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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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맛있고 배부른 日 요리만화

  • 김재준/ 국민대 교수 artjj@freechal.com

    입력2003-10-09 13: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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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이 맛있고 배부른  日 요리만화

    홍차 전문점 ‘티앙팡’의 티앙팡차. ‘티앙팡’은 금상첨화라는 뜻으로, 이 차에 뜨거운 물을 부으면 녹차 잎사귀에서 국화가 피어오른다.

    이화여대 앞에서 떡집 ‘동병상련’이 있는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면 ‘티앙팡’이라는 찻집이 있다. 친구 소개로 알게 된 이곳은 2층에 있어 좁은 계단을 올라가야 하는데, 분위기가 단아하고 편안해 즐겨 찾고 있다.

    얇은 책 두께만한 ‘티앙팡’ 메뉴판에는 세계 각국의 수많은 차 이름이 빽빽이 씌어 있다.

    ‘티앙팡’ 입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작은 책장에 꽂혀 있는 ‘홍차 왕자’라는 일본 만화책이 눈에 띈다. 일본 같으면 홍차 ‘오타쿠’가 차렸을 것 같은 이곳에서 요리와 관련된 일본만화들을 정리해보았다.

    요리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요리와 관련된 책이나 영화, 만화에도 곧잘 눈길이 갈 것이다. 요리에 대한 일본인들의 지대한 관심은 엄청난 양의 요리만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 만화들은 신선한 재료를 고르는 요령과 조리비법은 물론이고, 요리사의 장인정신에서도 그 어떤 요리책보다도 좋은 지침서가 될 정도로 전문적이다. 아마 이를 주제로 논문을 써도 전혀 손색이 없을 것 같다.

    도올 김용옥의 TV 강론에 나왔던 도쿄대학의 한 일본인 교수는 “일본은 원시사회다. 그러나 세련된 원시사회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일본인들은 이념이나 철학보다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것들을 발전시켜 나가는 데 소질이 있다는 뜻이다. 일본만화의 특징 중 하나도 어떤 주제에 집요하게 매달려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는 점. 요리만화는 그러한 일본만화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한 예다.



    ‘눈’이 맛있고 배부른  日 요리만화

    티앙팡차를 소개한 ‘홍차 왕자’와 우리나라에 소개돼 인기를 끌고 있는 일본 요리만화들(왼쪽부터).

    국내에 소개된 일본 요리만화를 일단 떠오르는 것만 꼽아봐도 ‘맛의 달인’ ‘미스터 초밥왕’ ‘맛 일번지’ ‘셰프’ ‘대사 각하의 요리사’ ‘중화일미’ ‘철냄비 짱’ ‘아빠는 요리사’ ‘라면요리왕’ ‘라면짱’ ‘신장개업’ ‘빈민의 식탁’ 등 열 손가락이 모자랄 만큼 많다.

    그리고 좀더 특수한 주제를 다룬 것으로는 프랑스 레스토랑을 소재로 한 ‘맛있는 관계’ ‘헤븐’ ‘꿈의 궁전 해묘정’, 일본의 전통술을 테마로 한 ‘명가의 술’, 홍차나 케이크를 주제로 한 ‘홍차 왕자’ ‘서양 골동 양과자점’, 부분적으로 와인과 요리가 등장하는 히로카네 겐시의 ‘시마부장’ 시리즈의 앞부분, ‘황혼유성군’ 4권의 별 레스토랑 이야기를 꼽을 수 있다.

    완성도, 리얼리티, 보는 재미, 그리고 감동까지 고려해서 추천하고 싶은 만화 네 작품을 소개한다.

    첫손에 꼽는 것은 가와스미 히로시의 ‘대사 각하의 요리사’다. 이 만화는 요리의 세계를 아주 현실감 있게, 그것도 대사관이라는 외교 무대를 배경으로 흥미진진하게 전개해 나가고 있다. 내가 전에 대사관에 가서 외교관들과 함께 식사했던 일을 회상하게 한다.

