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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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을 위한 리뷰

영화 ‘극한직업’의 진짜 흥행 코드

샐러리맨과 자영업자 영혼의 불안한 성감대를 간질이다

  •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입력2019-02-08 17: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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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제공 · CJ엔터테인먼트]

    [사진 제공 · CJ엔터테인먼트]

    간지럼을 태울 때 어떤 곳을 집중 공략하는가. 옆구리나 턱밑, 발바닥 같은 부위다. 사람의 신체 가운데 가장 취약하고 민감한 곳이다. 그 부위를 간질이지 않고 타격을 가하면 치명상을 입기 십상이다. 

    개봉 보름 만에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극한직업’(감독 이병헌)에 대해 끊임없이 간지러움을 태워 웃지 않을 수 없다는 반응이 많다. 한동안 너무 진지한 한국 영화만 접하다 오랜만에 부담 없이 웃을 수 있었다는 후기도 같은 맥락이다. 한마디로 엄청 웃겨서 대박을 터뜨렸다는 해석이다.

    ‘극한직업’의 웃음이 발생하는 장소

    실제 영화를 보다 보면 10분에 한 번씩 웃음이 터질 만한 요소로 가득하다. 형사물 하면 떠올리는 멋진 액션장면을 패러디하거나 풍자하는 대목에선 할리우드 영화 ‘총알탄 사나이’가 연상된다. 종반부로 가면 한국 형사액션물 ‘인정사정 볼 것 없다’나 홍콩액션의 대명사 ‘영웅본색’의 장면을 코믹하게 차용한 장면도 발견된다. 심지어 절체절명 위기의 순간 ‘유주얼 서스펙트’ 같은 스릴러의 클리셰를 도입해 웃음을 유발할 때도 있다. 

    하지만 중년의 가장은 영화를 보면서 정신없이 웃던 자신이 어느 순간 남몰래 눈물을 흘리고 있음을 발견한다. 이는 영화의 웃음코드보다 그 웃음이 발생하는 장소(토포스) 때문에 발생한다. 영화가 간질이는 장소는 어디인가. 언제 잘릴지 모른다는 불안을 안고 살아가는 월급쟁이 형사가 거물 마약범을 잡기 위한 위장수사의 일환으로 퇴직금까지 털어 인수한 망해가는 치킨집이다. 

    그 공간은 두 개의 불안한 영혼이 교차하는 십자로다. ‘오직 성과로만 말하라’는 성과지상주의 시대에 적응하지 못해 코너에 몰린 월급쟁이와 은퇴 후 마땅한 일거리를 못 찾아 레드오션임을 알고도 치킨집 사장이 될 수밖에 없는 자영업자가 교차하는 공간이다. 



    영화 주인공 고 반장(류승룡 분)은 승진 경쟁에서 계속 밀려나다 급기야 자신이 이끌던 마약반이 해체될 위기에 처했다. 평생 현장을 뛰어왔지만 반장이란 알량한 직함까지 포기하고 지원부서에서 후배 아래서 내근이나 해야 할 처지가 됐다. 마지막 탈출구로 자신보다 먼저 과장이 된 후배가 던져준 정보를 물고 거물 마약범의 아지트를 급습할 기회만 노리다 결국 그 아지트 맞은편 망해가는 치킨집까지 인수하게 된다. “어차피 여기서 밀려나면 퇴직금으로 치킨집 차릴 일밖에 없는데 미리 당겨썼다고 생각하지 뭐” 하며. 

    웃음 코드 쫙 빼고 이 이야기를 접하면 짠한 마음이 앞설 대목이다. 하지만 영화는 웃음폭탄으로 당신이 그런 감상에 빠질 기회를 주지 않는다. 마약범의 아지트로 치킨 배달을 가 내부구조를 파악한 뒤 두목이 뜨면 바로 체포하겠다는 오매불망의 집념 하에 임시방편으로 인수한 치킨집이 대박이 나고 만다. 잠복과 위장의 명수인 형사들이 주방일과 서빙에 의외의 재주가 있음이 밝혀지지만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다. 정작 범인 잡는 일이 뒷전으로 밀리게 됐기 때문이다.

