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이색 반려동물로 각광받는 고슴도치. 인기가 높은 만큼 유기되는 고슴도치도 많다. [사진 제공=Shutterstock]
서울 광진구의 대학생 김모(25) 씨는 얼마 전 집을 나서다 자취방 입구에서 종이상자 하나를 발견했다. 재활용쓰레기를 내놓는 날도 아닌데 누가 잘못 가져다 놓았나 싶어 상자 안을 살펴봤다. 신문지와 밤송이 같은 가시뭉치가 보였다. 뭔가 싶어 가시뭉치를 살짝 건드려본 김씨는 깜짝 놀랐다. 꿈틀거리며 움직였기 때문이다. 가시뭉치의 정체는 고슴도치였다. 그는 “추워서인지 몸을 웅크리고 있어 처음에는 뭔지 몰랐다. 자세히 보니 바들바들 떠는 고슴도치였다”고 말했다.
얼어 죽지 않을까 싶어 일단 집에 데려왔지만 처치 곤란이었다. 김씨는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해 집을 비우는 시간이 많고 반려동물을 기를 여력도 없었기 때문. 김씨는 “인근 동물병원에 문의하니 임시보호소를 알려줬고 거기로 고슴도치를 보냈다”고 말했다.
반려동물 산업이 크게 성장하며 개, 고양이 외에도 고슴도치, 햄스터, 토끼, 뱀, 거북 등 이색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도 빠르게 늘고 있다. 또 특정한 이색 동물을 모아놓은 동물카페도 하나 둘씩 생기고 있다. 그에 비례해 이색 반려동물이 버려지는 사례 역시 크게 증가했다.
고슴도치, 도마뱀은 보살펴줄 시설도 없어
개, 고양이를 제외하고 가장 많이 버려지는 동물은 토끼, 햄스터 등 소형 포유류다.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파악된 유기동물 신고 건수 58만6000건 가운데 개, 고양이를 제외하면 토끼가 2550건으로 가장 많고 고슴도치가 1076건으로 뒤를 이었다. 햄스터와 기니피그는 각각 754건, 559건이었다. 이외에도 조류, 파충류 등 다양한 동물이 버려졌다.아직 개, 고양이에 비해 유기 건수가 적지만 증가세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동물보호센터는 개, 고양이 이외의 구조 동물은 기타로 분류해 관리한다. 기타 유기 건수는 2008년 405건에 불과했으나 2016년에는 1218건으로 3배나 늘었다. 한편 개는 24.3% 증가했고 고양이는 5.2% 감소했다. 독특한 모습에 반해 덥석 집에 들이는 사례가 많은 것.
하지만 이색 반려동물은 개, 고양이 등에 비해 사육 난도가 높다. 고슴도치를 1년째 키우고 있는 김모(28·여) 씨는 “고슴도치의 귀여운 외모에 반해 별생각 없이 입양했다 기르기를 포기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고슴도치가 가장 좋아하는 먹이가 밀웜 같은 작은 벌레다. 하지만 고슴도치가 곡물만 먹는다고 생각해 집에 들였다 말린 벌레를 만지지 못해 결국 파양하는 사례를 봤다”고 밝혔다.
슈거글라이더를 기르는 이모(33) 씨는 “생긴 모습만 보면 좋은 냄새가 날 것 같지만 슈거글라이더는 반려동물 중에서도 악취가 많이 나는 편이다. 게다가 아무 데나 배변해 손에 올려 쓰다듬다 변 세례를 당하기 일쑤다. 단순히 생김새가 예쁘다고 해 쉽게 들여놓을 동물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버려지는 동물의 종류도 다양하다. 지난해 10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이용득 의원이 환경부와 농림축산식품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17년까지 1년간 유기 야생동물 신고 건수는 총 50건이었다. 야생동물을 유기한다는 표현이 의아할 수 있으나 햄스터, 기니피그, 토끼 등 전통적 반려동물이 아닌 이색 반려동물군은 야생동물로 분류된다.
