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가상화폐 커뮤니티나 가상화폐 정보 단톡방(카카오톡 단체방)을 필두로 정부의 가상화폐 규제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다. 단순히 규제가 시행됐다고 해서 이들이 분노하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정부가 가상화폐 규제를 두고 나흘간 2번이나 손바닥 뒤집듯 입장을 바꾼 것부터가 문제라고 지적한다. 1월 23일 발표된 규제안과는 거리가 먼 가상화폐거래소 폐쇄 카드를 몇 번이나 내세울 필요가 있었느냐는 것. 일각에서는 정부가 거래소를 폐쇄하겠다며 가상화폐 시세조종을 한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하고 있다. 정부도 가상화폐 관련주에 투자한 정황이 포착됐고, 거래소 폐쇄 소식을 먼저 안 공무원이 가상화폐 투자로 이득을 본 사실도 드러났다.
폐쇄 두고 갈팡질팡에 질렸다
1월 23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에서 열린 한국암호화폐투자시민연합 출범 기자회견장 모습. [뉴스1]
하지만 투자자들은 이미 정부에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1월 15일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대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전주 81.9%에서 72%로 10%가량 떨어졌다(이하 여론조사와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인터넷 홈페이지(www.nesdc.go.kr) 참조. 그런데 15일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가상화폐거래소 폐쇄 가능성을 재차 시사하자 가상화폐는 또 폭락했다.
다음 날인 1월 16일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불이 붙었다. 가상화폐 규제에 반대하는 내용의 청원이 20일 만에 20만 명 이상의 동의를 받은 것. 청와대가 내세운 원칙에 따르면 한 달 내 20만 명 이상 동의를 얻은 청원은 정부 관계자가 30일 이내에 답변을 내놓도록 돼 있다. 이 청원은 지난해 12월 28일 ‘가상화폐규제반대, 정부는 국민에게 단 한 번이라도 행복한 꿈을 꾸게 해본 적 있습니까?’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것이다. 청원자는 ‘일부 가상화폐를 불법적으로 이용하거나 큰돈을 투자해 잃은 사람들 때문에 건전한 투자를 하는 사람들까지 불법 투기판에 참여한 사람들로 매도됐다’며 정부의 규제 움직임을 비판했다. 이 청원은 1월 11일까지 6만여 명이 참여하는 데 그쳤다. 하지만 정부가 거래소 폐쇄 발언을 계속 번복하자 닷새 만에 20만 명을 넘어섰다.
같은 날 문재인 대통령도 정부 관계자들을 질책했다. 문 대통령은 1월 16일 국무회의에서 “부처 간 협의와 입장 조율에 들어가기 전 각 부처의 입장이 먼저 공개돼 정부부처 간 엇박자나 혼선으로 비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해 11월부터 ‘가상화폐=투기’라는 부정적 입장을 고수해왔다. 하지만 정부도 가상화폐거래소 관련주에 투자한 정황이 포착됐다.
1월 16일 국민의당 이찬열 의원이 중소벤처기업부(중기부)로부터 제출받은 ‘가상화폐거래소 기업 투자 현황’ 자료 등에 따르면 중기부 모태펀드의 출자를 받은 벤처캐피털 16곳이 총 28개 펀드를 이용해 가상화폐거래소에 412억 원을 투자했다. 모태편드는 개별 기업에 직접 투자하는 대신 창업투자회사 등 벤처캐피털에 출자하는 목적의 펀드다. 자금을 받은 벤처캐피털은 민간자금을 매칭한 펀드를 통해 개별 기업에 투자한다.
정부도 가상화폐 투자 간접 관여
1월 19일 오전 바른정당 하태경 최고위원이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작전세력이 정부의 가상화폐 규제 소식을 이용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뉴스1]
일부 가상화폐 커뮤니티와 단톡방에는 정부가 거래소 폐쇄 카드로 가상화폐 가격조종에 나선 정황이 있다는 의혹이 퍼지고 있다. 가상화폐거래소 관련주 중 하나에 대한 정부 투자 내역이 의심스럽다는 것. 투자자들은 정부가 가상화폐거래소 폐쇄를 이야기할 때마다 관련주를 매매했다는 것을 근거로 내세운다. 논란이 된 주식은 ‘우리기술투자’로 지난해 9월 기준 두나무의 지분을 7.13% 보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주식시장에서는 가상화폐 관련주로 통한다.
실제로 주식 HTS(홈트레이딩시스템)를 통해 해당 주식의 매매동향을 확인했다. 박 장관이 가상화폐거래소 폐쇄 카드를 꺼낸 1월 11일 우리기술투자의 기관별 매매동향 중 국가·지자체 내역을 살펴보면 당일 5597주를 매수했다고 기록돼 있다. 개인이나 외국인 투자자들도 매수세를 보였으나 기관 중에서는 유일한 매수자였다. 이후 다시 거래소 폐쇄 가능성이 시사된 15일 정부는 매수한 5597주를 모두 팔았다.
