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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 인하 요구권이란 개인이나 기업이 금융회사로부터 대출받은 후 신용 상태나 상환 능력이 대출 당시보다 크게 개선됐을 경우 금융회사에 대출금리 인하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다. 일반 은행은 물론 저축은행, 신용카드사, 보험사 등 제2금융권에도 금리 인하 요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 다만 햇살론 등 정책자금대출이나 예·적금 담보대출, 보험회사의 보험계약 대출 등 미리 정해진 금리 기준에 따르는 상품에 대해서는 금리 인하 요구권을 행사할 수 없다.
개인은 △나이스 등 신용평가회사가 실시하는 신용등급이 상승한 경우 △새로 취업했거나 대기업 등 신용도가 높은 직장으로 이직한 경우 △이직·승진 등으로 연봉이 오른 경우 △부채가 줄어든 경우 △의사·변호사 등 전문직 자격증을 취득한 경우 금리 인하 요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 자영업자는 매출이 크게 늘어난 경우, 기업은 새로운 수출 활로를 뚫는 등 매출이나 순익이 크게 상승한 경우 금리 인하 요구권 행사가 가능하다.
대출자가 금리 인하를 요구하면 은행은 증빙서류 등을 제출 받아 자체 심사한 후 금리 인하 여부를 결정해 고객에게 통보한다. 더불어민주당 전해철 의원이 금감원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은행(시중은행, 지방은행, 특수은행, 인터넷전문은행)은 9만5903건의 금리 인하 요구권을 수용해 이자 3293억2000만 원을 감면해줬다. 평균적으로 건당 343만 원씩 이자 부담을 경감받은 셈이다.
인터넷은행은 이미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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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원에 따르면 제주은행을 제외한 5개 지방은행(대구·부산·경남·광주·전북은행)이 10월 말부터 모바일·인터넷으로 금리 인하 요구권 신청을 받는다. KB국민·우리·KEB하나·신한은행 등 시중은행은 연말까지 비대면 신청을 위한 시스템 개편을 완료할 예정이다. 그러나 이번 개편이 ‘완전한 비대면’을 뜻하진 않는다. 모바일·인터넷으로는 금리 인하 요구권 행사를 신청만 할 수 있고, 증빙서류는 직접 은행 영업점을 방문해 제출해야 한다. 이 때문에 이번 서비스 개편이 생색내기용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감원 은행감독국 관계자는 “대출자가 모바일·인터넷으로 금리 인하를 신청하면 은행이 그 내용을 검토해보고, 금리를 인하해줄 대상자로 판단한 경우 어떤 증빙서류를 준비해 은행으로 나와야 하는지 전화로 안내해주는 방식이 될 것”이라며 “이번 서비스 개편은 고객이 은행에 헛걸음하는 수고를 덜어주는 차원으로 봐달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금리 인하를 적용받으려면 약정서를 새로 작성해야 하는데, 약정서는 자필로 써야 하기 때문에 어차피 한 번은 은행을 방문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저축은행중앙회도 10월 18일부터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 ‘SB톡톡’에서 76개 저축은행을 상대로 금리 인하 요구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서비스를 개편했는데, 이 또한 모바일 앱으로는 신청만 가능하다. 증빙서류는 직접 은행 창구에 가서 제출해야 한다.
은행 영업점에서 대출 상담을 받고 있는 금융소비자(왼쪽)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에서 금리 인하 요구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한 카카오뱅크 앱 화면. [뉴시스, 사진 제공 · 카카오뱅크]
이러한 서비스 차이 때문일까. 카카오뱅크와 케이뱅크가 올해 1월부터 8월 말까지 금리 인하 요구권을 수용한 건수는 1만7741건으로 전체 국내 은행 수용 건수(8만2162건)의 22%에 달한다.
그렇다면 금리 인하 요구권 행사로 금리를 얼마만큼 낮출 수 있을까. 각 금융회사가 정한 약관과 내규에 따라 금리 인하 요구권이 자율적으로 시행되고 있고, 대출자의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판단한 뒤 금리를 결정하기 때문에 “대출받은 은행에 직접 문의해보라”는 것이 금융회사 관계자들의 일관된 조언이다. 금감원에 따르면 어느 은행은 신용등급이 1단계만 상승해도 금리 인하 요구를 수용하지만, 다른 은행은 신용등급이 최소 2단계 상승해야 금리 인하를 받아들인다고 한다. 대출받고 6개월 이후, 1년에 2회까지만 금리 인하 요구를 수용하는 등 제한을 두는 경우도 있다.
연봉이 올랐거나 부채가 감소했다고 무조건 금리가 인하되는 것도 아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각 은행마다 내부적으로 고객 신용등급 평가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데, 연봉이 올라 신용 점수가 높아지더라도 신용등급에 변화가 없다면 금리가 인하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은행 내부 시스템에서 500점 이상은 1등급, 400점부터 499점까지는 2등급으로 간주한다면, 연봉이 오르고 부채가 줄어 400점에서 499점이 됐다 하더라도 여전히 2등급이기 때문에 1등급 고객에게 주어지는 금리를 적용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신용등급이 상향됐다고 무조건 금리가 인하되는 것 역시 아니다. 더불어민주당 이학영 의원이 금감원으로부터 제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7년 4대 시중은행(KB국민·우리·KEB하나·신한은행)의 대출자(가계 및 기업) 가운데 신용등급이 개선돼 금리 인하를 요구했지만, 감면금리(은행 본부와 영업점이 조정하는 가감금리)가 축소돼 결국 금리 인하를 받지 못한 대출 건수가 194건, 대출 금액으로는 1348억3800만 원에 달했다. 은행들이 감면 금리를 축소한 근거를 기록해두지 않아 그 이유를 알 수도 없다. 이에 금감원 관계자는 “내년부터 대출금리 산출명세서에 금리를 산출한 근거를 적시하게 해 부당한 이유로 감면금리를 축소하는 일을 방지하겠다”고 밝혔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대출 고객의 신용등급이 상향됐더라도 주거래 은행을 다른 은행으로 바꿔 대출받은 은행에서 거래 실적이 줄었다면 우대금리를 줄 수 없다. 반대로 신용등급은 그대로지만 거래 실적이 늘면 금리를 인하해준다”며 “여러 상황을 고려해 대출금리를 정하기 때문에 단순히 신용등급이 올랐다고 금리가 인하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신용대출에 국한해 적용”
금감원은 지난해 ‘금융꿀팁 200선’ 가운데 하나로 금리 인하 요구권을 소개하며 다음과 같은 사례를 제시했다. ‘◯◯은행으로부터 주택담보대출을 변동금리 조건으로 받은 직장인 주담대 씨가 과장에서 팀장으로 승진해 연봉이 크게 증가했다. 주씨는 은행 영업점을 방문해 재직증명서, 급여명세서 등을 제출하고 금리 인하를 신청했다. 이후 ◯◯은행은 자체 심사를 거쳐 주씨의 대출금리를 3.5%에서 3%로 0.5%p 인하하기로 결정했다.’ 주씨가 주택담보대출로 3억 원을 빌렸다고 가정하면 부담해야 하는 연간 이자가 1050만 원에서 900만 원으로 150만 원 줄어드니, 금리 인하 요구권 행사로 꽤 많이 절약한 셈이 된다.그러나 시중은행들은 금리 인하 요구권 행사로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낮추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한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금리 인하 요구권은 사실상 신용대출에만 국한되지, 담보대출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또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소득이 증가했거나 주택 가격이 상승했다면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등에 영향을 미쳐 대출 한도가 증가하는 것이지 금리가 인하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