    ‘눈’이 맛있고 배부른  日 요리만화

    ‘티앙팡’에서는 전 세계의 다양한 차를 전시, 판매하고 있다.황제에게 진상했다는 최고급 녹차 ‘황산모봉’. 홍차 ‘오타쿠’가 차렸을 법한 ‘티앙팡’ 내부.(왼쪽부터)

    이야기의 시작은 일류호텔 프랑스 요리사로 근무하던 주인공이 단신으로 베트남의 일본대사관 요리사로 자원해 떠나는 것. 그 후 그는 주방보조인 베트남 여인과 함께 각국 귀빈들에게 철학이 있는 요리를 선보여 대사의 신뢰를 얻는다. 일본 외교관들의 삶과, 동남아시아 문화에 대한 새로운 시작 등을 보여주는 감동적인 수작이다.

    후미 요시나가의 ‘서양 골동 양과자점’도 꼭 한번 읽어볼 만하다. 일본만화의 약점 가운데 하나가 시리즈가 너무 길다는 것인데 이 책은 겨우 4권으로 끝나 무척 아쉬웠다. 그 때문에 한 권을 여러 번 보아서 어떤 대사는 외울 정도가 되었다.

    주택가에 문을 연 케이크 숍 ‘Antique’. 이곳은 물잔까지 골동품을 쓰는 특별한 곳이다. 사장은 어린 시절 유괴당했다가 무사히 구출된, 단정하지는 않지만 멋진 남자. 그를 도련님이라 부르는 검은 선글라스의 사나이와 풍부한 감성의 천재 게이 파팃셰, 그리고 매일 케이크를 종류별로 먹어치우는 전직 복서 견습생과 케이크를 사기 위해 수시로 이 케이크 숍을 찾는 도쿄대 출신의 전직 경찰청 간부 등이 이 만화의 등장인물이다. 이 책의 장점은 특이한 등장인물들을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다는 점. 이 만화가 좋아서 이 작품의 모델이 된 카페를 찾아 직접 도쿄로 간 팬이 있을 정도라고 한다.

    아키라 오제의 ‘명가의 술’도 좋다. 이 책의 원제는 ‘Natsuko-no Sake’. 나쓰코는 이 만화의 주인공 여자이고, ‘사케’는 우리가 청주라고 부르는 쌀로 만든 일본의 전통술이다. 맥주, 와인, 위스키에 밀려 사라질 위기에 처했었지만, 최근 다시 관심을 모으고 있다고 한다. 이 만화의 주인공 나쓰코는 시골 양조장 주인의 딸로 오빠가 죽고 난 후 카피라이터를 포기하고 최고의 술을 만들기 위해 정열을 쏟는다. 오빠가 남긴 유품은 최고의 쌀 종자 ‘다쓰니시키’. 한 줌밖에 안 되는 그 쌀을 부활시키기 위해 나쓰코는 홀로 곡괭이를 들고 논을 일군다. 해를 거듭해서 쌀은 들판을 채우고, 그 쌀을 수확해서 씻고, 누룩쌀을 만들고, 술통을 걸어 음양주를 짜내는 전 과정이 숨막히게 전개된다. 그리고 마침내 ‘투명하지만 일곱 가지 빛깔로 빛나는’ 나쓰코의 술이 완성된다. 완벽한 술을 만들어내기 위해 타협하지 않는 집념을 그린 12권짜리 휴먼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작가는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내 청춘 후회 없다’라는 영화에서 영감과 용기를 얻었다고 한다.

    카리야 데쓰의 ‘맛의 달인’은 최근 불고 있는 요리만화 열풍의 정점에 있는 인기작으로 이미 매스컴에서 화제가 되었던 만화다. 동서신문사의 창사 100주년 기념 사업의 일환으로 기획된 ‘완벽한 메뉴 찾기’. 남다른 미각을 소유한 문화부 기자 지로와 유코가 ‘완벽한 메뉴’를 찾아 나선다. 옴니버스 형식으로 구성된 각각의 이야기에는 맛있는 요리뿐만 아니라 양념처럼 다양한 사람들의 인생 이야기가 담겨 있어 잔잔한 감동을 주는 수준 있는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현재 84권까지 국내에 소개돼 있다. ‘완벽한 홍차’ 에피소드는 66권에 나온다.

    이외에 ‘미스터 초밥왕’ ‘헤븐’ ‘맛있는 관계’도 읽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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