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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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

자주파-동맹파 갈등은 없다?

한미동맹 유지한 채 북·미 회담 개최 성공시킨 자주파의 저력

  • realistb@donga.com

    입력2018-04-17 14:4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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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 대통령이 4월 9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 제공=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이 4월 9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 제공=뉴시스]

    남북, 북·미 정상회담 개최와 관련해 ‘중국패싱’ ‘일본패싱’이란 말이 돌더니 요즘은 ‘통일부패싱’ ‘국정원패싱’이 유행하고 있다. 대외적으로 남북정상회담을 책임지는 곳은 통일부다. 통일부는 조명균 장관이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회(준비위) 총괄간사이자 의제 개발 및 전략 수립을 담당하는 의제분과위원장을 맡고 있으니 진행 상황에 정통해야 한다. 그러나 통일부에 남북정상회담 진행 상황 등을 물어보면 “청와대에 물어보라”는 말을 반복하고 있다.
    음지에서 일한다는 국가정보원(국정원)도 “진행 중인 사안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다”는 답을 거듭한다. 그러면서도 “우리 원의 김상균 제2차장이 준비위 운영지원분과위원장을 맡고 있고, 의전·경호·보도 실무회담 수석대표도 맡았으니 국정원이 배제됐다는 주장은 말이 되지 않는다. 준비위에는 대(對)언론 조직인 소통·홍보분과가 따로 있으니 국정원은 나설 이유가 없다. 정보기관은 특성상 가만히 있어야 하는 것이 옳다”는 설명을 덧붙인다.


      국정원패싱, 통일부패싱  

    그러나 패싱은 생각 밖으로 심각하다. 우리 예술단의 평양 공연에서도 통일부는 사실상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예술공연 대표로는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가야겠지만, 현장 실무에는 통일부가 참여했어야 한다. 그러나 국장급 이상 통일부 간부는 단 한 명도 평양에 가지 못했다. 과장급 4명만 실무지원 차원에서 따라갔을 뿐이다. 

    3차 남북정상회담에는 외교부와 국방부 등 다른 부처도 관여해야 한다. 이들도 준비위에 대표를 보내놓고 있지만, 통일부 처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왜 이러한 현상이 생긴 것일까. 정답은 간단하다. 북한과의 통로를 열어가는 이들은 국정원이나 통일부 소속 공무원이 아니기 때문이다. 과거 같았으면 유력 정치인과 통하기에 ‘비선(秘線)’으로 표현했어야 할 민간인들이 북한과 접촉해 행사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들은 사회단체나 종교기구 같은 비정부기구(NGO)에 소속돼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비정부기구 구성원 가운데 일부가 각기 전문성에 따라 각 부처 개혁위원으로 참여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대공(對共)수사권을 경찰로 이첩하라는 등 결론을 내린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 간사는 국정원과 각을 세워온 참여연대 소속이었다. 

    통일부 정책혁신위원회는 5·24조치와 개성공단 전면 중단이 헌법이나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등에 근거하지 않고 통치 행위 방식으로 이뤄진 것이라며, 여건이 조성되면 개성공단을 재개해야 한다는 의견서를 낸 바 있다. 이 위원회를 이끈 이는 2000년대부터 남북 민간교류에 참여해온 종교인이다. 대북 문제를 다루는 정부 부처의 개혁을 종교인에게 맡긴 것은 이례적이란 의견이 제법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 가운데 일부는 박근혜 정부가 만든 대한민국 통일준비위원회(통준위)에도 참여한 바 있다는 사실이다. 박근혜 정부는 범(凡)정부적인 통일 준비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진보성향의 인물들을 참여케 했다. 이에 통준위에서 논의된 내용은 진보와 보수가 공유했다. 그러나 지금 보수성향의 통일운동가나 학자들은 3차 남북정상회담과 관련된 정보를 얻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 때문에 언론이 공무원을 취재해도 별다른 내용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한 소식통은 북한의 6차 핵실험 이후 긴장이 감돌았던 한반도 분위기가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180도 바뀐 것은 민간인들의 노력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들은 북한과 연락선을 유지하며 통일운동을 해왔다. 3차 남북정상회담은 이들에 의해 성사된 측면이 있다. 지난해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의 레바논 방문 이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회 위원장이 평창동계올림픽에 참가하겠다는 신년사를 발표했다. 이어 선수단과 응원단, 예술단을 파견하고 김여정 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을 특사로 보냈다. ‘어’ 하는 순간에 남북정상회담 합의도 이뤄졌다. 물 흐르듯 유연하게 합의가 이뤄진 것인데, 사전 준비 없이 이렇게 순항했다고 보면 오산이다.”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만나고자 4월 11일 출국한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사진 제공=뉴시스]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만나고자 4월 11일 출국한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사진 제공=뉴시스]