    그들이 열심인 이유

    [사진 제공 · CJ엔터테인먼트]

    [사진 제공 · CJ엔터테인먼트]

    그 순간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아니, 내가 왜 이걸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지?” 영화를 볼 때 폭소가 터지게 만드는 대사다. 하지만 거기엔 어떻게든 성과를 내려고 뭐든 최선을 다해야 하는 한국 직장인과 자영업자의 서글픈 초상이 어려 있다. 

    성과주의 시대 초자아의 명령은 이렇게 요약된다. 당신이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든 최선을 다해라. 그래서 성과가 발생한다면 승진과 보너스가 기다리고 있다. 성과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당신이 자기계발을 게을리한 것이니 더 열심히 해라. 성과가 발생할 때까지. 

    이를 내면화한 영화 속 주인공들은 어디서든 ‘노동하는 기계’로 최선을 다한다. 이는 마치 ‘모던 타임즈’의 찰리 채플린을 보는 것처럼 ‘웃픈’ 장면이다. 공장에서 쉼 없이 나사 조이는 일을 하는 채플린은 공장 밖에서도 똑같은 동작을 되풀이하며 관객에게 웃음을 안기지만 돌아서면 지독히도 씁쓸한 장면으로 기억된다. 

    잠복수사에 실패하고 팀 해체와 정직을 당한 고 반장의 선택은 그나마 손에 남은 치킨집을 잘해보자는 것. 그때 달콤한 유혹이 들어온다. 우연히 탄생한 왕갈비양념치킨을 앞세워 전국적 프랜차이즈 치킨집을 만들자는 제안. ‘이게 웬 떡이냐’ 하고 덥석 물지만 거기엔 독이 숨어 있었다. 그들이 급습하려던 마약조직이 마약 유통 수단으로 어수룩한 치킨집 체인을 구축하려 한 것.

    극한직업 종사자는 누구인가

    [사진 제공 · CJ엔터테인먼트]

    [사진 제공 · CJ엔터테인먼트]

    이 기발한 상상력은 불쌍한 월급쟁이 및 자영업자의 운명과 기막히게 공명한다. 서민 음식인 ‘치맥’이 마약상에게 부지불식간에 착취당하듯, 월급쟁이와 자영업자 역시 그들을 언제든 대체가능한 존재로 만들려는 권력과 자본의 주술에 중독돼 노동하는 기계로 작동하게 됐기 때문이다. 

    마약조직의 음모를 모르던 고 반장과 마약반 형사들은 이번엔 거꾸로 치킨 장사에 몰두한다. 노동하는 기계다운 선택이다. 역설적인 점은 치킨 장사에 몰두하다 보니 거꾸로 그토록 잡고 싶던 마약조직의 꼬리를 밟게 된다는 점이다. 

    이후 영화의 엔딩은 대중영화의 문법에 충실하다. 마약조직을 일망타진하고 고 반장은 물론 마약반 형사 전원이 일계급 특진의 성과 잔치를 벌인다. 이를 두고 씁쓸하다거나 너무 뻔하다고 얘기하는 이들은 이 영화의 진가를 제대로 보지 못한 셈이다. 

    그런 분들에게 이 영화의 제목이 말하는 극한직업의 종사자가 누구냐고 묻고 싶다. 영화에 등장하는 형사들이라고 한다면 50점짜리 답안이다. 무한경쟁사회에서 성과지상주의를 내면화하며 살아가야 하는 샐러리맨과 어느 날 갑자기 직장에서 잘린 뒤 알량한 퇴직금으로 치킨집 하나 차려 목숨 걸고 일할 수밖에 없는 자영업자, 즉 이 땅의 가장들이다. 이 영화는 그렇게 우리 사회의 가장 민감하고 취약한 곳을 간질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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