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56

2008.10.14

마스카라 하는 남자

‘내 인생의 황당과 감동 사이’

  • 남성주 LG생활건강 오휘 브랜드매니저 과장

    입력2008-10-08 18: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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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이크업 베이스는 뭐고 파운데이션은 뭔가요?” 입사 초기 늘 입에 달고 다녔던 질문이다. 소비재 마케팅을 하고 싶어 LG생활건강 화장품 사업부에 입사했지만 화장품이라곤 스킨과 로션밖에 몰랐던 내겐 화장품의 그 넓은 스펙트럼이 한눈에 이해되지 않았다.

    짐작 가능하겠지만 미적, 감성적 가치가 중시되는 화장품은 남성들이 접근하기 쉽지 않은 영역이다. 몸으로 체득해 익혀야 했기에 남자답지 않은 습관도 들여야 했고 이로 인해 받은 오해도 많다.

    내 습관 중 하나는 약속시간보다 먼저 도착해 근처 화장품 가게를 둘러보는 것이다. 버스나 지하철을 기다릴 때도 화장품 가게가 있으면 참새가 방앗간 못 지나치듯 들르곤 한다. 남자 혼자, 아무 거리낌 없이 화장품 매장에 들어가는 사람이 아직은 많지 않을 터. 심지어 여자 화장품을 손등과 얼굴에 발라보는 남자는 과연 얼마나 될까.

    얼마 전 새로운 메이크업 라인 개발업무를 맡았을 때였다. 획기적인 사용감을 가진 립스틱, 마스카라, 콤팩트 등을 만들라는 특명이 떨어졌다. 그날도 어김없이 화장품 매장에 들러 그곳에서 잘나간다는 마스카라, 콤팩트 등으로 ‘꽃단장’을 시작했다.

    ‘작업’에 몰두하느라 주위에 신경 쓰지 못하는 사이, 옆에 서 있던 손님들이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며 자리를 피했다. 심지어 판매원마저 나를 유심히 관찰했다. 콤팩트까지는 그렇다 쳐도 마스카라는 심했나?



    마스카라 하는 남자
    이런 ‘작업’ 중 옛 친구들과 조우하기도 했다. 너무나 달라진 나의 ‘페미닌한’ 모습에 놀라는 그들을 보고 내가 더 놀라 내 직업이 뭐고,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구구절절 설명했다.

    문제는 이런 습관도 오랫동안 반복되다 보니 은근히 중독성이 있다는 점이다. 화장품 매장을 둘러보고 화장품을 일일이 발라보면서 나도 모르게 ‘작은 행복’을 느끼기까지 하니 말이다. 화장품의 묘한 매력, 그것 때문에 여성들은 오늘도 ‘신상’ 정보에 귀를 쫑긋하고 과감한 시도도 서슴지 않나 보다.

    나는 오늘도 화장하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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