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제공 · 극발전소301]
죽음을 담보로 한 가미카제 대원 3843명 가운데 지금까지 확인된 조선인은 18명이다. 연극 ‘가미카제 아리랑’은 1945년을 배경으로 조선인 가미카제 대원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탁경현(김경남 분), 최정근(임일규 분), 김상필(한일규 분), 민영훈(권겸민 분)은 김유자(이항나 분)가 딸 마리(김채이 분)를 데리고 운영하는 조선인 식당에 자주 찾아와 조선어로 이야기를 나눈다. 출격 명령을 받은 탁경현은 애써 표정을 숨기지만 이내 눈물이 고이고 목이 메어 아리랑을 부른다. 그에게 십 리도 못 가 발병 나는 아리랑고개는 생선 가게를 하는 부모의 피땀이자 눈물이고 배고픈 동생들의 목소리다. 차별과 멸시를 받는 가난한 식민지 조선인이 가족을 위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카드는 자원해 가미카제 비행기에 오르는 것뿐이었다.
일본 군부는 그들을 벚꽃에 비유했다. 비행기에 벚꽃을 새겼고, 출격할 때 여학생들로 하여금 벚꽃을 흔들며 전송하게 했다. 일본 군부는 그들의 행동을 ‘산화(散華)’라고 미화했지만 그들은 미처 꽃봉오리도 피우지 못한 채 져버렸다. 최정근은 비가 내려 출격이 연기되는 바람에 극적으로 일본인 약혼녀 우메자와(강유미 분)를 만났지만 다음 날 어김없이 자살비행에 동원된다.
정범철 연출은 감각적 무대언어로 응어리진 조선 청년들의 상흔을 관객의 가슴에 관통시킨다. 군더더기나 더딤 없이 객석을 빨아들이는 연출이 압권이다. 일본의 전쟁 광기로 무참히 희생된 조선 청년들의 원혼을 어찌 위로할 것인가. 영혼마저 야스쿠니 신사에 어색하게 합사된 이들은 독립이 아니라 일왕을 위해 스스로 목숨을 던졌다는 조국의 비난까지 감수해야 했다. 연극은 막다른 길에 선 이들이 조선의 말과 맛을 얼마나 사무치게 그리워하고 사랑했는지 애달프게 보여준다. 이들이 마지막 순간에 외친 말은 일본어 ‘덴노 헤이카 반자이(천황 폐하 만세)’가 아닌 조선말 ‘엄마’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