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87

2015.05.11

가격 대비, 상상하는 그 이상의 맛

전주의 서민적 외식 문화

  • 박정배 푸드칼럼니스트 whitesudal@naver.com

    입력2015-05-11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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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격 대비, 상상하는 그 이상의 맛

    각각 전주 ‘진미집’ ‘금암소바’의 소바와 ‘소바가’의 냉소바(왼쪽부터).

    전북 전주에는 비빔밥이나 한정식 같은 화려한 음식도 많지만 서민형 먹거리도 차고 넘친다. 한옥마을에 있는 ‘베테랑 칼국수’의 칼국수와 만두, ‘옴시롱감시롱’의 쌀로 만든 졸깃한 떡볶이나 전북대 앞 ‘해이루’의 감자탕은 독자적인 맛으로 전국적 음식이 됐다.

    전주비빔밥에 콩나물은 조연이지만 콩나물해장국에 콩나물은 당당한 주연이다. 남부시장식(수란을 넣어 먹는 방식) 콩나물해장국을 대표하는 ‘현대옥’과 펄펄 끓는 국물로 유명한 ‘삼백집’, 따스한 국물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왱이집’이 유명하다. 술을 마신 다음 날 맑고 시원한 국물은 몸에 좋고, 아삭거리는 콩나물 식감은 정신에 좋다.

    서민들을 즐겁게 하는 저녁 음식도 즐비하다. 전주 막걸리 집들은 2만 원 정도 하는 막걸리 한 주전자를 시키면 20여 가지 음식을 내놓는다. 엄청난 양과 맛에 처음 온 외지 사람은 눈이 휘둥그레진다. 그런데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다. 막걸리 한 주전자를 더 시키면 대여섯 가지 음식이 추가로 나온다. 반찬 한 가지도 돈을 내고 먹어야 하는 일본 관광객들이 전주 막걸리 집에 환호하는 것은 당연하다.

    가격 대비, 상상하는 그 이상의 맛

    전주 막걸리 집의 성찬.

    전주 막걸리 집이 지금처럼 상업적으로 터를 잡은 것은 1980년대 이후부터다. 전주 막걸리 집에서 막걸리를 먹는 방법에는 몇 가지가 있다. 먼저 시중에서 판매하는 막걸리를 그대로 먹는 방법이다. 다음은 윗술이라 부르는 막걸리를 먹는 것이다. 막걸리의 탁한 부분을 가라앉히고 위에 청주처럼 맑은 부분만 먹는다. 텁텁한 맛이 없어 여름에 인기가 많다. 다음은 막걸리 2에 윗술 1을 섞어 먹거나 반대로 먹는 방법이다. 자기 취향대로 막걸리를 먹는 재미가 있다. 전주 삼천동에만 막걸리 집 30여 곳이 성업 중인데, 터줏대감격인 ‘용진집’이 유명하다.

    가맥집과 야식집도 음식문화 측면에서 보면 막걸리 집 범주에 들어간다. 가맥이라는 이상한 단어는 ‘가게 맥주’의 준말이다. 가게에서 맥주와 안주를 파는 형태다. 전주 시내 어디를 가나 가맥집이란 간판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중 ‘전일슈퍼’를 빼놓을 수 없다. 커다랗고 포실한 황태의 맛은 맥주 안주의 정점에 있다. 감칠맛이 강한 갑오징어 구이도 좋다.



    가맥집들이 이름처럼 맥주를 중심으로 돌아간다면 야식집들은 소주를 중심으로 음식을 만든다. 돼지불백과 김밥, 그리고 전주의 별식인 구운 양념족발이 야식집들의 주요 메뉴다.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자극적인 맛이 주류를 이루는데, 분위기나 가격이 사람을 편안하게 해준다. ‘진미집’과 ‘오원집’이 양대 산맥을 이루며 사람들을 유혹한다.

    날이 더워지면 소바집들에 사람이 많아진다. ‘소바’란 이름이 붙었지만 쓰유에 찍어 먹는 일본식 정통 소바와 거리가 멀다. 면발 원료에 메밀보다 밀가루가 더 많이 섞여 있고, 국물은 그냥 콩물이다. 한 마디로 정리하면 소바콩국수다. 1950년대 중반 남부시장 주변에서 시작된 소바콩국수는 단맛이 강한 게 공통된 특징으로, 전주 사람들은 팥빙수같이 시원하고 달달한 전주식 소바를 먹으며 여름을 난다. 남부시장에 있는 ‘진주집’과 금암동에 있는 ‘금암소바’가 유명하다. 소바는 원래 쓰유라는 일본식 육수에 소바를 찍어 먹는 음식이다. 전주 소바집들도 처음에는 쓰유와 소바를 따로 팔았지만 손님이 많아지자 쓰유 국물에 소바를 말아 판매하더니, 다시 콩물에 마는 지금의 전주식 소바 문화가 정착했다. 소바 국물에 소바 면을 넣은 중간 형태의 냉소바를 파는 효자다리 근처 ‘소바가’에도 날이 더워지면 사람이 제법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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