투자자들은 정부가 박 장관의 발표 직후 주식을 산 뒤 1월 15일 김 부총리의 발언 직전에 판매한 것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11일 해당 주식은 주당 6650원으로 장을 마감했다. 15일에는 주당 9390원까지 올랐다. 하지만 김 부총리의 발언 이후 하락세를 반복해 1월 22일 6530원까지 떨어졌다. 물론 이는 의혹에 그친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정확한 주식 매수·매도 시점을 알 수 없어 정부의 발표를 미리 알고 투자에 나섰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정치권에서도 정부가 시세조종에 나섰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바른정당 하태경 최고위원은 1월 19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가 1월 15일 오전 9시에 가상화폐 관련 엠바고 보도자료를 공지하고 9시 40분 엠바고를 해제했다. 이 40분이 일종의 작전시간으로 시간대별 시세 변동을 분석해보면 엠바고 해제까지 시세차익이 큰 폭으로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엠바고를 걸었던 발표 내용은 ‘거래소 폐쇄는 투기 억제 대책 중 하나로 범정부 차원의 협의를 거쳐 결정할 예정’으로, 보도 이후 가상화폐 시세가 소폭 반등했다. 하 최고위원은 “내부자들은 저가에 매수했고 아무것도 모르는 국민만 고점에서 물렸다”고 말했다.
가상화폐 규제 당국 직원이 정부의 규제 관련 발표를 미리 알고 가상화폐를 처분한 사실도 투자자들을 화나게 했다. 금융감독원(금감원)은 1월 18일 “국무조정실에 파견된 직원이 가상화폐 대책 발표 전 보유 중인 가상화폐를 매도했다는 통보를 받고 자체 조사에 나섰다”고 밝혔다. 바른정당 지상욱 의원은 이날 국회 정무위원회 긴급현안보고에서 “금감원 직원이 정부 대책 발표 직전 보유 중이던 가상화폐를 매도했다는 첩보가 있다”고 최홍식 금감원장에게 말했다. 이에 최 원장은 “통보를 받아서 조사 중”이라고 답했다.
하다 하다 공무원까지
금감원은 보도자료를 통해 ‘지난해 2월부터 국무조정실에 파견된 직원 A씨가 가상화폐 거래를 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조사 결과 그는 지난해 7월부터 12월 11일까지 약 1300만 원을 가상화폐에 투자해 700만 원의 수익을 얻은 것으로 밝혀졌다. 국무조정실이 가상화폐 태스크포스(TF) 총괄부서인 데다 12월 13일 긴급대책회의를 열고 규제 대책을 발표한 점으로 미뤄보면 A씨가 이와 같은 정보를 투자에 이용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금감원 직원 외에도 내부 정보를 이용해 가상화폐 투자에 나선 공무원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홍남기 국무조정실장은 1월 18일 정무위원회 현안보고 자리에서 “내부거래 관계 공무원 1, 2명의 사례가 있어 진상조사를 하도록 했다. 공무원의 가상화폐 투자가 적절하지 않다는 이야기를 전달한 바 있다”고 밝혔다.
공무원 등 정부 관계자들이 가상화폐 규제 정보를 이용해 이득을 봤다는 의혹은 정부 지지율에 타격을 입혔다. 리얼미터가 1월 22일 발표한 문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율은 66%를 기록했다. 리얼미터에 따르면 이는 북한의 6차 핵실험 여파로 취임 후 최저치를 기록한 지난해 9월 셋째 주(65.6%)에 이어 두 번째로 낮은 수치다.
한편 야당은 정치 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1월 19일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는 원내대책회의에서 “문재인 정부 인사들이 가상화폐 투자에 많이 참여했다는 제보가 있었다. 이런 가운데 금감원 직원이 내부 정보를 이용해 투자이익을 챙기는 사건이 적발된 것을 보면 시중에 떠도는 이야기가 결코 허위사실이 아니라는 점이 밝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가상화폐 전업투자자들은 정부가 시세조종으로 수익을 냈다는 것은 분노에 찬 대중의 얘기일 뿐 사실이라 보기는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정부가 시세조종에 대한 비난을 감수하고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너무 적다는 것이다. 그보다는 정부 당국자들이 거래소 폐쇄 같은 극단적 조치를 계속 꺼냈다 번복하면서 신뢰를 잃은 것이 더욱 문제라는 지적이다. 한 전업투자자는 “정부가 블록체인 기술을 살리되, 가상화폐에 대한 투기를 진정시킬 중·장기 대책을 신중히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