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보위 [IMDb, 뉴시스]
‘보헤미안 랩소디’는 그 전의 성공한 음악영화와 다르다. 뮤지컬영화 ‘라라랜드’ 같은 탄탄한 시나리오도, 비치 보이스의 브라이언 윌슨을 주인공으로 삼은 ‘러브 앤 머시’ 같은 복잡한 내면 묘사도 없다. 그 대신 수많은 명곡과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긴 시간을 할애한 ‘라이브 에이드’ 신이 있다.
전략이 주효했다. 새로운 흥행 방정식을 만들었다. 극장에서 듣고 봐야 참맛을 느낄 수 있는 음악영화의 기틀을 세운 것이다. 슈퍼 히어로 무비에 대한 피로도가 쌓여가는 지금, 할리우드에게 ‘보헤미안 랩소디’는 차세대 먹거리를 제시했다.
데이비드 보위의 아들인 영화감독 덩컨 존스는 자신의 트위터에 아버지의 전기영화가 제작될 것 같다는 글을 올렸다. 데뷔부터 사망까지 오직 멋진 순간들로만 가득하던 보위이기에 충분히 영화가 나올 만도 하다.
그럼 그의 어느 시절을 스크린에 옮길 것인가. 만약 내가 시나리오작가라면 그가 독일 베를린에서 보낸 1970년대 중·후반을 택할 것 같다. 1967년 데뷔한 보위에게 큰 명성을 안겨다 준 앨범은 1972년 ‘The Rise And Fall Of Ziggy Stardust And The Spiders From Mars’였다. ‘Starman’을 필두로 명곡이 가득한 이 앨범은 “나는 거대한 존재가 될 것이다. 그것도 어떤 면에서는 아주 무시무시하게”라는 보위 자신의 말을 예언처럼 실현시켰다.
데이비드 보위를 영화화한다면
보위는 이 앨범에서 ‘지기 스타더스트’라는 새로운 자아를 창조했고, 이전에 스스로 게이라고 발언하며 파생된 떠들썩한 삶을 연장했다. 음악 역사상 없었던 중성적 이미지의 록스타가 등장한 것이다. 하지만 그의 명성이 올라갈수록 당시 록스타들이 으레 그랬듯 생활은 파괴돼갔다. 섹스와 약물로 범벅이 돼서.결국 그는 치료차 베를린으로 건너갔다. 그리고 전자음악의 대가 브라이언 이노를 파트너로 맞이해 만든 베를린 삼부작인 ‘Low’ ‘Heroes’ ‘Lodger’를 연달아 발표했다. 새로운 조류였던 전자음악을 자기 세계에 접목시킨 이 3장의 앨범으로 그의 예술세계는 한층 더 깊어졌다. 1981년 빌보드 차트 1위에 오른 ‘Let’s Dance’로 대표되는, 이후 상업적 최전성기의 발판 역할을 하기도 했다.
물론 그는 무척이나 멋지기 때문에 다른 시기 또한 얘기가 되고도 남는다. 1년 반의 비밀스러운 암투병 끝에 마지막 앨범 ‘Blackstar’를 2016년 1월 8일에 발매하고 이틀 만에 세상을 떠난 그의 마지막 순간도 아티스트의 최후를 다루는 영화로 더없이 좋은 소재다. 2000년 영국 글래스턴베리 페스티벌의 헤드라이너로 올라 1970년 그 무대에서 입었던 옷을 그대로 입고 공연했던 일화도 30년 세월을 다루는 시작과 끝으로 손색없다.
그럼에도 베를린 시절을 영화화하고 싶은 이유는 바로 ‘Heroes’라는 곡 때문이다. 앨범 작업 당시 스튜디오가 자리한 곳은 베를린 장벽 인근이었다. 이 노래는 장벽을 사이에 둔 연인을 다루는데, 보위는 베를린 장벽에서 키스하는 커플을 보고 영감을 얻었다. 부드럽고 신비하며 음습한 고양감으로 가득한 이 노래는 보위를 대표하는 곡이다. 앞서 말한 2000년 글래스턴베리 페스티벌의 절정 역시 보위가 이 노래를 부를 때였다.
그런데, 정말 끝내주는 건 이 노래가 독일 통일에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이다. 1987년 6월 보위는 독일 연방의회 의사당에서 이 노래를 불렀다. 의사당이 베를린 장벽 근처에 있었기에 장벽 건너편으로도 소리가 퍼져나갔다. 그러자 동독 시민들이 하나 둘 모여들더니 ‘Heroes’를 ‘떼창’했다. 동독 군경이 이 집회(?)를 해산시키려고 무력 진압을 시도했는데, 이 사건이 계기가 돼 동독에서는 2년간 반정부시위가 이어졌다.
장벽은 마침내 붕괴됐다. 1989년 11월 9일의 일이었다. 보위가 사망했을 당시 독일 외무부가 이 일을 언급하며 추모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으니 공인된 사실이다. 그는 1985년 라이브 에이드(그렇다. ‘보헤미안 랩소디’의 그 라이브 에이드다)에도 참가했고, ‘Heroes’ 역시 불렀다. 라이브 에이드와 의사당 공연이 교차 편집되는 가운데 6분하고도 8초간 이 노래가 흐른다면 어떻겠는가. 스타덤, 방황, 재기로 이어질 영화의 대미를 장식하기에 손색없을 것이다. 생각만으로도 소름이 돋는다. 제목은 ‘히어로’가 딱일 것이다.
마이클 잭슨을 영화화한다면
마이클 잭슨 [IMDb]
여기에 만족하기엔 소년 잭슨의 야심은 너무도 컸다. 1977년 잭슨은 흑인 뮤지컬 ‘위즈’ 리허설에서 만난 퀸시 존스에게 프로듀서를 소개해달라 했고, 존스가 직접 나섰다. 존스가 팝 프로듀서로서는 성공작이 없다는 이유로 음반사가 반대했지만 잭슨은 밀어붙였다. 그렇게 발매된 앨범이 1979년 ‘Off The Wall’이다. 이 앨범은 1200만 장이 팔렸다. 물론 1982년 발표된 ‘Thriller’가 이룬 성취에 비하면 그저 예고편에 지나지 않는다.
천재 소년의 홀로 서기를 다루는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1983년 3월 25일이 될 것이다. 모타운 레코드의 25주년 기념 공연 말이다. 이 무대에서 잭슨은 형제들과 잭슨파이브의 히트곡 메들리를 부른다. ‘I’ll Be There’를 끝 곡으로 형제들은 무대 뒤로 들어가고 마이클만 남는다. 그러고는 수줍게 신곡이 있다며 신호를 보낸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베이스 라인이 울린다. ‘Billie Jean’이다. 1절이 끝나고 간주가 시작된다. 잭슨은 물리학을 무시한 듯한 뒷걸음질을 친다. ‘문워크’가 세상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팝의 역사, 춤의 역사, 나아가 대중문화의 역사를 완전히 바꿔놓은 한 인물의 전기영화에, 이보다 더 극적이며 스펙터클한 장면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