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태식]
요즘 여행자는 자유여행을 하다 하루 혹은 반나절쯤은 현지 가이드를 만나 관광지를 둘러보고 체험한다. 일본 홋카이도 여행 중에 눈 쌓인 겨울 풍경이 일품인 삿포로 근교 비에이, 후라노를 버스 투어로 다녀오거나, 호주 시드니의 랜드마크 하버브리지를 가이드 인솔 하에 등반해보는 식이다. ‘자유여행 속 짤막한 패키지여행’인 셈인데, 마이리얼트립은 이러한 여행상품을 중개하는 국내 업체 가운데 단연 선두에 서 있다.
2012년 이동건(33) 대표가 단돈 1000만 원으로 창업한 마이리얼트립은 6년 만에 연매출 320억 원(2018년 예상)을 달성, 국내 8위 여행사로 올라섰다. 특히 2018년 성장세가 두드러진다. 지난해 마이리얼트립에 신규 가입한 회원 수는 80만 명. 이전 5년간(2012~2017) 누적 가입자 68만 명을 단박에 넘어선 수치다. 2016년 여름 14억 원이던 월 거래액은 지난해 12월 170억 원으로 급상승했다. 이러한 빠른 성장세에 힘입어 이 회사는 올해 초 170억 원의 투자를 유치해 누적 투자금이 약 300억 원이 됐다. 이번 투자액 전부를 신규 투자자가 아닌 기존 투자자로부터 확보해 스타트업계에서 화제가 됐다. 공유오피스 스파크플러스 서울 강남점에 입주해 있는 마이리얼트립 사무실에서 이 대표를 만났다.
마이너리거와 LA 다저스 경기 관람
기존 투자자가 스타트업에 재투자하는 것이 미국에선 흔한 일이지만 한국에선 아직 낯설다.“이번에 스마일게이트인베스트먼트로부터 4번, 알토스벤처스와 IMM인베스트먼트로부터 3번, 미래에셋-네이버펀드와 IBK캐피탈로부터 2번 투자받은 셈이 됐다. 벤처캐피털이 스타트업의 성장을 지켜보면서 투자를 거듭하는 문화가 이제 국내에서도 시작되는 것 아닌가 싶다. 스타트업 대표로서는 새로운 투자자를 찾는 시간과 노력이 줄어들어 사업에 더 매진할 수 있었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해외 출국자 수는 2869만 명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2010년 이후 9년 연속 신기록 행진이다. 해외여행이 일상화되면서 여행 트렌드도 달라졌다. 대표적인 것이 패키지여행의 감소(그래프 참조). 2013년 38.4%였던 패키지여행 비중이 2017년 25.3%로 줄어든 대신, 자유여행 비중은 52.4%에서 67.7%로 늘어났다. 그리고 최근 들어 자유여행과 함께 성장하고 있는 것이 현지 투어(Tour) 및 액티비티(Activity) 분야 개별 여행상품이다. 이제 해외로 떠난 여행자들은 관광명소만 찾는 것이 아니라, 현지에서만 해볼 수 있는 ‘경험’을 추구한다.
최근 여행 트렌드 가운데 주목할 만한 점은?
“두 가지가 있다. 먼저 갔던 데를 또 간다. 저비용항공사가 많이 등장하면서 일본, 동남아 등 가까운 곳을 두 번, 세 번 방문하는 것이다. 한편 철저히 자기 취향대로 여행한다. 같은 일본 도쿄를 간다 해도 식도락에 몰입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역사 탐방에 주안점을 두는 사람도 있다. 물론 자유여행을 하니까 이런 식으로 여행할 수 있는 거다. 몰개성화된 패키지여행은 이러한 욕구를 만족시킬 수 없다.”
젊은 세대는 패키지여행을 안 한다?
“한 번은 해도 두 번은 절대 안 한다. 중·장년층도 해외여행 경험이 쌓이면서 자유여행으로 선회하고 있다. 2030년 즈음에는 패키지여행이 거의 다 사라지지 않을까 싶다. 지금도 마이리얼트립 고객 중 50, 60대 비중이 11%로 적잖은 수준이다. 사업 초기에는 오히려 40, 50대 고객이 20, 30대보다 많았다. 자유여행을 선호하지만 배낭여행보다 수준 높은 여행을 원하는 이들이 현지 투어 상품을 구매했다.”
