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제공·국립극단]
연극 ‘3월의 눈’은 봄기운이 완연한 3월에 내리는 눈처럼 추운 겨울을 치열하게 살다 모든 것을 내주고 떠나는 노부부 장오(오현경, 오영수 분)와 이순(손숙, 정영숙 분)의 이야기다. 2011년 초연 이후 고(故) 장민호, 고(故) 백성희, 박혜진, 박근형, 변희봉, 신구 등 관록이 묻어나는 배우들이 출연했다. “이 작품은 생성과 소멸에 대한 헌사”라고 말한 연출자 손진책은 특유의 절제된 연출 미학으로 달항아리 같은 소박한 우아함을 연극에 투영했다.
3월 어느 날, 노부부는 마지막 남은 집 한 채마저 내줘야 하는 현실에 부딪혔지만 문창호지를 바르며 새봄을 맞는다. 그들은 6·25전쟁의 참혹한 상황에서 만났으나 시대를 원망하지도, 절망하지도 않은 채 묵묵히 살아온 우리네 부모다. 새로운 주인을 맞을 이 고즈넉한 한옥은 관광지로 떠오른 주변 상황에 맞춰 철거된 뒤 3층 건물로 변신할 예정이다. 자신과 다른 이념적 생각을 가진 자식을 내친 일이 평생 가슴에 맺혀서인지 장오는 손자에게 기꺼이 모든 것을 물려준다. 행여 손자가 동네에서 손가락질이라도 받을까 걱정된 장오는 손자며느리에게 오지 말라고 단단히 이르고는 3월의 눈을 맞으며 새벽에 홀로 요양원으로 떠난다. 아내와 추억을 가슴에 묻은 채 그녀가 다 만들지 못한 빨간 스웨터를 입고 길을 떠난다. 화려하진 않지만 평안하던 그들이 만나 평생 일군 집은 문짝과 마루, 기둥으로 다시 쓸 만한 목재가 모두 뜯겨나가고 앙상한 뼈대만 남는다. 이를 지켜보는 관객의 가슴 한켠에는 쓸쓸함이 밀려든다. 내릴 때는 찬란하지만 땅에 닿는 순간 녹아버려 더 서글픈 우리네 인생을 연극 ‘3월의 눈’은 수묵화처럼 펼쳐 보인다. 특별한 갈등구조가 없어 다소 밋밋할 수 있으나 우리가 놓치고 있는 삶의 빈자리를 성찰하게 만든다.
다만 연출가 이윤택과 밀양연극촌을 둘러싼 성폭력 논란이 거세게 불어닥치는 요즘, 밀양연극촌 대표와 이사장직을 맡았던 배우 손숙의 연기를 바라보는 관객 마음은 편치만은 않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