버려진 동물을 종별로 살펴보면 거의 동물원 수준이다. 사막여우, 프레리도그, 라쿤(미국 너구리) 등 포유류부터 콘스네이크, 이구아나, 호스필드 육지거북, 사바나 왕도마뱀, 멕시코 도롱뇽 등 잘 알려지지 않은 동물도 많다. 이 중 사막여우는 국제적 멸종위기종 2급 포유류라 개인 간 거래가 불법이다.
버려지는 야생동물은 늘어나지만 이들을 보호할 시설은 거의 없다. 동물자유연대 관계자는 “개나 고양이가 사람과 비슷한 환경에서 사는 것과 달리 고슴도치, 친칠라 같은 동물은 습도나 온도 등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집 밖에 버려지면 목숨을 잃을 확률이 높다. 운 좋게 구조된다 해도 이들을 보호할 장소가 마땅치 않다”고 말했다.
오세아니아에서 온 애완용 하늘다람쥐 슈거글라이더. 한국과 기후가 다른 곳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사육하기가 어렵다(위). 제주 한 아파트 단지에서 발견된 애완용 비단뱀 불파이톤.(아래)
죽거나 혹은 생태계 파괴자 되거나
전문가들은 실제 버려지는 동물은 더 많을 것으로 보고 있다. 박소연 동물권단체 케어 대표는 “작은 동물은 유기되면 발견이 어려울 뿐 아니라 버려지자마자 외부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죽는 경우도 많아 신고된 것보다 훨씬 많은 동물이 길에서 목숨을 잃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애완용 하늘다람쥐로 알려진 슈거글라이더, 육지거북, 열대우림의 뱀이나 도마뱀 등 한국보다 훨씬 따뜻한 지역에 살던 동물은 버려지면 살아남기 힘들다.버려진 이색 동물은 사람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기 십상이다. 2016년 6월 제주 한 아파트 단지에서는 몸길이가 1.2m에 달하는 뱀이 발견됐다. 지하실 입구에 똬리를 튼 뱀을 본 주민의 신고로 119안전센터 관계자들이 포획했다. 이 뱀의 정체는 아프리카 열대우림에 서식하는 ‘볼파이톤’으로 미국 등지에서 잘 알려져 있다. 독은 없지만 머리가 독사처럼 삼각형인 데다 덩치도 작지 않아 주민이 놀라 신고한 것.
놀라기만 하면 그나마 다행이다. 버려진 후 야생에서 번성해 생태계 교란종으로 자리 잡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 예가 1980년대 후반 반려동물로 인기 있던 붉은귀거북이다. 수명이 길고 관리가 쉬워 인기 높은 동물이었다.
하지만 방생, 유기 등으로 야생에 나온 붉은귀거북은 붕어, 피라미 등 고유어종을 닥치는 대로 잡아먹으며 황소개구리 뒤를 잇는 대표적 생태교란종이 됐다.
사람을 해칠 수 있는 동물도 반려동물로 들어와 일부 유기되고 있다. 2015년 7월 강원 횡성 한 저수지에서 아마존강에 사는 식인 물고기 피라냐 3마리와 잡식성 대형 어종인 파쿠가 발견됐다. 파쿠도 피라냐처럼 단단한 치아를 가진 어종이다. 관상용으로 사육하던 것을 버린 것.
전시용으로만 수입 가능한 악어거북, 늑대거북 등 대형 민물 육식거북을 반려동물로 기르는 사람도 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악어거북 분양’ ‘늑대거북 분양’ 등으로 검색하면 분양해주겠다는 글을 쉽게 볼 수 있다. 아직 국내에서 방생된 개체가 발견된 적은 없지만 두 종 모두 기르기가 까다로워 버려진 개체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민물의 티라노사우르스’로 불리는 악어거북은 주 서식지인 북미에서는 종종 사람을 공격하는 사고가 일어난다. 단단한 턱으로 사람 발가락이나 손가락을 물어 끊는 것. 국내보다 먼저 희귀 애완동물 사육 붐이 불었던 일본에서는 생태계 교란종으로 악명이 높다. 게다가 두 거북 모두 덩치가 크고 공격성이 강해 여름철 강가나 냇가를 찾은 피서객이 피해를 입을 수 있다.