마이리얼트립은 전 세계 약 80개국 600여 도시에서 현지 가이드, 액티비티, 입장권, 교통패스, 숙박, 렌터카 등 1만7000개 이상의 다양한 상품을 판매한다. 항공권을 예매할 수도, 전 세계 호텔을 검색할 수도 있다. ‘여행포털’로 진화하고 있지만, 마이리얼트립의 진수(眞髓)는 여전히 현지 가이드가 안내하는 투어와 액티비티 등 체험 상품이다. 2300여 명의 현지 가이드는 부가수익을 얻고, 여행자는 색다른 경험을 누린다. 이탈리아 로마에 거주하는 한인 주부와 함께 이탈리안 가정식을 요리해본다거나, 미술사 전공자의 설명을 들으며 영국 런던 내셔널갤러리에서 미술 작품을 감상하는 것이다.
특색 있는 투어를 몇 가지 소개한다면.
“프랑스 파리에는 미술대학 유학생이 많다. 이들이 에펠탑 근처로 피크닉을 가 에펠탑을 직접 그려보는 투어를 선보이고 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선 건축사 자격증을 가진 이가 가우디 투어를 진행한다. 최근에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11년간 미술품 복원 일을 한 전문가가 복원학에 초점을 맞춘 박물관 투어를 개시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는 마이너리거 출신으로 야구 캐스터로 활동 중인 가이드와 LA 다저스 경기를 관람하는 상품이 있다. 미국 하버드대, 스탠퍼드대, 영국 옥스퍼드대 재학생이 캠퍼스를 구경시켜주는 투어도 있다. 부모들이 자녀에게 ‘형, 언니한테 어떻게 공부했는지 물어보라’고 슬쩍 떠민다고 한다.(웃음)”
사람과 사람의 ‘만남’
마이리얼트립은 여행 현지의 개별 투어 및 액티비티 상품을 주로 중개하며 국내 8위 여행업체로 성장했다. [사진 제공 · 마이리얼트립]
10만 원짜리 반나절 투어 등 현지 투어나 액티비티 상품이 저렴한 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인기인가.
“기존 가이드는 내비게이터 역할을 했다. 어디서 지하철을 타면 되고, 어느 레스토랑이 유명한지 알려주는 역할 말이다. 이러한 정보는 여행 가이드북이나 인터넷에서도 충분히 찾을 수 있다. 이제 여행자들은 사람과 사람의 만남, 현지에서만 할 수 있는 특별한 경험에 가치를 둔다. 처음에는 여행 중인 도시의 건축 얘기를 듣다 자연스럽게 ‘어쩌다 여기서 살게 됐어요?’ 하고 물으며 대화를 나누고 친구가 된다. 아이들과 여행하는 가족에게는 고급 스테이크하우스보다 대학 학생식당에서 그 학교 학생과 먹는 밥이 더 특별할 수 있다.”
이 대표는 “고객 데이터를 분석해보면 항공권이나 숙박은 100원이라도 저렴하게 파는 곳을 찾지만, 현지 경험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 경향이 나타난다”며 “여행의 즐거움을 느끼는 포인트가 현지 경험에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에는 파리에 다녀온 사람에게 “에펠탑 봤어?” 하고 묻지만, 이제는 “에펠탑 뒷골목에 있는 무슨 카페가 되게 좋은데, 거기 가봤어?” 하는 식으로 여행의 의미가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요즘 여행자는 5만 원짜리 저비용항공을 타고 일본 오사카에 가서 한 끼에 10만 원짜리 식사를 한다. 취향에 중점을 둔 선택이라는 점에서 합리적 소비인 셈이다.”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현지 투어가 있다면?
