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60

2008.11.11

아, 아버지!

‘내 인생의 황당과 감동 사이’

  • 이덕근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신성장기업지원본부장

    입력2008-11-03 16: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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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다니던 시골 초등학교는 학년마다 한 학급밖에 없는 정말 작은 곳이었다. 2학년 되던 어느 날, 까까머리에 책을 싼 보자기를 둘러메고 ‘깜장 고무신’을 신은 우리들과는 행색이 너무도 다른 한 아이가 전학을 왔다. 얼굴도 희멀겋고 깔끔한 상고머리에 가방과 운동화까지 구비한 녀석에게 아무래도 신경이 쓰였다. 내 반장자리를 뺏어다 녀석에게 안겨준 선생님은 “이 친구는 면장 아드님이니 잘 대해주라”고도 했다.

    어느 날 하굣길, 녀석과 나는 싸움이 붙었다. 싸운 이유는 우리보다 잘 차려입고 잘생기고 건방지다는 것 외에는 딱히 없었다. 사실 반장자리를 이유 없이 찬탈당했다는 것보다는 ‘없이 자라는 놈’으로서의 서러움과 부러움이 폭발했던 게 아닌가 생각된다. 싸움은 내가 몇 수 위였는데, 일방적으로 녀석을 두들겨주면서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그런데 그날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먹기도 전에 일이 터지고 말았다. 아버지께서 면장 댁으로 호출을 당한 것이다. 조그만 마을에서 면장은 엄청난 벼슬인 데다, 아버지는 당시 면사무소에 근무하고 계셨던 터라 그야말로 큰일이 난 것이었다. 나도 덩달아 불려가 부자가 함께 머리를 조아리고 용서를 빌어야 했다. 면장은 ‘애를 어떻게 가르쳤기에 사람을 두들겨 패냐’고 노발대발했다. 어린 마음이지만 그때 난 ‘아, 아버지가 나 때문에 야단맞는구나’ 하는 생각에 엄청나게 죄송스러워했던 것 같다. 또 ‘집에 가면 죽었구나’라는 생각에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놀랍게도 그날 아버지는 나를 야단치지 않았다. 나는 되레 그게 겁났다. 언제 불호령이 떨어질지 몰라서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아, 아버지!
    당시엔 불호령을 피하고 맞지 않아서 다행이라 여겼지만, 돌이켜보면 그때 아버지의 마음속에도 ‘면장이면 면장이지, 자기가 뭔데’라는 반발심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 아버지께서 당신 나이 54세, 너무도 이른 때 뇌경색으로 돌아가시고 말았다. 용서를 빌고 싶고, 매를 맞고 싶고, 야단을 맞고 싶어도 아버지는 이제 내 앞에 계시지 않는다.

    이젠 내가 어느새 그 나이에 이르렀다. 아버지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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