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69

2003.01.23

부드러운 맛, 독특한 향 ‘천하일품’

  • 전화식 / 다큐멘터리 사진가 utocom@kornet.net

    입력2003-01-15 10:45: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부드러운 맛, 독특한 향  ‘천하일품’

    전통 복장을 하고 치즈를 운반하는 모습을 관람하는 관광객들.

    인류가 치즈를 만들어 먹기 시작한 것은 우유를 마시면서부터일 것으로 추측된다. 치즈가 우유를 그대로 두면 응고되는 물질, 즉 ‘커드’를 이용한 것이기 때문이다. 초기 치즈는 단순히 커드를 보존하기 위해 가열이나 건조, 가염 등의 조치를 했을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견해.

    그렇다면 실제 그 역사는 언제부터였을까. 기록으로 남겨진 치즈의 역사는 무려 BC 3500년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메소포타미아 지방의 점토판 문서에는 치즈에 관한 기록이 있고, 같은 시대 오리엔트 일대의 유적에서는 치즈 제조용 기구로 보이는 토기가 출토되었으며, BC 4000~BC 2000년 이집트 인도 중앙아시아에서도 치즈를 만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치즈의 맛은 하늘이 내려주는 것이라고 생각해 귀하게 여겼다고 한다. ‘오디세이’의 작가 호메로스나 히포크라테스도 치즈에 대해 언급했을 정도로 로마인의 치즈 사랑은 대단했다. 뿐만 아니라 로마시대 농업학자 콜루멜라(Columella)는 양의 네 번째 위에서 추출한 단백질 분해 효소 레닛으로 우유를 응고시켜 치즈를 만드는 방법을 자세하게 기술하기도 했다. 로마인들은 연회용으로 쓰일 고급 치즈는 특별히 스위스에서 수입하였다고 한다.

    오랜 기간 동안 정성 들여 숙성

    치즈란 단어도 라틴어인 ‘카세우스’에서 유래하여 독일어의 ‘케제’, 이탈리아어의 ‘카초’, 스페인어의 ‘케소’가 됐다. 한편 치즈를 가리키는 프랑스어인 ‘프로마주’와 이탈리아어 ‘포르마지오’도 라틴어의 ‘포르마(형을 만들다)’, 혹은 ‘포르모소(바구니)’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한다. 바구니라는 단어에서 유래한 까닭은 버드나무로 만든 바구니에 치즈를 넣어 숙성시켜 먹기 때문이다.

    로마제국이 붕괴된 이후 유럽 대륙 전체가 외세의 침입으로 혼란에 휩싸이는 바람에 치즈 제조기술이 사라질 위기에 처해, 중세 수도원에서 겨우 그 명맥을 유지하게 된다. 수도사들 덕분에 전통적인 치즈 제조기술이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올 수 있었던 것이다.



    현재 식용하는 치즈의 종류는 무려 800여종이 넘는다. 이런 까닭에 치즈를 분류하는 방법도 무척 까다롭다. 오늘날에는 손쉽게 우유를 응고시키는 방법, 원료유의 종류, 숙성 방법, 원료유의 지방 함량, 치즈의 경도(硬度) 등으로 그 종류를 구분한다. 같은 방식으로 치즈를 제조한다 하더라도 미생물의 종류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지방별로 특색 있는 치즈가 수없이 만들어지는데, 이를 기준으로 치즈의 종류를 나누게 되면 셀 수도 없을 것이다. 이렇듯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치즈 가운데 유독 네덜란드의 치즈가 유명한 것은 이 나라가 세계 최고의 낙농업국이고 그들 식탁에서 치즈를 빼고는 이야기할 수 없을 만큼 중요한 식품인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치즈를 만드는 데 깃들어 있는 그들만의 장인정신 때문일 것이다.

    치즈 시장으로 유명한 알크마르에서는 매년 치즈 경매와 함께 축제를 벌이는데, 전통의 치즈 경매 모습을 보기 위해 세계 각국에서 많은 이들이 몰려든다. 치즈 축제 기간에는 옛날 방식 그대로 치즈를 경매하고 전통 복장을 한 치즈 운반인들이 예전의 기구를 사용해 치즈를 운반하는데, 노란색 치즈와 전통 복장을 한 사람들이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을 연상케 한다.