      동맹파 압도하는 자주파   

    문정인 대통령 외교안보 특보는 미국 언론과 인터뷰 등에서 여러 차례 ‘한국의 자주적인 외교와 국방’을 언급한 바 있다. 한 관계자는 “문 정부의 통일노선은 자주통일이다. 그러나 한미동맹을 건드리면 불안해하는 국민이 적잖기 때문에 한미동맹을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점진적으로 이뤄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위해서는 국민 지지가 가장 중요하기에 문 정부는 포퓰리즘적 요소도 유지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북한은 3차 남북정상회담을 성사하고자 3번의 행사를 마련했다. 방남(訪南) 전에는 특사란 사실을 공개하지 않았던 김여정이 문 대통령을 만나 ‘문재인 대통령을 빠른 시간 내 만날 용의가 있다. 편한 시간에 북을 방문해달라’는 김정은의 친서를 전달한 것이 시작이었다.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이 고위급회담 대표로 와서 또 한 번 제의했다. 그리고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특사로 방북했을 때는 판문점 평화의집을 장소로 제시해 3차 남북정상회담을 확정 지었고, 북·미 정상회담까지 제안했다. 

    이 제의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빠르게’ 받아들임으로써 북·미 정상회담도 확정됐다. 한 소식통은 “트럼프의 유연성이 놀랍다”며 트럼프가 신속히 북·미 정상회담을 받아들인 것은 마이크 펜스 부통령의 실패와 문 정부의 노선인 ‘자주’를 파악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트럼프가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에 펜스 부통령과 함께 오토 웜비어의 부모를 보내 천안함추모공원 등을 방문하게 한 것은 한국 보수파를 일으키려는 의도였을 테다. 그러나 김여정이 그것을 물리쳐버렸다. 김여정은 펜스가 참석하는 만찬에도 스스럼없이 등장하는 여유를 보였지만, 펜스 부통령은 자리를 뜨고 말았다. 한국 국민의 관심을 이끌어내야 한다는 측면에서 펜스는 김여정에게 완패한 것이다. 남북이 자력으로 회담을 만들어가는 모습을 보이자 트럼프는 자신이 직접 나서기로 한 것으로 보인다.” 

    남북문제를 지켜보는 이들은 4월 11일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의 비밀 방미에 주목한다. ‘비밀’이라는 수식어를 붙였지만 정 실장의 방미는 바로 언론에 알려졌고,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만날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정 실장의 출국이 알려지기 몇 시간 전 문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 준비위 제5차 전체회의에 참석해 “남북정상회담이 북·미 정상회담의 성공으로 이어지는 길잡이 구실을 할 수 있도록 외교부와 국가안보실 등은 미국과 긴밀하게 정보를 교환하라”고 지시했다. 

    한 관계자는 “볼턴은 대북 강경파다. 이 때문에 문 대통령은 비밀이라는 수식어를 붙여 공개적으로 정 실장을 보냈다. 정 실장이 볼턴을 만나면, 한미는 이견이 없거나 적은 것으로 비칠 수 있다. 이 회담을 거부하면 한국에 반미여론이 일 수 있으니 미국은 피할 수도 없다. 한미동맹의 굳건한 유지라는 모양새를 만들면서 미국도 끌고 나가려는 문 정부의 의지에 놀랐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속내가 무엇이든 트럼프와 북한은 장단을 맞춰주고 있다. 그 증거로 정 실장의 방미 직전인 4월 9일(현지시각) 트럼프가 “여러분은 6월 초 이전에 김정은을 만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공언한 점과 4월 10일 북한 관영매체들이 김정은이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회의를 열어 처음으로 북·미 정상회담을 언급했다고 보도한 점을 꼽는다. 

