신이다. 더 많은 음악이 더 많은 이에게 노출되고 더 나은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는 시장 말이다. 제16회 한국대중음악상이 던진 화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