    네덜란드의 대표 치즈로는 고우다(Gouda)와 에담(Edam)을 들 수 있다. 고우다는 네덜란드 남부 도시로 치즈 본고장으로 일컬어지는데, 이곳 치즈에는 노란색의 안쪽에 조그만 구멍이 나 있다. 지방이 48%라서 에담 치즈보다 부드러운 것이 특징이다. 보통 맥주나 적포도주, 검은 빵과 함께 먹는다.

    부드러운 맛, 독특한 향  ‘천하일품’

    네덜란드 알크마르의 미스 치즈 아가씨. 축제 때는 관광객들에게 치즈를 소개하는 안내자 역할도 한다(왼쪽).치즈의 맛과 상태를 검사하는 검사원들. 치즈의 겉면을 싸고 있는 왁스의 색깔은 숙성 기간을 나타낸다(가운데).치즈 시장에서는 치즈를 손님이 원하는 만큼 즉석에서 잘라 판매한다(오른쪽).

    젖산균 숙성 치즈의 대표주자인 고우다 치즈는 네덜란드 외에 미국 영국 독일 덴마크 등지에서도 생산하고 있지만, 네덜란드 산의 품질을 따라오지는 못하고 있다. 전유 혹은 반탈지 우유를 사용하여 직경 30cm, 두께 8~12cm의 원판으로 만드는 고우다 치즈는 담황색 또는 버터 빛깔을 띠며 매우 부드러운 것이 특징이다. 치즈는 고형질로 만든 후에 소금물에 담가 단단하게 만들고 일정한 온도와 습도가 유지되는 숙성실로 옮겨 오랜 기간 숙성시키게 된다. 이런 숙성 시기를 거치며 고우다 특유의 맛이 생성되어 사람들의 입맛을 유혹한다.

    숙성 기간은 보통 4∼6주에서 4개월 정도지만 10개월 이상 숙성시키는 것도 있다. 숙성 기간 중에 주의할 점은 곰팡이가 피지 않도록 자주 뒤집어주면서 브러시로 닦아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그 어떤 치즈보다도 만든 이의 노고가 많이 배어 있다.

    에담 치즈라는 이름은 수도 암스테르담 북쪽 한 항구도시의 이름에서 따왔다. 예쁜 엽서에서 보았을 법한 풍경의 이 아담하고 평화로운 전원 마을에서 만들어지는 에담 치즈는 고우다 치즈보다는 딱딱한 것이 특징이다.

    에담 치즈는 붉은색의 왁스 코팅이 트레이드마크인데, 14세기경부터 유래되었다고 한다. 초기에 바다를 통해 수출하면서 오랜 시간의 항해에 대비해 보존성을 높이기 위한 방법이었다고 한다. 이 붉은색 코팅 덕분에 에담 치즈는 ‘red ball’ 또는 ‘crimson cannon ball’이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붉은색 외에도 황색이나 흑색 등의 왁스로 코팅하기도 한다. 왁스의 색깔이 의미하는 것은 숙성 기간인데, 검은색으로 코팅된 치즈의 경우 최소 17주 이상 숙성된 제품이라는 표시다.

    치즈 맛을 제대로 즐기려면 냉장고 등 찬 곳에 있던 치즈를 꺼낸 다음 향미와 아로마가 나올 수 있도록 한 시간 정도 실온에 두어야 한다. 덩어리 치즈는 껍질과 안쪽 중심부가 같은 비율이 되도록 잘라 맛보는데, 사람에 따라서는 맛을 제대로 음미하기 위해 겉껍질을 제거하기도 한다. 치즈의 맛과 가장 잘 어울리는 음식은 빵과 와인이다. 잘 숙성된 치즈와 갓 구운 빵, 그리고 좋은 와인이 있으면 그 이상의 식도락이 없다고 평하는 사람들도 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