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B-1B 2대가 일본 헬기 탑재 항모 ‘이세’와 미국 항모 ‘시어도어 루스벨트’ 위로 비행하고 있다.[사진 제공·미 해군]
청나라는 1842년 난징조약을 통해 대영제국의 일방적인 요구사항을 전면 수용했다. 청나라는 몰수한 아편과 전비(戰費)를 전액 배상했을 뿐 아니라 홍콩섬을 할양하고, 4개 항구를 개항했으며, 개항지 조계의 치외법권까지 인정했다. 대형 함포로 무장한 전함은 제2차 세계대전 때까지만 해도 이처럼 국력의 상징이었으며 적국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전함의 시대는 1944년 레이테만 해전에서 만재 배수량 7만1695t으로 세계 최대였던 일본 무사시(武藏)함이 미군 전투기들의 공격으로 침몰하면서 막을 내렸다.
미국 1개 항모전단=중소국 해·공군력 전체
미 해군 전투기가 로널드 레이건함에서 이륙하고 있다.[사진 제공·미 해군]
미국 항모는 한 척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항모를 중심으로 1개 강습타격전단이 이동한다. 이 전단은 기함인 항모를 비롯해 이지스 순양함(9600t급) 2~3척, 이지스 구축함(9200t급) 2~3척, 핵잠수함 2~3척 등으로 구성된다. 1개 항모전단의 전력은 웬만한 중소국가의 해·공군력 전체와 맞먹는다. 미국이 세계 최강 군사력을 보유한 국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 항모전단은 전쟁이 벌어졌을 때 선봉 구실뿐 아니라 ‘포함외교’(砲艦外交·gunboat diplomacy)의 수단으로도 활용된다. 포함외교는 분쟁을 벌이고 있는 당사국이 자신의 요구를 관철하고자 상대국에 함대를 파견해 압력을 가함으로써 유리한 조건을 끌어내려는 외교수단을 말한다.
미국은 11월 11~14일 로널드 레이건함, 시어도어 루스벨트함, 니미츠함이 이끄는 3개 항모강습전단을 동해에 투입해 합동훈련을 실시했다. 미군 항모 3개 전단은 11일부터 12일 오전까지 동해 일본 수역에서 일본 해상자위대 헬기 탑재 항모인 이세, 구축함 이나즈마·마키나미 등 3척과 함께 공동훈련을 벌였다. 이어 12일 오후부터 14일까지 동해의 한국작전구역(KTO)에서 한국 해군 함정과 연합훈련을 실시했다. 한국 해군은 이번 훈련에 세종대왕함 등 이지스 구축함 2척을 포함한 7척을 동원했다.
한국 해군이 미군 3개 항모전단과 연합훈련을 실시한 것은 창군 이래 처음이다. KTO는 유사시 한미연합사령관이 원활한 군사작전을 위해 한반도 주변에 선포하는 구역으로, 영해뿐 아니라 공해도 포함한다. 한미 양국 군은 항모 호송작전과 대공방어 사격, 해상감시, 해상보급, 전투기 이·착함 훈련 등을 실전처럼 진행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르포 기사에서 로널드 레이건함에서 전투기 26대가 캐터펄트 4대를 통해 분당 3대씩 출격했다면서 전투기들은 명령이 떨어지면 몇 분 안에 북한에 도착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북한과 전쟁에서 신속하게 승리하려면 공군력이 중요하다며 이번 훈련은 전투기 출격 능력 점검에 상당한 비중을 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미국의 3개 항모전단은 말 그대로 막강한 전력을 보유하고 있다. 항모들은 전장 330여m, 너비 70여m, 배수량 10만~11만t급이다. 각 항모에는 F/A-18 슈퍼호넷 전투기, E-2C 호크아이 공중조기경보기, EA-18G 그라울러 전자전기, 각종 헬리콥터 등 70~80여 대 항공기가 탑재돼 있다. 3개 항모전단의 항공기를 모두 합치면 240여 대다. 이지스 순양함은 총 24개 표적을 한번에 대응할 수 있고, 최대 사거리가 2500km인 토마호크 크루즈 미사일이 탑재돼 있다. 이지스 구축함도 토마호크 크루즈 미사일과 SM-3 대공 요격미사일 등으로 무장했다. 로스앤젤레스급 핵잠수함은 12개의 토마호크 크루즈 미사일 발사관을 장착하고 있다. 1개 항모전단이 발사할 수 있는 토마호크 크루즈 미사일은 300여 발이다. 3개 항모전단이 1000여 발의 토마호크 크루즈 미사일로 평양을 공격한다면 순식간에 쑥대밭이 될 것이 분명하다. 3개 항모전단 전체 전력 가치는 420억 달러(약 46조7600억 원)로, 한국 국방예산(40조 원)보다 많다. 이번 3개 항모전단의 전개는 북핵 위기 이후 최대 압박이다.
레이건식 ‘힘에 의한 평화’ 연상케 해
미국은 그동안 아프가니스탄 공격(2001), 이라크 침공(2003), 이란과 핵 갈등(2012) 등이 있을 때 3개 이상의 항모전단을 배치했다. 미국은 한반도의 경우 1968년 북한의 푸에블로호 납치 사건, 76년 북한의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때 3개 항모전단을 전개했다. 당시 두 사건으로 전쟁 일보 직전까지 위기가 고조됐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미국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뒤따르는 현 상황에서 전쟁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실제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1월 8일 한국 국회 연설에서 “우리를 시험하지 말라”며 “한반도 주변에 3척의 항모를 배치하고 있다”고 북한 측에 경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핵 파멸로 세계를 위협하는 불량정권을 관용할 수 없다”면서 “힘에 의한 평화를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은 물론, 대북제재에 미온적인 중국에게도 일종의 무력시위를 한 것이라고 분석할 수 있다. ‘트럼프식 포함외교’인 셈이다.미국의 3개 항모전단 동해 전개는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때처럼 해상봉쇄 전략의 전단계라고 볼 수도 있다. 북한을 해상에서 포위해 선박을 통한 거래를 완전히 차단하는 대북 해상봉쇄는 대북제재의 최종 옵션이다. 해상봉쇄는 물리적 타격을 포함하지 않는 군사옵션이지만 북한 측에 핵·미사일을 포기하도록 강요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다. 물론 미국은 군사옵션도 대비하고 있다. 데이비드 골드페인 미국 공군참모총장은 최근 3대 전략폭격기인 B-1B, B-52H, B-2를 괌 앤더슨 기지에 상시순환 배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 공군은 10월 20일 B-2의 GBU-57 MOP 벙커버스터 투하 영상을 이례적으로 공개했다. 무게 14t인 이 폭탄은 지하 60m까지 들어가 벙커나 군사시설을 파괴할 수 있다. ‘힘에 의한 평화’를 주장했던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의 이름을 딴 항모가 트럼프 대통령의 포함외교 전략에서 선봉에 섰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