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08

2011.10.17

피 튀기는 ‘진검 경기장’ 함부로 달려들면 목숨 잃는다

고수, 중수 그리고 하수

  • 이건 ‘대한민국 1%가 되는 투자의 기술’ 저자 keonlee@empas.com

    입력2011-10-17 10: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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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까지 칼럼을 쓰면서 ‘시장수익률(주가지수)’이란 용어를 숱하게 사용했다. 시장수익률이 전문가조차 대부분 넘어서지 못한 대단한 실적이라고는 하지만, 별로 마음에 와 닿지는 않을 터. 시장수익률을 논하기에 앞서 증권시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부터 살펴보기로 하자. 증권시장은 ‘아무나 참가해서 진검으로 승부를 가리는 경기장’이라 표현할 수 있다. 이 시장에는 온갖 기업과 무수한 투자자가 참가한다.

    칼은커녕 제 몸조차 가누지 못하는 하수들

    피 튀기는 ‘진검 경기장’ 함부로 달려들면 목숨 잃는다

    뮤지컬 ‘엔론’에서 최고경영자 제프리 스킬링 역을 맡은 배우가 부채를 먹어 치우는 ‘분식회계’를 비유한 공룡들에 둘러싸여 있다.

    기업 중에는 삼성전자나 포스코 같은 세계 굴지의 우량기업이 있고, 며칠 앞도 기약하기 어려운 부실기업도 있다. 심지어 네오세미테크처럼 아예 사기 치려고 작정한 불량기업도 있다. 나중에 가보면 우량기업과 불량기업이 명확히 드러나지만, 이를 미리 알아내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손꼽히던 우량기업이 어느 날 갑자기 몰락하는가 하면, 눈길조차 못 끌던 삼류기업이 우량기업으로 발돋움하는 예도 수없이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기성 기업을 만들고 운영하는 기법은 갈수록 정교해져서, 상당한 고수조차 방심했다간 영락없이 말려든다. 이들은 투자자의 입맛에 꼭 맞는 온갖 서비스를 제공한다. 적당한 시점에 대형 호재를 터뜨려주고, 첨단 회계기법으로 재무제표를 화려하게 치장해 주가 차트를 급등 직전의 모습으로 만들어놓기도 한다. 그러나 고객감동 서비스에 열광해 초보자가 몰려들면, 이들을 가득 실은 채 타이타닉처럼 장렬하게 침몰한다.

    감독 당국이 사기성 기업을 철저히 가려내 투자자를 보호해주면 좋겠지만, 엄격하기로 이름 높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조차 엔론(Enron)의 화려한 사기극을 막지 못했다. 사기성 기업을 피하는 일은 온전히 투자자의 몫인 셈이다.



    시장에 참여하는 투자자도 각양각색이다. 먼저 절정의 고수가 있다. 이들은 절제력이 뛰어나서 자신의 야성적 본능을 철저히 다스린다. 좀처럼 흥분하는 법이 없고, 승산 없는 싸움은 절대 벌이지 않는다. 고수끼리 마주칠 때는 즉시 서로를 알아보고 조용히 비켜 간다.

    고수는 주로 하수를 즐겨 상대한다. 하수가 흥분해서 달려들 때, 한껏 달아오른 주식을 미련 없이 던져준다. 그리고 하수가 겁에 질려 주식을 내던질 때, 헐값에 거둬들인다. 고수의 진가는 위기가 닥쳤을 때 빛난다. 궁지에 몰렸을 때는 과감하게 자신의 살을 내주고 적을 베어버린다. 상처는 입지만 치명상은 피하므로 목숨을 지킬 수 있다.

    아직 고수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진지하게 노력하는 중수(中手) 투자자도 있다. 자신의 야성적 본능을 다스리려고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며, 끊임없는 공부와 훈련으로 결점을 보완한다. 이들 중 일부는 수많은 고통을 감내해 고수로 성장하고, 일부는 고통을 견디지 못한 채 중도에 탈락한다.

    고수와 중수를 모두 더해도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 되지 않는다. 절대다수는 칼을 제대로 휘두르기는커녕 제 몸 하나 가누지 못하는 하수다. 이들이 시장에 뛰어든 이유는 각양각색이다. 갑자기 목돈이 필요해서 잠시 들른 사람도 있고, 강원랜드까지 가기 번거로워서 찾아온 사람도 있다. 그리고 대중매체를 통해 자칭 고수로부터 대박 비법을 배우고 온 사람도 많다. 이들 중에는 수백만 원을 몇 년 만에 수백억 원으로 키웠다는 원형도사의 저서를 탐독했거나, 폭등 종목을 족집게처럼 짚어준다는 케이블방송 스타 무릉선인의 강좌를 열심히 들었거나, 상한가 종목만 책임지고 추천한다는 대박카페에 거금을 내고 특별회원으로 가입한 사람이 많다.