    한 관계자는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안보 문제를 놓고 자주파와 동맹파가 대립했는데, 문 정부에서는 그러한 대립이 전혀 노출되지 않고 있다. 어찌됐든 한미동맹을 유지하는 모습을 보이며 남북관계를 끌고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보수성향일 수밖에 없는 공무원을 배제한 것도 문 대통령이 성공하고 있는 한 요소”라고 분석했다. 

    3차 남북정상회담은 북한의 6차 핵실험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대북제재의 틀 위에서 열리기에 한반도 모순을 돌파할 묘수를 찾기는 어렵다. 한 소식통은 “그 문제는 북·미 정상회담으로 넘겨버릴 것이다. 3차 남북정상회담의 합의사항은 간단히 도출된다. 남북이 각각 요구하는 것과 공동으로 추진할 것 등 세 가지 사항으로 합의문을 만들 전망이다. 남측은 한반도 비핵화, 북측은 체제 보장과 안전을 요구하고, 공동사항으로 한반도 공영을 거론하는 것이다. 이러한 합의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으니 3차 남북정상회담은 가장 화기애애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별도로 남북이 협력할 수 있는 부분을 넓히는 데 주력할 것이다.”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회 조직도. 통일부와 국가정보원이 핵심을 맡고 있는 듯하지만 이들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사진 제공=뉴시스]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회 조직도. 통일부와 국가정보원이 핵심을 맡고 있는 듯하지만 이들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사진 제공=뉴시스]

      대북제재 예외 확대에 주력   

    평창동계올림픽 때 전세기 운항 허용 등은 유엔과 미국이 정한 대북제재안의 예외로 허용된 바 있다.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안이 인도적 지원은 허용하고 있는 만큼 남북은 인도적 지원과 예외 경우를 늘리려 할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허용되려면 미국의 협조가 절대적이기에 문 정부는 한미공조 유지에 애를 쓴다. 

    북한은 6차 핵실험과 화성-15형 시험발사로 사실상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을 완료했기에 당분간은 도발할 이유가 없다. 이러한 북측 태도가 북·미 정상회담에서 북한에 유리하게 작용할 공산이 크다. 여기에 먼저 북·중 정상회담을 한 중국이 미국과 패권경쟁을 하는 차원에서 예외 경우를 늘려간다면 북한은 경제를 회생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잡게 된다. 

    반면 미국과 한국은 북한을 급변케 할 수 있는 기회를 잡는다. 물적 지원과 함께 북한을 민주화하는 노력을 좀 더 용이하게 해볼 수 있다. 그러나 1994년 제네바 합의 이후 이러한 경쟁에서 북한이 늘 완승했다. 북한은 경제도 살리고 핵·미사일 개발도 완성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같은 결과가 초래될 것이라고 예단할 수는 없다. 그런데 이번 2회전에는 자주 색채가 강한 비정부기구 사람들이 참여하기에 의외의 결과를 낳을 수 있다. 한 관계자는 “문 정부의 자주외교는 주사파와 연결됐다는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의장 출신인 임종석 비서실장이 3차 남북정상회담을 총괄하고 있으니 남남갈등이 일어날 개연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결국 도덕성 싸움이 될 것이다.

     대미자주를 내세우던 이들의 도덕성이 무너진다면 문 대통령의 노력도 흔들릴 수 있다. 제3국에서 북한과 접촉해 정상회담 무대를 만들어온 민간인들의 행태도 주목해야 한다. 시간이 지나면 이들의 움직임은 공개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난관을 뚫을 수 있다면 문 정부는 사상 초유로 한반도 문제를 주도적으로 이끌어 갔다는 찬사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4월 10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회 위원장은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회의에서 처음으로 북·미 정상회담을 언급했다. [사진 제공=뉴시스]

    4월 10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회 위원장은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회의에서 처음으로 북·미 정상회담을 언급했다. [사진 제공=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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