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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까지 음식점에서 일하던 김모(27) 씨의 말이다. 늦은 저녁시간대에 일하다 보니 가끔 술에 취한 손님이 욕을 퍼붓거나 심한 경우 손찌검을 하려 들 때가 있었다. 진상 손님에게 붙잡혀 한참 승강이를 했는데 업주는 서빙이 늦었다며 타박을 줬다고 한다. 그는 “한번은 손님이 화가 난다며 얼굴에 맥주를 부어 쫄딱 젖었는데도 사장은 내 발 뒤축을 걷어차며 ‘군대도 다녀온 사람이 왜 이렇게 동작이 굼뜨냐’고 소리를 질렀다”고 밝혔다.
손님과 업주의 괴롭힘에 시달리는 아르바이트생은 김씨 외에도 많다. 하지만 아르바이트생은 괴롭힘을 견디며 다음 날도 지긋지긋한 일터로 나간다. 월급을 밀리지 않고 제때 주는 아르바이트 자리 찾기도 쉽지 않아서다.
옷가게에서 일하던 장모(24·여) 씨는 지난달 아르바이트를 그만뒀다. 업주의 성희롱이 도를 넘었기 때문. 업주는 틈만 나면 장씨에게 “다리가 예쁘다. 한 번만 만져봐도 되겠느냐”는 식의 발언을 했다. 기분은 나빴지만 섣불리 아르바이트를 그만둘 수는 없었다. 학업을 병행해야 하는 상황이라 다른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웠고, 무엇보다 급여가 다른 곳에 비해 많았다.
장씨가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자 업주의 발언 수위는 점차 높아졌다. 장씨는 “내가 자꾸 장난식으로 넘기니까 재미를 붙였는지 급여를 올려줄 테니 데이트해달라는 식의 얘기까지 했다. 이러다 무슨 일이 생기겠다 싶어 아르바이트를 그만뒀다. 혹시 업주에게 전화가 올까 두려워 전화번호도 바꿨다”고 말했다.
폭력에 시달리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 9월에는 경기 의정부시 한 프랜차이즈 음식점에서 점주 A(37)씨와 동업자 B(43)씨가 아르바이트생인 C(당시 19)씨를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B씨는 C씨가 자신을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다며 빗자루로 C씨를 때렸고, 소화기를 들고 내리칠 것처럼 위협하기도 했다.
뒤늦게 피해사실을 안 C씨 아버지의 제보로 이 사건이 언론에 알려지자 A씨는 C씨를 위협하기 시작했다. A씨는 “본사에서 C씨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고 얘기하고 있다”며 “해당 사건을 보도한 매체에 B씨는 치킨집과 무관하다는 내용으로 정정보도를 하게 하라”고 협박했다. 실제로 C씨는 협박에 못 이겨 해당 매체에 수차례 정정보도를 해달라고 요구했다. A씨와 B씨는 각각 강요와 특수상해 혐의로 검찰에 기소돼 B씨는 1심에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벌금 300만 원 형을 받은 A씨는 최종심까지 갔으나 11월 1일 대법원 3부(주심 이기택 대법관)는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실제로 아르바이트생을 가장 많이 괴롭히는 것은 업주였다. 아르바이트 구인구직 전문 사이트 ‘알바몬’이 지난해 6월 아르바이트생 115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85%가 ‘근무 도중 갑질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누가 갑질을 했느냐’는 질문에 응답자들은 사장·고용주(38.3%)를 1위로 꼽았다. 뒤이어 손님(26.8%), 상사·선배(20%)로 나타났다. 김씨는 “물론 아르바이트생을 인간적으로 대우하는 좋은 업주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인터넷 커뮤니티만 검색해도 점주의 갑질 사례를 쉽게 찾아볼 수 있을 만큼 인격 모독이나 욕설, 폭행 및 성추행 등으로 고통받는 아르바이트생이 많다”고 말했다.
이가현 아르바이트 노동조합 알바연대알바노조(알바노조) 위원장은 “(업주의) 갑질과 임금체불은 밀접한 연관이 있다. 임금체불이 일어난 곳에서 폭언, 욕설, 폭행 등이 더 많이 발생한다”고 밝혔다. 아르바이트생이 밀린 임금이나 수당을 달라고 요청하면 돈이 아닌 폭언 등으로 대응하는 점주가 많다는 것.
