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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호남 유권자는 경쟁체제를 원한다

광주서 불기 시작한 천정배發 제3신당 바람, 여당에도 훈풍 되나

  • 구자홍 기자 hoon@donga.com

호남 유권자는 경쟁체제를 원한다

호남 유권자는 경쟁체제를 원한다

4월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전날 재·보궐선거로 다시 국회에 들어온 무소속 천정배 의원(가운데)을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오른쪽)와 이정현 의원이 반갑게 맞이하고 있다.

52.37% 대 29.80%.

4·29 광주 서을 보궐선거에서 무소속 천정배 후보가 압도적 득표로 당선했다. 득표율 차가 22.57%p에 이를 정도로 천 후보는 새정치민주연합(새정연) 조영택 후보보다 1.8배 가까이 더 득표했다. 이 같은 결과를 놓고 새정연 안팎에서는 ‘호남이 문재인을 버렸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새정연의 한 당협위원장은 이렇게 평했다.

“광주 서을 보궐선거 결과는 새정연 주류인 문재인 대표로 상징되는 친노무현(친노) 세력에 대한 경고 의미가 강하다. 득표율 격차를 보라. 상상할 수 없는 표차가 나오지 않았나. 호남이 새정연의 전통적 지지기반이라고는 하지만 ‘미워도 다시 한 번’이라며 쉽게 접근했다가는 언제든 큰코다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선거였다.”

야권 내부의 기울어진 운동장

이번 4·29 재·보궐선거(재보선)에서 새정연이 참패한 원인으로 ‘안일한 공천’을 꼽는 이가 많다. 지난해 7·30 재보선 때는 무리한 전략공천을 남발했다 민심의 역풍을 맞았다면, 이번 4·29 재보선은 ‘묻지 마 경선’으로 안일하게 공천했다 유권자로부터 외면을 받았다는 것. 당의 한 인사는 “(7·30과 4·29) 두 번의 재보선은 후보를 내세우는 공천 과정이 공정해야 한다는 점을 일깨워줬다”며 “재보선에 나타난 국민의 명령은 공정하면서도 전략적인 솔로몬의 지혜가 담긴 과감한 공천혁신을 하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새정연 안팎에서 ‘공천혁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은 것은 ‘불공정 공천’에 대한 우려가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내년 총선 출마를 준비하는 한 인사는 “새정연 공천은 기본적으로 참여정부에 참여해 좋은 경력을 쌓고 물적, 인적 네트워크를 갖춘 친노계에게 유리한, 기울어진 운동장과 같다”고 말했다.

그는 무소속 천정배 후보의 당선 의미를 이렇게 평가했다.

“과거 호남 선거는 예선전에서 사실상 승부가 결정됐다. 공천이 곧 당선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년 총선부터는 호남에서도 본선에서 승부가 날 개연성이 높아졌다. 호남에서 독점적 지위를 누리던 새정연의 아성이 무너지고, 경쟁체제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광주 서을 재보선 패배 이후 새정연 내부에서는 ‘호남 민심을 오판했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높다. 호남 유권자가 느끼는 소외감을 새정연이 제대로 감싸 안지 못한 결과가 재보선 참패로 이어졌다는 것.

“호남 유권자는 정권으로부터 소외 말고도 2중의 소외감을 느껴왔다. 하나는 문재인 지도부가 호남을 이용만 할 뿐 대변해주지 않는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호남 출신 국회의원들이 자신의 정치생명 연장만 원할 뿐 호남 정치의 변화와 혁신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호남 정치를 개혁하려면 유권자가 직접 나서 심판하는 수밖에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호남 민심에 대한 오판은 곧 친노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다. 새정연 일각에서는 당의 공식 기구가 아닌 ‘비선 친노라인’이 대표와 당의 결정을 뒤흔든다는 의심을 하고 있다. 당의 한 관계자는 새정연의 불합리한 의사결정에 대해 이렇게 진단했다.

“이들(친노)은 당의 공조직을 통해 선거하는 법, 당의 총력을 끌어내 이기는 법을 한 번도 배우지 못했고 배울 의지도 없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들이 중심이 돼 이기는 것이다.”

친노 중심의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의사결정 구조에 대한 불만이 재보선 패배 이후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있지만, 문재인 대표는 당의 민주적 운영에 대한 계획이나 내년 총선의 공정한 공천을 위해 어떻게 하겠다는 구체적인 약속을 하지 않고 있다.

호남 유권자는 경쟁체제를 원한다

5월 4일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의 광주 방문을 앞두고 광주공항 출구에서는 ‘새정치민주연합 개혁을 바라는 시민모임’ 회원들이 ‘문재인은 더 이상 호남 민심을 우롱하지 말라’라고 쓴 현수막을 든 채 항의하고 있다.

새누리, 제2의 오신환 기대

그 대신 문 대표는 재보선 직후 광주를 찾아 “새롭게 창당하는 각오로 뼛속부터, 뿌리부터 환골탈태하겠다. 완전히 새로운 정당을 만들겠다”며 “회초리를 한 번 더 맞는 심정으로 왔다. 꾸짖어주시면 겸허히 받아들이고 통렬히 반성하겠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문 대표의 반성은 “이번 재보선 패배로 말미암아 박근혜 정권의 인사 실패, 경제 실패 그리고 부정부패가 덮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는 얘기가 전해지면서 빛이 바랬다. 박근혜 대통령의 전매특허와도 같은 유체이탈화법으로 본질을 비켜갔다는 비판 여론이 거세졌기 때문. 광주에서 활동하는 한 지역 인사는 “문 대표가 통합을 외친 건 말뿐이고 천정배 당선인을 포용할 계획도 잡지 않은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천정배 의원은 재보선 당선 직후 “내년 총선에 ‘뉴DJ(김대중)들’을 모아 호남정치를 경쟁구도로 만들면 야권이 전체적으로 튼튼해질 것”이라며 독자적인 정치결사체 추진 의사를 내비쳤다. 다만 그는 ‘지역정당’에 대한 비판 여론을 의식한 듯 “만약 당을 만든다면 전국적 개혁정당이 돼야 한다. ‘호남자민련’ 등의 비판은 전혀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광주에서 불기 시작한 천정배발(發) 제3신당 바람은 시간이 지날수록 호남 전역으로 확산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광주뿐 아니라 호남 다른 지역에서도 새정연이 아닌 새로운 정당을 통해 내년 총선에 나설 채비를 서두르는 인사가 점차 늘고 있는 것.

내년 총선에 전북에서 출마를 준비하는 한 인사는 “천 의원이 재보선에서 당선한 이후 지역 여론이 조금씩 바뀌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며 “경선룰 등이 아직 확정되지 않아 당장 거취를 결정할 상황은 아니지만, 제3신당 창당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고 폭넓게 고민해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호남에서 야권 재편 움직임이 가시화하자 호남에서 여권 후보로 출마를 준비 중인 인사들은 반색하고 있다. 천정배발 야권 개편으로 호남 삼분지계가 이뤄지면 4·29 재보선에 서울 관악을에서 새누리당 후보가 당선한 것처럼 호남에서도 제2의 오신환을 꿈꿔볼 수 있기 때문. 내년 총선에 호남에서 출마를 준비하는 한 여권 인사는 “4·29 재보선을 계기로 야권이 경쟁체제로 바뀌면서 내년 총선 분위기가 좋아진 측면이 있다”며 “인물 경쟁력으로 내년 총선이 치러지기를 소망한다”고 말했다.



주간동아 2015.05.11 987호 (p14~15)

구자홍 기자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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