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90

2015.06.01

패션 천재의 순수한 사랑

베르트랑 보넬로 감독의 ‘생 로랑’

  • 한창호 영화평론가 hans427@daum.net

    입력2015-06-01 10:18: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패션 천재의 순수한 사랑
    패션 디자이너 이브 생로랑은 천재다. 말 그대로, 재능을 그냥 타고났다. 모차르트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신기(神技)를 드러냈다. 프랑스 식민지 알제리에서 성장한 그는 10대 초반부터 각종 그림대회, 디자인대회에 참가했고 거의 매번 1등을 차지했다. 파리 패션계는 이 소년에 주목한다. 당대 최고 디자이너 크리스티앙 디오르가 놀랍게도 21세 애송이를 수석디자이너로 스카우트했다. 생로랑은 이때부터 패션계의 전설이 된다.

    프랑스 중견감독 베르트랑 보넬로의 ‘생 로랑’은 이 천재 디자이너의 전성기인 30대에 주목했다. 초년기의 벼락같은 출세는 건너뛰었다. 영화는 1974년 지극히 피곤해 보이는 생로랑(가스파르 울리엘 분)이 단지 잠을 자려고 파리 어느 호텔에 들어가는 것으로 시작한다. 생로랑은 예약자 이름이 ‘스완(Swann)’이라고 말한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걸작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가장 유명한 캐릭터 이름이다. 이제 제법 알려진 이야기지만, 생로랑은 프루스트의 캐릭터 스완을 사랑했고, 그와 자신을 동일시했다. 소설에서 스완은 호감형 외모에 예술을 옹호하고 연인 오데트를 사랑하는 남자로, 다른 사람들은 바람기 있는 여성과의 그 사랑을 불안하게 바라본다.

    영화 ‘생 로랑’은 1974년을 기점으로 양분돼 있다. 전반부는 호텔에 잠을 자러 간 생로랑이 자신의 과거를 기억하는, 혹은 꿈꾸는 내용이다. 꿈속에서 생로랑은 평생의 동료들(사업가이자 애인인 피에르 베르제, 디자이너 룰루, 모델 베티)과 의기투합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이때 위기가 찾아온다. 생로랑에 대한 세상의 기대가 계속 증폭되는 것이 한 이유일 것이다. 그런데 보넬로 감독은 자크(루이 가렐 분)라는 남자와의 새로운 사랑에 주목한다. 알다시피 생로랑은 동성애자다. 영화는 그가 귀족 남자 자크를 만나 과거와는 다른 남성성에 눈을 뜨는 것으로 묘사한다. 자크를 둘러싼 남성들만의 배타적인 사교클럽에 드나드는 과정을 마치 미성년이 성년이 되는 통과의례처럼 그린다.

    영화 후반부는 호텔에서 낮잠을 자고 나온 생로랑이 일에 대한 열정을 되찾고, 생애 최고 발표회로 평가되는 ‘1976년 컬렉션’을 성공리에 마치는 과정을 따라간다. ‘생 로랑’은 ‘1976년 컬렉션’을 자크와의 사별(그는 에이즈로 죽었다)에 따른 고통을 극복한, 승화된 예술처럼 표현한다. 애도가 예술의 힘이 된 것이다.

    남들이 뭐라 하든 오데트라는 여성에 대한 자신의 순수한 사랑을 소중하게 여겼던 스완처럼, 생로랑은 자크와의 위험한 사랑을 포기하지 않았고, 필생의 발표회를 죽은 연인에게 헌액한다. 발표회에서 흐르는 푸치니 오페라 ‘나비부인’의 유명 아리아 ‘어떤 갠 날’은 죽은 연인에 대한 애가(哀歌)일 터다. 떠나버린 연인과의 재회에 대한 간절한 소망을 담은 노래이기 때문이다. 그 소망이, 그 간절함이 생로랑 예술의 최고 순간으로 남아 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