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83

2015.04.13

젓갈의 짠맛, 밥의 단맛, 갓김치의 쌉싸래한 맛

순천의 국밥과 한정식

  • 박정배 푸드칼럼니스트 whitesudal@naver.com

    입력2015-04-13 13: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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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젓갈의 짠맛, 밥의 단맛, 갓김치의 쌉싸래한 맛

    ‘제일식당’의 돼지국밥.

    남해안을 여행하다 보면 반드시 전남 순천에 닿는다. 전라선과 경전선이 만나는 지점이자 전주에서 여수로 이어지는 17번 국도와 목포-부산 간을 연결하는 2번 국도의 교차점이다. 전남에서 산이 가장 많은 지역이지만 바다와 접해 있고 섬진강과 보성강도 흐른다. 주변 산과 뭍과 바다에서 나는 물산들이 모여 일대로 퍼져 나가기 때문에 순천에는 시장이 많다.

    북쪽 산지에서 내려오는 물산은 ‘웃장’이라 부르는 북부시장으로 모이고, 남쪽 산물은 ‘아랫장’인 남부시장으로 흘러든다. 웃장은 전라도에선 보기 드물게 돼지국밥 골목이 형성돼 있다. 1980년대 초 ‘상원식당’에서 시작된 전라도식 돼지국밥은 현재 웃장에서 가장 오래된 ‘제일식당’으로 이어지고 있다.

    특이한 점은 시장 골목에 들어서도 돼지국밥 골목이나 순댓국밥 골목의 트레이드마크처럼 각인된 돼지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것. 돼지 냄새는 일반인에겐 추억의 냄새지만, 사실 돼지고기 관리와 조리 과정에서 산패돼 생기는 것이다. 당연히 젊은이들은 싫어하는 냄새다.

    그런 냄새가 나지 않기 때문일까. 식당 10여 곳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 사람도 제일 붐비는 ‘제일식당’에 들어서면 의외로 젊은 손님이 많다. 콩나물국밥을 연상케 하는 돼지국밥은 맑고 개운하다. 콩나물 덕에 시원하고 마늘 덕에 달달한 맛이 난다. 국은 살코기와 뼈로 낸 맑은 탕이다. 고기는 주로 머리고기를 사용한다. 내장은 아예 취급하지 않는다. 순대는 광주에서 가져온 당면순대다. 전라도 일대가 피순대 문화권인 것을 감안하면 웃장의 돼지국밥은 확실히 독특하다.

    웃장에서 위로 한참을 가면 순천시 끝자락에 위치한 괴목리가 나온다. 옛 괴목리 오일장 자리에 있는 ‘할머니 옛날 순대국밥집’에서는 콩나물이 들어간 묵직한 대창피순대를 판다. 전라도 음식의 한 축인 젓갈로 맛을 낸 묵은지와 갓김치에 순대를 곁들여 먹는 것이 독특하다. 순천에서 가장 큰 시장인 아랫장에도 순댓국밥집이 몇 군데 들어서 있다. ‘건봉국밥’의 순댓국밥은 탁한 국물이지만 생각보다 진하지 않고 오히려 개운하고 경쾌하다. 돼지국밥에 딸려 나오는 김치만 4가지다. 콩나물과 새우젓, 된장, 양파, 고추, 마늘도 곁들여진다.



    젓갈의 짠맛, 밥의 단맛, 갓김치의 쌉싸래한 맛

    ‘대원식당’의 한정식.

    남도의 반찬은 푸짐하고 풍성하다. 돼지국밥에 나오는 반찬이 아무리 많다 해도 한정식과는 비교할 수 없다. 순천에는 한정식으로 이름이 자자한 ‘대원식당’이 있다. 어둠이 내려앉은 저녁 한옥집은 고향집처럼 정감이 있다. 탁자가 없는 구들방에 자리를 잡는다. 같이 온 일행들이 어색해한다. 잠시 후 두 여성이 음식이 가득한 큰 상을 들고 들어온다. 진석화젓, 토화젓, 갈치속젓에 봄을 가득 담은 나물과 된장찌개, 돼지불고기, 낙지구이, 갓김치가 두루두루 맛있다.

    남도에서는 가격 문제나 너무 많은 반찬 수 탓에 일정 수준의 맛을 유지하는 한정식집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다행히 ‘대원식당’의 맛은 변함없지만 가격이 오르고 반찬 수는 줄었다. 식당 주인이 음식과 먹는 법을 열심히 설명한다. 미슐랭 스타를 받은 레스토랑에서나 볼 수 있는 설명 덕에 맛에 대한 이해가 높아진다. 간이 적절하고 각별하다. 재료 자체의 맛보다 양념과 재료의 조화를 중요시하는 한국인의 음식 만들기가 잘 녹아 있다. 진석화젓을 밥에 비벼 갓김치를 곁들이니 젓갈의 짠맛이 밥의 단맛, 갓김치의 쌉싸래한 맛과 어울려 한국적인 음식의 한순간을 완성한다. ‘명궁관’ ‘세복식당’ ‘선암식당’ 같은 다양한 가격과 차림새의 한정식집도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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