임금체불 모자라 손까지 든다
서울 금천구의 한 편의점에서 손님에게 화풀이 당하는 아르바이트생의 모습.(왼쪽),한 편의점에서 손님이 아르바이트생을 폭행하는 모습.(오른쪽)[유튜브 캡처]
곧 입금해주겠다는 말과 달리 2주일이 더 지났지만 통장에 밀린 월급이 들어오지 않았다. 다시 정중하게 업주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월급을 달라고 했지만 돌아온 것은 섭섭하다는 말과 욕설이었다. 업주는 그에게 “월급 그거 얼마나 된다고 떼먹을 것 같으냐. 동생 같아서 잘 대해줬건만 은혜를 이렇게 갚느냐”며 화를 냈다. 이후 업주가 이씨를 대하는 태도는 크게 달라졌다. 근무 교대시간이 늦어지는 경우가 부쩍 늘었고, 1분이라도 지각하면 바로 월급에서 한 시간분의 시급을 빼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결국 이씨는 업주의 괴롭힘을 이기지 못하고 카페를 그만뒀다.
9월 충남청소년노동인권센터(인권센터) 발표에 따르면 충남 한 식당에서 일하던 아르바이트생 D(18)씨가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급여를 받아온 사실이 드러났다. D씨는 지난해 말부터 약 6개월간 해당 식당에서 일했다. 업주가 처음 약속한 임금은 시급 7000원. 당시 최저시급인 6430원보다 높았다. 이 학생은 주 6일, 하루 평균 9시간 근무했다. 4주 동안 일하면 151만2000원을 벌 수 있었다.
하지만 D씨가 월급으로 받은 금액은 130만 원에 불과했다. 업주가 중간에 시급제에서 월급제로 계약 내용을 바꾼 것. 근로계약서와는 다르게 갑자기 계약을 바꾼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이 금액이 최저시급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업주는 지각하면 7만 원을, 결근하면 20만 원을 월급에서 공제했다. 이 때문에 100만 원도 채 못 받는 달도 있었다. 게다가 업주는 기분이 나쁘다며 그에게 욕설을 하기도 했다. 결국 D씨는 함께 일하던 친구 E(18)씨와 인권센터에서 해당 내용을 상담받고 업주에게 문자메시지로 최저임금 미지급분 지급을 요청했다.
임금체불 얘기가 나오자 업주는 아르바이트생들을 명예훼손과 무고 등으로 고소하겠다며 협박했다. E씨의 부모에게는 “자식 교육을 똑바로 시키라”며 고함을 치기도 했다. 인권센터에 따르면 현재 업주는 아르바이트생에게 체불한 임금을 전부 지급하기로 합의했지만 폭언 등의 문제를 두고 조정 절차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10월에는 유명 맛집으로 알려진 전남 한 식당에 관한 글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라왔다. 내용은 식당 사업주 일가가 이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청소년들에게 폭언과 욕설을 일삼는다는 내용이었다. 이 글에 따르면 심한 경우 성기를 치는 등 성추행이나 폭행까지 있었다고 한다.
그뿐 아니라 업주는 아르바이트생들에게 임금도 제대로 주지 않았다. 해당 청소년들로부터 제보를 받은 광주청소년인권네트워크(인권네트워크)에 따르면 이 식당은 아르바이트생을 일용직으로 고용했다. 해당 업체 고용보험 일용근로내역서에는 매달 7일 근무를 하고 월급 70만 원을 받은 것으로 신고돼 있다. 일당으로 따지면 10만 원이다. 하지만 아르바이트생들은 일당으로 7만 원을 받았다. 연장근로, 연차휴가 미사용수당, 퇴직급여 등을 합산하면 6000만 원 이상 임금이 체불된 것으로 추정된다. 임금체불과 폭행, 성추행까지 이어지자 이곳에서 근무했던 청소년 18명이 8월 고용노동부 광주고용노동청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진정서 제출 후에도 사건이 해결되지 않자 SNS에 글을 남긴 것.
결국 식당 측은 사과 후 체불된 임금을 전액 지급하기로 약속했다. 11월 7일 인권네트워크에 따르면 이 식당은 아르바이트생 14명에게 체불 임금 4000여만 원을 지급하고 폭언, 성추행, 폭행 등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당초 인권네트워크의 체불 추산액인 6000만 원에 미치지 못한 이유는 아르바이트생 4명과는 개별적으로 합의했기 때문이다.