    역선택의 패러독스 치명적 유혹

    하수에게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먼저 자신이 하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들은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며, 행운이 따를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정체도 불분명한 고수로부터 배운 기법만 믿고 과감하게 시장에 뛰어든다. “인생 뭐 있어?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지.” 그러다가 실제로 죽거나 까무러친다. 사기성 기업의 고객감동 서비스에 넘어가 침몰하는 배에 올라타기도 하고, 고수를 상대로 겁 없이 대결을 벌이기도 한다. 고수가 버리는 주식을 싸다면서 받아먹고, 고수가 노리는 주식을 헐값에 내던진다.

    하수의 또 다른 공통점은 가장 무서운 적이 자신의 야성적 본능임을 모른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이들은 야성적 본능에 아무 생각 없이 몸을 내맡긴다. 그 결과 하수는 주기적으로 집단 조울증을 나타내고, 시장은 널뛰듯 거칠게 오르내린다. 이들은 사소한 호재에 열광하고 일시적인 악재에 절규한다. 본질과 무관한 일에도 흥분해 냉탕과 온탕을 오가면서 체력을 소진한다. 이윽고 계절이 바뀌어 시장에 본격적으로 한파가 몰아치면 대량참사를 면치 못한다. 이들의 시체가 산을 이루고, 피는 강을 이룬다.

    증권시장에 널린 함정과 무서운 고수를 생각해본 사람이라면, 만만하게 보고 함부로 시장에 덤벼들 엄두가 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단기간에 거금을 벌어야 하는 사람은 함정이나 고수 따위를 생각할 겨를이 없다. 두 가지 비법만 익히면 일확천금의 길이 열린다는 복음에 열광한다.

    그 두 가지는 ‘종목 선택’과 ‘시점 선택’이다. 종목 선택이란 단기간에 폭등할 종목을 골라내는 비법이고, 시점 선택이란 바닥 시점에 사서 천장 시점에 파는 비법이다. 쓸데없이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없고, 이 두 가지면 만사가 해결된다는 말씀이다. 단지 종목만 잘 골라잡고, 사고팔 시점만 정하면 된다는 것이니 아름답도록 단순한 비법이다.

    사실 이런 비법이라면 두 가지가 아니라 하나만 좇더라도 재벌 반열에 오를 수 있다. 따라서 두 가지 비법을 가르쳐준다는 자칭 재야고수는 이미 갑부가 됐으며, 이제 남도 부자로 만들어주려는 박애주의자임이 틀림없다. 그래서 개미의 원금 회복을 돕겠다고 자기 돈까지 들여가며 광고하는 것 아니겠는가.

    이 대목에서 ‘역선택의 패러독스’를 생각해야 한다. 예를 들어 진짜 돈 되는 내부 정보는 모든 인맥을 동원하고 온 힘을 기울여도 입수하기가 쉽지 않다. 설령 입수한다고 해도, 그 정보는 쓸모없을 확률이 99% 이상이다. 하물며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누군가 일급 내부 정보라면서 귀띔해준다면? 그 정보는 엉터리일 확률이 100%다. 작전 매물을 떠넘기려고 개미를 유혹하는 미끼라고 봐야 한다.

    피 튀기는 ‘진검 경기장’ 함부로 달려들면 목숨 잃는다
    제대로 된 종목 선택과 시점 선택이라면 초대형 연금술이다. 진짜 연금술은 공개하는 순간 가치가 사라지므로, 절대로 공개하지 않는다. 누군가 내게 종목 선택이나 시점 선택 비법을 알려주겠다고 제안한다면, 이는 나를 천 길 나락으로 떨어뜨리려는 치명적 유혹으로 봐야 한다. 백번 양보해서 그 비법이 맞아떨어진다고 해도, 초보자에게는 명을 재촉하는 재앙이 될 뿐이다. 어김없이 야성적 본능이 나타나서 판을 뒤엎을 것이기 때문이다. 제 몸 하나 가누지 못하는 하수에게 최고의 검법이 무슨 소용 있겠는가.

    Tip 종목 선택도 하지 말고, 시점 선택도 하지 마라
    Q. 그러면 투자를 하지 말라는 뜻인가?

    A. 아니다.

    Q. 종목을 고르지 말라고 하지 않았는가?

    A. 좋은 종목을 고르려 하지 말고, 나쁜 종목을 피하려 하지도 말라는 뜻이다.

    Q. 그러면 어느 종목을 사라는 말인가?

    A.모든 종목을 사면 된다.

    Q. 사고팔 시점도 정하지 말라는 뜻은?

    A. 바닥 시점에 사려고 하지 말고, 천장 시점에 팔려고도 말라는 뜻이다.

    Q. 그러면 언제 사고팔아야 하는가?

    A. 장기간 투자할 자금이 있을 때 사면 된다. 샐러리맨처럼 정기 소득이 있는 사람은 정기적으로 사면 된다.

    Q. 이렇게 주장하는 논리는 무엇인가?

    A. 하수의 판단은 대부분 틀리므로, 아예 판단하지 않는 편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 이건은 은행에서 펀드매니저로 국내 주식과 외국 채권 및 파생상품을 거래했고, 증권회사에서 트레이딩 시스템 관련 업무도 했다. 지금은 주로 투자 관련 고전을 번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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