“2년 전 여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가서 2박 3일짜리 요세미티 투어를 했다. 가이드는 P&G, 코카콜라 등에서 마케터로 일했던 분이었다. 요트를 타고 타호(Tahoe) 호수 한가운데 있는 섬으로 가 수영했던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 여름이었는데도 물이 차가워 얼어 죽을 뻔했다.(웃음)”
현지 개별 여행상품은 예전부터 죽 있어왔다.
“맞다. 하지만 각자 알아서 현지 업체를 찾아내야 했고, 현지 언어 사용에도 큰 어려움이 없어야 했다. 국내 여행사가 이런 현지 상품을 예약, 대행해주기도 했다. 하지만 가이드가 어떤 사람인지, 이미 다녀온 사람들의 평가는 어떤지 사전에 알 수 없었다. 우리는 현지에 거주하는 한국인 가이드나 한국인이 운영하는 현지 여행사를 연결해준다.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가이드와 사전에 대화를 나눌 수 있고, 먼저 다녀온 사람들의 후기도 읽어볼 수 있다. 우리가 보유한 사용자 누적 후기는 39만여 개로 국내 여행커머스 가운데 1위다.”
2018년 한 해 동안 크게 성장했다. 비결이 뭔가.
“우리 앱과 웹사이트에서 항공권을 검색, 구매할 수 있게 되면서 트래픽이 대거 늘기도 했지만, 지난 한 해 정보기술(IT) 인력을 보강하면서 바로 성과를 내고 있다. 현재 개발, 데이터 분석, 프로덕트 매니저, 디자이너 등 IT 인력 비중이 45%이다. 우리는 여행을 취급하는 IT 스타트업, 트래블테크(Travel Tech) 회사다. 예약하자마자 사용할 수 있는 즉시예약티켓 비중이 81%에 달하는 등 고객 니즈에 면밀하게 대응해 재구매율이 높다는 점도 성공 원인으로 꼽을 수 있겠다. 고객 데이터를 분석하고 니즈를 미리 예측해 푸시 메시지 등을 보내는 실험을 하는 팀도 따로 운영하고 있다.”
마이리얼트립의 목표는 향후 3년 내 국내 3위 여행사로 올라서는 것이다. 현재 선두를 달리는 하나투어, 모두투어, 인터파크투어, 노랑풍선 가운데 일부를 제치겠다는 셈.
“마이리얼트립은 지난 3년간 거래액 기준 11배 성장했다. 상위 업체들의 거래액은 정체되거나 오히려 줄고 있다. 현 성장세를 유지하기만 해도 목표를 충분히 달성할 수 있으리라 본다.”
스타트업 성공? 戰場 잘 택해야
이 대표는 한 번도 취업을 해본 적이 없다. 고려대 경영학과 4학년 때 과 동기 백민서 전 부대표와 의기투합해 마이리얼트립을 창업했다. 이전 사업 경험으로는 크라우드펀딩 사업에 뛰어들었다 1년 만에 철수한 것이 전부다.두 번째 사업으로 성공한 창업가가 됐다. ‘창업 꿈나무’에게 조언한다면.
“지금도 성공한 것은 아니다. 이제 막 회사 형태를 갖췄을 뿐이고, 앞으로 갈 길이 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배들에게 전장(戰場)을 잘 골라야 한다고 조언하고 싶다. 트렌드가 빠르게, 중·장기적으로 바뀌고 있음에도 기존 사업자가 기존 성공 방정식에 도취돼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면 스타트업이 파고들어가기 좋은 시장이다. 마이리얼트립도 기존 여행사들이 현지 경험을 중시하는 여행 트렌드를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는 틈을 공략해 성장할 수 있었다. 젊은 창업자의 장점은 잃을 게 없어 과감하고 체력이 좋다는 것이다. 기상천외한 것을 정말 빨리 실행한다. 밤샘해도 거뜬하니까. 다만 약점은 절박함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위기가 찾아오면 ‘반드시 극복해야 한다’는 생각보다 ‘취업할까’ ‘학교로 돌아갈까’ 한다. 나도 그랬다. 과감함과 체력은 레버리지(leverage·지렛대로 밀어올림)하고, 절박함은 보충하라고 당부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