라쿤은 귀여운 외모와 사람을 꺼리지 않는 성격 때문에 개인 분양이 잦고 ‘라쿤카페’ 등도 성업 중이다. 하지만 야생성이 강해 길들이기 쉽지 않은 데다 광견병을 옮길 수도 있다. 지난해 11월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가 발표한 ‘야생동물 카페 실태조사 보고서’(동물카페 보고서)에 따르면 광견병 외에도 라쿤이 옮길 수 있는 인수 공통 전염병은 20종에 달한다.
식품위생법 시행규칙 제36조에 따르면 동물카페를 운영할 때 동물이 사는 공간과 방문객이 음료를 마시는 공간을 구분해야 한다. 하지만 동물카페 보고서에 따르면 동물카페는 대부분 이 규칙을 지키지 않아 동물들이 손님 사이를 돌아다니는 경우가 많았다. 법 조항은 있지만 관리·감독이 부실하기 때문. 전시된 동물의 질병 상태나 예방접종 내용에 대한 공개 의무도 없어 손님들이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한때 인기 반려동물이었지만 지금은 생태교란종이 돼 수입마저 금지된 붉은귀거북. [사진 제공=동아일보]
“대형 동물원 아니면 희귀동물 못 들여오게 해야”
동물카페가 폐업이라도 하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동물카페 관련 규정이 없어 카페에 살던 동물을 적법하게 처리할 방법이 전무하다. 지난해 8월 한 건물주가 동물카페를 운영하던 세입자의 만행을 인터넷 커뮤니티에 고발했다. 동물카페를 운영하다 사정이 어려워지자 폐업한 뒤 동물을 전부 원룸에 가둬놓은 것. 건물주가 이 사실을 알게 된 건 다른 세입자가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항의했기 때문이다. 그는 악취의 진원지로 꼽힌 원룸에 들어가 보고 깜짝 놀랐다. 원룸에 갇힌 동물들이 배고픔에 시달리다 죽어 썩어가고 있었던 것. 배설물 냄새 또한 대단했다. 동물권단체 케어는 이 동물카페 사장을 동물보호법 위반혐의로 수사기관에 고발했다.동물권 단체와 전문가들은 동물카페 등의 영업을 금지하고 야생동물 수입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는 동물카페 보고서를 통해 ‘인수 공통 질병 전파를 예방하고 공중보건체계를 확립하기 위해 식품접객업소에서 야생동물을 관람 목적으로 사육하는 행위를 금지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항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는 ‘라쿤카페로 인한 질병발생 및 생태계 교란 위험에 대한 의견서’에서 ‘(라쿤 등) 특수한 야생동물에 대해서는 질병이나 의학적 지식이 부족하고 이 동물을 진료할 수 있는 수의사도 찾기 어렵다. 국민건강을 위해서라도 야생동물 카페 같은 소규모 체험시설에 대한 관리와 규제방안 마련이 시급하다’고 설명했다.
박소연 대표는 “동물 카페는 물론이고, 사육 지식과 시설을 갖추지 못한 개인에게 야생동물을 파는 것 자체가 문제다. 2016년 ‘동물원 및 수족관의 관리에 관한 법률’이 개정돼 각 동물에게 적당한 서식환경을 제공해야 한다는 규정이 신설됐지만 처벌규정이 없다. 이에 자격을 갖춘 집단이나 개인을 제외하고는 동물 수입 등을 막는 법률을 제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하지만 국회에서는 관련 법안이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폐업한 동물카페에 고양이로 추정되는 동물이 갇혀 있는 모습. [사진 제공=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