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7월 28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4형’을 발사하면서 한반도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이에 우리 정부는 핵추진 잠수함 건조를 검토하고, 미국은 자국 ICBM을 시험발사하는 등 맞대응 수위도 높아지고 있다.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는 로마 군사전략가 베게티우스의 일성이 와 닿는다. 전쟁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만,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정신분석학을 창시한 프로이트는 인간의 무의식적 기본 욕구로 ‘성욕’과 ‘공격 욕구’를 꼽았다. 성욕 하면 보통 쾌락을 떠올리지만, 사실 인간이 번영하는 데 꼭 필요한 요소다. 반면 공격 욕구는 얼른 들을 때는 통증(또는 아픔)이 생각나지만, 한편으로는 공격을 통해 누군가를 지배하고 복종시킨다는 쾌감과 만족이 수반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인간은 누군가와 사랑을 나누고, 또 누군가와 다툰다. 이러한 일상을 국가 간 관계로 확장해보면 지구 곳곳에서 크고 작은 전쟁과 다툼, 밀월관계가 이어지고 있다.
무의식적 본성인 성욕과 공격 욕구
국가 간에도 대화와 타협이 이뤄지지 않으면 전쟁으로 치닫고, 이는 본질적으로 인간의 무의식적 본성인 공격 욕구가 바탕이 된다. 여러 이해관계가 얽혔을 때 싸움이 일어나기 쉽지만,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넘어서는 그 ‘무엇’인가가 있는 경우 합리적 판단은 무뎌지고 전쟁으로 비화된다. 그 ‘무엇’은 대개 지도자의 비(非)이성과 그릇된 판단이다.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은 연설 도중 허공으로 총을 쏴 대미(對美) 항전을 다짐했지만 그 결말은 미군에 사로잡혀 사형되는 것이었다. 북한 김정은도 미국을 적국으로 간주해 핵·미사일 개발로 입지를 강화하려 하지만, 그의 이성적 판단이 어느 정도까지인지 가늠하기는 어렵다. 어린 나이에 집권해 많은 사람이 정권의 불안정성을 예측했지만, 그는 고모부 장성택을 처형하고 이복형 김정남을 암살하는 등 강력한 공포정치로 정권을 유지하고 있다.
집권 6년 차인 김정은은 그동안 북한을 이끌어오면서 어느 정도 자신감이 생겼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마음속 깊이 자리한 엄청난 두려움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는 미국의 요구에 굴복해야 하거나 정권 유지가 힘들다고 판단하는 순간, 더욱 강경하게 미국에 맞서려 할 것이다. 자신의 존립 및 생존을 위해 핵무장과 미사일 개발 카드를 꺼내 든 것도 그의 아버지와 닮은꼴이다.
그러나 북한이 군사적으로 강해지는 것을 주변국은 용납하지 않는다. 특히 중국, 러시아와 달리 북한과 근거리에 있는 일본, 그리고 본토가 공격받을 수도 있다는 위기감을 느끼는 미국 처지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미국이 선제공격을 하고 일본이 협력하는 국면이 전개될 수도 있다. 물론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 몫이다. 대한민국 중심부인 서울 어딘가에 북한 미사일이나 포탄이 떨어지면 수만, 수십만 명이 살상될 테고, 그럼 국민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 우리 정부도 맞대응에 나서야 한다.
이처럼 일단 전쟁이 일어나면 인간의 무의식적 본성인 공격 욕구가 자극받아 승리하려는 마음가짐을 만들어낸다. 스포츠 경기에서 ‘승부욕’이 발동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여기에 애국심이 더해지면 어느 한쪽이 두 손을 들 때까지 사생결단을 내야 한다. 문제는 전쟁으로 발생하는 수많은 살상과 파괴다. 북한 정권은 바로 이러한 점을 노릴 수 있다. 북한은 잃을 게 더 많은 대한민국 국민이 전쟁을 두려워할수록 전쟁을 억제할 수 있다고 여긴다. 그러니 위협은 계속될 수밖에 없고, 북한을 달래면서 자극하지 않는 게 전쟁 억제에 효과적이라는 분위기를 조성한다.
힘을 쓰려는 유혹
그러나 그들이 간과하고 있는 점은 바로 미국의 결정과 행동이다. 미국은 강력한 군사력을 지녔고, 도널드 트럼프 정권은 예전 미국 정권과는 분위기가 다르다.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미국 우선주의)’라는 말에 녹아 있듯, 자국 이익을 최우선시하고 북핵 문제에 대응해 군사 행동을 할 수 있다고 공공연히 밝히기도 한다.힘을 가진 사람은 힘을 쓰려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 자신의 힘이 세상에서 제일 세다는 것을 확인하려는 심리적 동기도 생겨날 수 있다. 특히 경제·군사적으로 굴기(崛起)하는 경쟁국 중국을 향한 경고와 견제의 의미로 북한을 공격할 수도 있다. 이성적인 미국 정권과 국민이 있어 쉽사리 전쟁을 일으키지는 않겠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이성의 힘이 강력하게 발휘될 때 얘기다.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가 혼수상태로 귀국해 사망한 이후 미국 국민은 북한에게 감정적으로 분노한 상태다. 미국 본토에 다다를 수 있는 ICBM 개발로 불안감도 조성됐다.
분노는 공격성을 자극한다. 북한 정권을 혼내주고 처벌해야 한다는 감정적 판단이 생겨날 개연성이 높은 것도 이 때문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 등 경제적 불이익 조치가 통하지 않으면 무력으로라도 벌을 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질 때 북한을 향한 선제공격 가능성도 높아진다.
과거 쿠웨이트를 침공한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과 국제적 퇴진 압박을 무시한 채 시민군과 맞선 무아마르 카다피 전 리비아 국가원수는 모두 미국에 대항하다 목숨을 잃었다. 국가 간 전쟁은 사실 사람들이 싸우는 것이다. 국가 운명을 결정하는 최고지도자의 잘못된 판단으로 국민이 엄청난 고통을 받았고, 그들 자신도 유명을 달리 했음은 역사적 사실이다. 이제 그들의 전철을 김정은이 밟을까 심히 우려된다. 북한 정권의 몰락과 김정은의 최후에 그치는 게 아니라, 무고한 대한민국 국민이 희생될까 걱정된다. 문재인 정부의 외교술이 빛을 발할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