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영화제 최고상을 수상한 ‘만비키 가족’의 한 장면.(오른쪽) [AP=뉴시스, 사진 제공 · IMDB]
일본 영화가 칸영화제 최고상을 수상한 것은 다섯 번째다. 감독으로는 ‘나라야마 부시코’(1983·이하 칸영화제 기준)와 ‘우나기’(1997)로 두 차례 수상한 이마무라 쇼헤이(今村昌平)가 있어 네 번째 감독이 됐다. ‘우나기’ 이후 21년 만의 수상이라 일본 언론도 대서특필하며 환영했다. 다른 두 감독은 ‘지옥문’(1954)의 기누가사 데이노스케(衣笠貞之助)와 ‘가게무샤’(1980)의 구로사와 아키라(黑澤明)다.
이창동 감독이 나이는 더 많지만 칸영화제 출품 이력만 놓고 보면 고레에다가 선배다. 이 감독은 ‘밀양’(2007)과 ‘시’(2010)에 이어 세 번째 초청을 받았다. 고레에다 감독은 ‘디스턴스’(2001), ‘아무도 모른다’(2004),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 ‘바닷마을 다이어리’(2015)에 이어 다섯 번째 초청을 받았다. 이 감독이 ‘밀양’으로 여우주연상(전도연), ‘시’로 각본상을 받았다면 고레에다 감독도 ‘아무도 모른다’로 남우주연상(아역배우 야기라 유야),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로 심사위원상을 수상했다. 고레에다 감독은 이번 수상으로 2000년대 이후 단연 돋보이는 일본 감독으로 우뚝 서게 됐다.
기자는 고레에다 감독이 ‘디스턴스’로 칸을 처음 찾을 때부터 그의 영화를 관심 있게 챙겨 봐왔다. 사실 그가 서른아홉에 발표한 ‘디스턴스’를 맨 처음 접하고 실망해 칸은 무엇을 보고 무명에 가까운 이 일본 감독을 선택했는지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고레에다의 영화는 매우 일본적인 주제에 천착해왔다. 바로 ‘죽음’이다. 다큐멘터리 감독이었던 그의 극영화 데뷔작 ‘환상의 빛’(1995)은 남편의 갑작스러운 자살로 갓난아기와 함께 남겨진 젊은 아내의 삶에 끼어드는 죽은 남편의 흔적을 다뤘다. ‘원더풀 라이프’(1998)는 죽고 나면 잠시 머무는 연옥에서 평생의 기억 중 가장 행복한 순간을 영상에 담게 되는 사람들이 삶을 성찰하는 내용이다. ‘디스턴스’는 옴진리교를 연상케 하는 사이비종교집단이 집단자살한 뒤 그 유족들이 겪는 트라우마를 담았다. ‘아무도 모른다’는 비혼모인 어머니로부터 버려진 4명의 어린이가 막내의 죽음으로 비극적 결말을 맞는 내용이다.
죽음의 문제를 파고들기 때문일까. 이들 영화의 영상은 시적이고 몽환적이다. 거꾸로 말하면 비현실적이다. 또 영화 속 일본인들은 죽음을 직면해서야 비로소 진심(일본식 표현으로 혼네·本音)을 들려준다. 그런 점에서 죽음은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통과의례 같은 것으로 그려진다. 그렇게 젊은 날의 고레에다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탐구한 감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던 고레에다의 영화가 나이가 들면서 바뀌기 시작했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를 전후해 ‘어떻게 죽을 것인가’라는 주제의식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로 예술적 전회를 이룬다. 그와 함께 구체적 현실에 밀착한 농밀한 영상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초등학교 입학생이 된 외동아들이 산부인과병원에서 다른 아이와 바뀌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아버지가 그 둘을 제자리로 돌려놓으려다 진정한 부성애에 눈 뜨게 되는 내용이다.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아버지는 같지만 어머니가 다른 네 자매가 작은 어촌마을에서 함께 살게 되면서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며 삶의 지혜를 터득해가는 과정을 그렸다. ‘세 번째 살인’(2017)처럼 삶보다 죽음에 더 가깝게 다가선 작품도 간간이 제작하지만 세계 영화팬의 지지를 받는 것은 역시 ‘어떻게 살 것인가’를 다룬 작품이다.
“오즈가 아니라 켄 로치가 되고 싶다”
경쟁부문 심사위원장을 맡은 배우 케이트 블란쳇. [AP=뉴시스]
“몇 년 전 일본에선 죽은 부모의 연금을 계속 타려고 사망신고를 하지 않은 사기사건이 큰 공분을 샀다. 훨씬 심각한 범죄도 많은데 사람들이 왜 이런 경범죄에 그토록 분노하는지 고민하게 됐다.”
고레에다 감독이 칸영화제 언론 인터뷰에서 밝힌 이 영화 제작의 사유다. 복지제도 사각지대에서 부당한 수혜를 누리지만 동시에 사회가 베풀지 못하는 온정을 나누는 이들을 향해 누가 돌을 던질 수 있느냐고 묻고 싶었던 것.
