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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비서들이 뿔났다

게임 ‘모두의경영’에서 비서 캐릭터, 능력 아닌 신체 매력 과시

비서들이 뿔났다

비서들이 뿔났다

모바일 게임 ‘모두의경영’은 8월 정식 오픈 당시 여비서 캐릭터에 구체적인 신체 치수와 성적인 대사를 부여했다.

“이름은 수지, (신체) 사이즈 33-23-35. 나의 매력으로 모든 계약을 성사시키겠어!”

모바일 게임 ‘모두의경영’(제작사 이펀컴퍼니리미티드)은 8월 6일 정식 오픈 후 섹시한 ‘여비서’를 등장시켰다. 이름은 수지, 윤아, 효주. 유명 연예인을 연상케 하는 이 비서 캐릭터들은 각자 가슴, 허리, 엉덩이 치수로 ‘회장님’, 즉 사용자의 선택을 기다렸다. “회장님, 혹시 화끈한 것을 좋아하시나요. 맡겨만 주세요” “회장님, 저랑 함께하시면 즐거우실 거예요” 등 유혹적인 대사도 서슴지 않았다. 복장은 사무복이 아닌 속옷 차림에 가까웠다. 비서라는 여성 캐릭터가 성적 이미지화된 것이다.

이를 두고 사단법인 한국비서협회는 ‘비서의 명예를 실추했다’는 이유로 8월 25일 이펀컴퍼니리미티드에 공식 항의했다. 이민경 한국비서협회 회장은 ‘‘모두의경영’이 여성 비서 캐릭터를 성적으로 비하해 26만 비서직 종사자의 분노가 이어지고 있어 강력한 조치를 취할 것을 경고한다’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공문에는 ‘현재 비서직은 최고경영자의 지근거리에서 행정지원은 물론, 의사결정 단계에서 상사에게 조언하는 수준에 이르고 있다. ‘모두의경영’은 게임을 즐기는 젊은 층에게 왜곡된 직업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며 비서의 직업 전문성을 강조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펀컴퍼니리미티드 관계자는 “해외에서 서비스 중인 게임을 번역하면서 국내와 외국 정서 간 소통이 제대로 안 된 것 같다”며 9월 7일 비서 소개 문구를 변경했다. 신체 사이즈를 삭제하고 성격을 추가하며 ‘회장님 사랑해요’라는 대사를 ‘회장님 감사해요’로 바꿨다. 하지만 성격 소개에는 ‘섹시하고 도도함’ 등 성적인 문구가 남아 있고, 속옷 차림 복장도 그대로였다.

‘모두의경영’ 일부 이용자는 한국비서협회의 항의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게임 마니아 이진욱(28) 씨는 “게임 속 여성 캐릭터의 성적 대상화는 흔한데 협회 측이 과민 반응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회사원 윤성준(34·가명) 씨는 “비서 캐릭터를 게임 도우미 정도로 생각했는데 협회가 공식으로 항의했다니 황당하다”고 말했다.



게임 캐릭터 성적 대상화는 흔한 일?

게임 이용자들의 이 같은 반응은 비서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관련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 비서백서와 한국팔로워십센터가 2013년 8월 비서직 종사자 28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비서에 대한 선입관은 ‘쉬운 일을 한다’(56%), ‘외적 이미지만 생각한다’(23.8%), ‘직업 연령이 낮다’(11.9%) 등으로 지목됐다. 이민경 회장은 “비서 직종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려면 갈 길이 멀다”며 “이번 일을 계기로 비서직의 성희롱 사례를 접수하고 비서들이 차별 대우를 받지 않도록 적극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게임뿐 아니라 포르노 등 성인물에서는 비서, 간호사, 비행기 승무원 등 특정 서비스직에 종사하는 여성이 성적 대상화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를 두고 사회학 전문가는 “남성 중심적 문화에서 정형화된 여성성 때문”으로 진단한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회사 내 여직원에게는 대체로 업무능력뿐 아니라 외모 등 성적 매력, 남을 돌보는(care) ‘서비스’가 기대된다”며 “게임이나 성인물과 같이 사용자 대다수가 남성인 경우 여성에 대한 성적 비하는 쉽게 당연시되고, 이는 여성을 전문 직업인이 아니라 이성애적 대상으로만 보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주간동아 2015.09.14 1005호 (p39~39)

  • 김지현 객원기자 bomb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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