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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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탈원전? 대만을 보라

차이잉원, 대정전 사태로 최대 위기 직면…탈원전 정책 포기할까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입력2017-08-28 14: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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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만은 자연재해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국가다. 환태평양 지진대에 있어 지진이 자주 일어날 뿐 아니라, 여름철(6~8월)에는 태풍 때문에 상당한 피해를 입는다. 7월 29, 30일 50년 만에 태풍 2개가 동시에 상륙하면서 송전탑과 전봇대가 쓰러져 65만 가구가 정전됐다. 고온다습한 대만에서 전기가 끊기면 냉방기기 가동이 중단돼 국민의 고통이 극심해진다. 지난해 대만에서 올해의 단어로 선정한 한자가 ‘괴로울 고(苦)’였을 정도로 태풍에 따른 정전 피해가 심각했다. 실제로 지난해 9월 28일 태풍 메기가 대만을 강타해 311만8000가구가 정전됐다. 같은해 9월 14일에도 태풍 므란티 때문에 정전이 발생해 100만 가구가 고생했다.

    그런데 8월 15일 태풍이 상륙하지 않았는데도 대정전(大停電·Black Out) 사태가 발생해 대만 전체 가구의 46~64%에 해당하는 668만~828만 가구에 전기가 끊겼다. 당시 대정전 사태는 타오위안(桃園)에 위치한 다탄(大潭)화력발전소의 가동이 오후 4시 50분부터 중단되면서 비롯됐다. 이곳은 대만 최대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소로 400만kW 전력을 생산한다. 대만전력공사는 오후 6시부터 수도 타이베이를 비롯해 대만 전 지역에 순차적으로 전력 공급을 제한했다. 전력 공급은 4차례의 순차 제한 조치가 이어진 후 오후 9시 40분 정상화됐다. 대정전 사태로 2500만여 명이 크고 작은 불편을 겪었다. 냉방기기가 꺼지면서 상당수 국민은 섭씨 36도 폭염을 견뎌야 했고, 750여 명은 엘리베이터에 갇혔다. 또 신호등이 대부분 작동하지 않아 교통이 마비됐다. 반도체 회사 등 각종 산업시설에도 피해가 발생했다. 마오리현의 한 70대 부부는 정전으로 촛불을 켜고 공예작업을 하다 불이 나는 바람에 지체장애인인 42세 아들을 잃었다. 이번 대정전 사태는 1999년 7월 29일 이후 18년 만에 발생한 최악의 사고였다. 사고 원인은 LNG 공급업체 직원이 실수로 LNG 밸브를 2분간 잠갔기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2025년 100% 비핵화 공약

    대정전 사태의 원인은 인재(人災)였지만, 후폭풍은 엄청나다. 무엇보다 탈원전 정책을 추진해온 차이잉원 총통을 향한 국민의 비판이 거세다. 차이 총통과 집권 여당인 민주진보당은 지난해 1월 총통선거에서 2025년까지 모든 원전의 가동을 중지하겠다는 이른바 ‘2025 비핵가원(非核家園)’ 공약을 제시한 바 있다. 2025년은 가장 최근인 1985년 가동을 시작한 마안산 원전 2호기의 설계수명 40년이 다 되는 시점이다. 당시 차이 총통은 신재생에너지의 비중을 2025년 20%까지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대만전력공사에 따르면 대만의 발전 설비용량 기준으로 LNG가 35%를 차지하며 석탄(29%), 원자력(12%), 신재생에너지(4%) 등으로 구성돼 있다. 대만 언론들은 현재 가동 중단 상태인 원전이 가동됐더라면 대정전 사태를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만은 북부 신베이(新北)시 스먼(石門)에 위치한 제1원전 진산(金山)발전소, 완리(萬里)에 위치한 제2원전 궈성(國聖)발전소, 핑둥(屛東)현 헝춘(恒春)의 제3원전 마안산(馬鞍山)발전소 등에 각각 2기씩 6기의 원전을 운영하고 있다. 이 중에서 3기가 가동을 중단한 상태다. 대만 제1야당인 국민당은 이 가운데 진산 1호기와 궈성 2호기의 재가동을 요구해왔다. 두 원전의 용량을 합하면 155만kW이다. 대정전이 발생한 날 최대 전력수요는 3645만kW였다. 전력공급예비율은 3.17%로, 남은 전력 여유분은 115만kW였다. 원전 2기가 가동됐더라면 대정전 사태는 피할 수도 있었다.