“대부분 사직 후 문제제기를 하는데 임금체불과 달리 갑질 사례는 증거가 남지 않는다. 이를 막으려면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바로 해당 증거를 수집해둬야 한다.”[shutterstock]
나도 집에서는 귀한 자식인데
일부 아르바이트생은 손님과 업주에게 인격적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 없음.[동아일보]
5월부터 4개월간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박모(24) 씨는 “하루에 못해도 서너 번씩은 반말로 주문하거나 돈을 던지는 손님을 응대해야 했다. 같이 일하던 친구들의 말에 따르면 그나마 나는 남자라 예의 없게 대하는 손님을 덜 만나는 편이었다. 일부 손님은 여성 아르바이트생에게 나이를 묻기도 한다고 들었다”고 밝혔다.
바코드를 잘못 찍었다는 이유로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에게 무릎을 꿇으라고 요구한 손님도 있었다. 10월 16일 새벽 2시 경기 남양주시 한 편의점에 술에 취한 손님 F(27)씨와 일행이 들어왔다. F씨는 2000원짜리 아이스크림 2개와 1000원짜리 생수 1개를 계산대에 올려놓고 1만 원을 꺼냈다. 이날 처음 출근한 아르바이트생 G(19)씨는 업무가 서툰 탓에 생수의 바코드를 제대로 찍지 못했다. G씨가 F씨에게 바코드를 다시 한 번 찍겠다고 하자 F씨가 “나를 도둑 취급하느냐”며 욕을 하기 시작한 것. 온갖 욕설을 퍼붓고도 화가 풀리지 않았는지 F씨는 편의점 점주까지 호출했다. 점주와 아르바이트생이 계속 사과했으나 F씨는 도둑 취급에 화가 난다며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이 편의점에 찾아오자 F씨 일행이 F씨를 데리고 나가 상황은 일단락되는 듯싶었다.
하지만 20여분 뒤 F씨는 다시 편의점에 찾아왔다. 돌아온 F씨의 행패는 한층 더 심해졌다. 급기야 G씨에게 무릎을 꿇으라고 요구했다. G씨는 F씨의 요구대로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그는 욕설은 멈추지 않았다. 더는 참다 못한 점주가 F씨를 경찰에 신고했다. 남양주경찰서는 편의점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 녹화 영상을 토대로 F씨에게 업무방해 혐의를 적용, 구속했다.
갑질 생기면 증거 확보부터
욕설 외에 아르바이트생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까지 수도권 한 클래식 공연장에서 일한 최모(26·여) 씨는 공연 중 관객의 불편사항을 접수하고 객석으로 향했다. 한 관객이 2층 좌석 앞에서 아이가 장난감총을 쏘며 시끄럽게 한다고 신고한 것. 현장에 가보니 정말 한 아이가 장난감총을 손에 쥔 채 뛰어놀고 있었다. 최씨는 접객 매뉴얼에 따라 아이 부모에게 아이를 자제시켜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아이 어머니는 최씨에게 “아이는 원래 뛰면서 자라는 것”이라며 아이를 제지하지 않았다.결국 공연장 측은 아이와 아이 어머니에게 퇴장을 부탁했다. 이를 최씨가 알리자 아이 어머니는 공연장을 나오자마자 그에게 심한 욕설을 하며 “소비자원에 신고할 것이다. 너 같은 애는 콩밥을 먹어봐야 한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최씨는 “어이가 없긴 했지만 일부 손님 때문에 화가 나는 일은 매일 있다. 같이 일하던 남자 동료는 멱살을 잡히는 일도 있었다. 일부 손님은 공연 티켓 가격에 아르바이트생을 하대할 수 있는 권리도 포함돼 있다고 착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일부 점주나 손님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즉각 대응책을 찾는 아르바이트생은 드물다. 일자리를 잃을까 싶어 문제제기를 제대로 못 하는 것이다. 손님의 욕설이나 성희롱도 마찬가지. 어렵게 구한 아르바이트 자리를 잃을 수도 있다는 걱정에 일단 사과부터 하고 본다.
지나친 갑질에 도저히 일할 수 없겠다는 판단이 서도 아르바이트생이 문제제기를 하기란 쉽지 않다. 이가현 위원장은 “점주는 이력서를 통해 아르바이트생의 주소, 전화번호 등을 알 수 있다. 이 때문에 일부 아르바이트생은 그만두겠다고 마음먹고도 점주의 해코지가 두려워 쉽게 문제제기를 하지 못한다”고 밝혔다.
문제제기를 하더라도 임금체불과 달리 폭언이나 폭행은 입증하기 어려워 피해 사실을 인정받기 쉽지 않다. 이 위원장은 “대부분 사직 후 문제제기를 하는데 임금체불과 달리 갑질 사례는 증거가 남지 않는다. 이를 막으려면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바로 해당 증거를 수집해둬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