‘만비키 가족’에 대한 해외 언론의 리뷰를 보면 ‘아무도 모른다’의 사회의식과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의 확장된 가족의식이 결합됐다는 내용이 공통으로 등장한다. 2016년 황금야자수상을 수상한 켄 로치 감독의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에 비견하는 글도 많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영국 사회복지제도의 문제점을 정면으로 비판한 영화다. 고레에다 자신도 2015년 영국 ‘가디언’과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나를 (일본 가족영화의 거장) 오즈 야스지로에 비견하는데 정작 나는 켄 로치에 더 가깝다”고 밝힌 바 있다.
따라서 호주 출신 여배우 케이트 블란쳇을 위원장으로 한 경쟁부문 심사위원이 할리우드 영화에 친숙한 이들이라 예술성과 사회성이 강한 ‘버닝’보다 가족애를 다룬 ‘만비키 가족’의 손을 들어줬다는 해석은 핀트가 맞지 않는다. 황금야자수상의 뒤를 잇는 심사위원대상(그랑프리) 수상작인 미국 스파이크 리 감독의 ‘블랙클랜스맨’은 KKK단에 잠입한 흑인 형사를 통해 인종차별을 고발한 작품이다. 심사위원상을 수상한 레바논의 여성감독 나딘 라바키 감독의 ‘가버나움’(무질서한 장소)은 아동인권이 전무한 레바논의 열두 살 소년이 어른을 살해하고 자신과 동생을 착취한 부모를 고발한다는 파격적 내용을 담고 있다.
따라서 ‘만비키 가족’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영화계 인사들의 기대에 좀 더 보편적으로 다가선 반면, ‘버닝’은 그것보다 평론가나 영화마니아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고 보는 편이 자연스럽다. ‘버닝’이 본상 수상에 실패했지만 번외 특별상이라 할 국제비평가연맹상과 기술 분야의 뛰어난 아티스트에게 주는 벌컨상(신점희 미술감독)을 수상했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국내에선 ‘버닝’이 칸영화제 공식 소식지 ‘스크린 데일리’에서 역대 최고 평점인 3.8점(4점 만점)을 받았다는 것만 기억한다. 하지만 ‘만비키 가족’도 3.2점으로 올해 경쟁부문 초청작 20편 중 ‘버닝’에 이어 2위에 올랐다는 점은 간과했다. 평점과 수상 결과가 일치하는 건 아니지만 높은 평점을 받은 작품이 수상후보군에 오르는 것은 사실이다. 이때 그 변별력은 작품의 주제의식이 얼마나 보편적 호소력을 갖느냐에 의해 결정될 수밖에 없다.
칸은 변화하고 있다
레드카펫에서 하이힐을 벗고 입장한 크리스틴 스튜어트(왼쪽). 영화계 성평등을 요구하며 팔짱을 끼고 행진한 여성영화인들. [AP=뉴시스]
심사위원의 무게중심이 감독에서 배우로 바뀐 점도 이런 변화를 추동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 표현의 참신성보다 주제의 보편성에 더 주목하고 있다. 칸영화제 심사위원들이 한국 영화 최초 황금야자수상보다 일본 영화의 다섯 번째 황금야자수상을 선택한 이유도 그 연장선상에서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이번 칸영화제에선 여성영화인의 목소리가 두드러졌다. 5월 12일 뤼미에르 대극장에선 케이트 블란쳇을 필두로 여성영화인 82명이 영화계 성평등을 요구하며 레드카펫에 동시에 올라 서로 팔짱을 끼고 행진하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심사위원 중 한 명인 할리우드 배우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레드카펫에서 여성에게 하이힐 착용을 의무화한 것에 항의해 14일 하이힐을 벗어 들고 맨발로 레드카펫을 걸어갔다.
화룡점정을 찍은 것은 이탈리아 여배우 아시아 아르젠토였다. 영화계 미투운동을 촉발한 미국 영화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폭행 피해자임을 폭로했던 그는 이날 폐막식에서 “나는 1997년 바로 이 장소에서 하비 와인스타인에게 강간당했다. 영화제는 그의 사냥터였다”고 포문을 열었다. 그는 이어 “오늘밤 이 자리에도 여성에게 한 행동으로 책임을 져야 할 이들이 숨어 있다. 이제는 그런 행동을 우리가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엄중 경고했다. 그럼에도 황금야자수상을 수상한 여성은 1993년 ‘피아노’의 제인 캠피언 감독 딱 1명이란 점은 여전히 바뀌지 않았다.
제71회 칸영화제 기타 수상자 명단
감독상 파벨 포리코브스키(‘콜드 워’) 여우주연상 사말 예슬야모바(‘아이카’) 남우주연상 마르첼로 폰테(‘도그맨’) 각본상 알리스 로르바허(‘라자로 펠리체’), 자파르 파나히(‘쓰리 페이스’) 특별 황금야자수상 장 뤽 고다르(‘이미지의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