    차이 총통은 “전력공급은 민생 문제이자 국가안보 문제”라면서 대정전 사태와 관련해 국민에게 사과했다. 또 전력 문제를 총괄해온 리스광 경제부장(장관)이 사퇴했다. 리 전 부장은 탈원전 정책을 입안하고 추진한 핵심 인물이지만 차이 총통 정부에서 처음 중도하차한 각료가 됐다. 그럼에도 국민의 분노가 가라앉지 않자 차이 총통은 특별담화까지 발표하면서 재차 사과했다. 차이 총통 지지율이 급속히 하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당을 비롯해 대만 야권은 차이 총통의 탈원전 정책을 집중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차이 총통은 ‘사랑으로 전력을 생산한다(用愛發電)’는 구호로 대표되는 대만의 탈원전 운동을 이끈 정치인이다. 훙슈주 전 국민당 주석은 “잘못된 정책은 대만을 밝힐 수 없다”면서 차이 총통의 선거 당시 구호였던 ‘대만을 밝히겠다’를 비꼬기도 했다.



    탈원전 측도 전력 부족 심각성 인정

    민주진보당과 국민당은 그동안 원전 정책을 놓고 날카롭게 대립해왔다. 가장 첨예하게 논란을 빚은 문제는 1999년 신베이시 동부 해안에 착공된 룽먼원전이다. 이 원전은 공정률 97.8%에서 공사가 중단돼 현재 흉물로 방치된 상태다. 민주진보당 출신인 천수이볜 전 총통은 2000년 집권과 동시에 룽먼원전 건설을 중단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하지만 당시 다수 의석을 장악한 제1야당인 국민당과 제2야당인 친민당이 탄핵안을 제기하는 등 강력하게 반발했다.

    여야 간 극한 대립이 계속되자 사법원(대법원)의 중재로 정부는 원전 공사를 계속하되 의회는 탄핵안을 철회하는 것으로 타협점을 찾았다. 그러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룽먼원전 문제가 다시 불거졌다. 당시 국민당 출신인 마잉주 전 총통은 경제난 등으로 지지율이 폭락한 상태였다. 마 전 총통은 2014년 민주진보당의 강력한 공세에 굴복해 룽먼원전 공사 중단을 지시했다. 룽먼원전은 차이 총통의 집권과 함께 그대로 폐기될 것으로 보인다. 국민당은 만약 룽먼원전이 일찌감치 완공, 가동됐더라면 대정전 사태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차이 총통은 대정전 사태 이후에도 탈원전 정책을 그대로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고수 중이다. 차이 총통은 “룽먼원전은 더는 대만의 선택사항이 아니다”라면서 “앞으로 탈원전 목표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차이 총통이 탈원전 정책을 본격화한 이후 대만의 전력예비율이 6% 아래로 떨어지는 날이 급증하고 있다. 원전 가동 찬성, 반대 측은 모두 전력예비율이 갈수록 줄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는 점과 전력수급 부족도 시급한 문제라는 사실을 모두 인정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태풍 등 자연재해로 대정전 사태가 다시 발생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는 셈이다.

    탈원전 공약은 중국으로부터 독립 노선과 함께 차이 총통이 당선하는 데 가장 큰 요소였다. 차이 총통이 탈원전 공약을 실현하려면 자원이 없는 대만 처지에선 앞으로 LNG 등을 외국으로부터 더 많이 수입해야 한다. 그런데 중국 정부는 차이 총통을 압박하고자 대만을 국제사회에서 아예 고립시키는 전략을 펴고 있다. 최악의 경우 중국 정부가 대만의 LNG 수입을 차단할 수도 있다. 최대 위기에 직면한 차이 총통이 어떤 결단을 내릴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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