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87

2015.05.11

웃기지만 진부한 한국식 로맨틱 코미디의 맛

김아론 감독의 ‘연애의 맛’

  • 강유정 영화평론가·강남대 교수 noxkang@daum.net

    입력2015-05-11 09: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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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웃기지만 진부한 한국식 로맨틱 코미디의 맛
    격차가 커야 맛이 난다. 로맨스의 주인공들 말이다. 가장 보편적인 격차는 사회, 경제적 지위 차이다. 대개 남자는 어마어마한 기업의 상속자고, 여자는 가난한 집안의 외동딸 혹은 장녀다.

    성격차도 있다. 이때 성격은 경제력과 반비례하는 경우가 많다. 부잣집 아들은 제멋대로이거나 강박증에 시달리고, 여자는 비록 가난해도 정신력 하나는 어디 내놓아도 빠지지 않는다.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캔디는 로맨스 속에서 그 나름 계속 진화 중이다.

    이 격차는 때로 직업적 불화로 나타나기도 한다. 공존하기 어려운 직업적 앙숙관계 말이다. 영화 ‘연애의 맛’은 이 고전적 앙숙관계에서 출발한다. 남자는 중년 여성 수술 분야에서 이름난 산부인과 의사다. 여자는 비뇨기과 의사. 성역할의 전도는 직업에 대한 사회적 통념 위에서 코미디의 기본 요소가 된다. 특히 비뇨기과 여의사로 등장하는 배우 강예원은 코미디 연기 내공을 스스럼없이 보여준다. 어색하거나 과장되지 않고, 딱 웃을 수 있을 만큼 웃음 포인트를 건드린다.

    이 영화가 주는 웃음은 대부분 성역할의 전도 그리고 전공 특성상 ‘성’과 밀접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빚어진다. ‘색즉시공’이나 ‘워킹걸’처럼 섹스 코미디를 표방하는 만큼, 어떤 점에서 직업이 의도적으로 선택됐다고도 할 수 있다. 남자의 크기 문제, 여자의 산후 콤플렉스 문제가 꽤 강한 농도로 언급되고, 약간의 호기심을 건드린다.

    ‘연애의 맛’은 어떤 점에서 한국 로맨스 영화의 전형적 서사를 따라간다. 초반엔 앙숙인 두 주인공의 성격적 갈등에 초점을 두고 웃음을 끌어내는 데 주력하다, 후반이 되면 두 사람이 연인이 되기 위한 진지한 드라마에 집중한다. 한국 섹스 코미디의 상투적 서사에 가깝다. 섹스 이야기만 드러내기 꺼려지는 윤리적 감정 때문에 꼭 어린 시절 트라우마나 눈물 나는 멜로 상황을 끼워 넣는다.



    문제는 이 웃음과 드라마의 연결이 얼마나 자연스러운가다. ‘환상의 커플’ ‘내조의 여왕’ 등 코믹 드라마로 익숙한 배우 오지호는 TV 연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두 사람이 각자 트라우마를 고백할 때 관객들이 공감을 느끼려 꽤 애써야 할 정도다.

    웃기지만 진부한 한국식 로맨틱 코미디의 맛
    ‘연애의 맛’이 보여주는 한계가 거기 있다. 섹스를 영화나 코미디 소재로 삼는다는 것이 아직 우리 문화에선 쉽지 않다. 그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로맨스 코미디는 어떤 점에서 사회적 맥락과 무의식을 읽어냄으로써 폭발적 공감을 얻어내곤 했다.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뚱뚱한 여자가 동시대 여성들의 공감을 자아내고 ‘섹스 앤 더 시티’의 ‘차도녀’가 여성들의 로망이 됐듯, 로맨스 속 여성은 동시대 젊은이의 욕망과 무의식을 담아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최근 한국 로맨스 영화들의 제안은 아쉽다. 대중가요 ‘썸’만큼의 대중적 동의를 얻어내는 영화가 없다. 로맨틱 코미디가 점점 힘을 잃는 것은 우리 영화계만의 문제는 아니다. 미니시리즈 드라마가 로맨스 영역을 특화해 차지했다는 지적에도 동의한다. 하지만 결국 그것은 감각의 문제 아닐까. 동시대 호흡을 읽어내는 예민한 감각 말이다. 로맨스의 진화는 상투성을 깨는 발랄함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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