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81

2015.03.30

오프라인 매장 문 닫는 홍대 앞 퍼플레코드

17년, 추억, Farewell

  •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daum.net

    입력2015-03-30 11: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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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프라인 매장 문 닫는 홍대 앞 퍼플레코드
    3월 25일 오전, 서울 홍대 정문 앞에 있는 퍼플레코드(사진)에는 ‘20~25% 세일’이란 문구가 붙어 있었다. 창가 디스플레이장은 치워졌고 그 자리에 LP레코드가 쌓여 있었다. 가게 안을 빼꼼히 들여다보니 17년 동안 퍼플레코드를 지켜온 이건웅 사장의 얼굴이 보였다. 평소 같으면 가볍게 목례하고 가던 길을 갔겠지만 이날은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이건웅 사장은 이삿짐센터 직원과 대화 중이었다. “이 박스하고 이 박스는 두고 갈 거고요, 여기서부터 여기까지는 갖고 갈 겁니다. 날짜는 31일 오후 4시까지 오시면 되고요.” 딱히 사야 할 음반은 없었지만 LP 진열장을 들여다보며 그들의 대화를 들었다. 3월 30일부로 오프라인 영업을 종료한다는 사실이 비로소 실감이 났다.

    퍼플레코드가 문을 연 1998년은 홍대 앞이 음악의 중심지로 떠오르던 때였다. 라이브클럽이 창궐했고, 음악 애호가가 즐겨 찾는 음반가게가 10여 곳이 됐다. 대부분 아트록, 일렉트로니카, 올드록, 중고 LP 등 특정 장르나 아이템에 특화된 가게들이었다. 그중에서도 비교적 후발주자에 속했던 퍼플레코드는 영미권 인디록을 발 빠르게 수입, 판매하는 곳으로 소문났다. 라이브클럽에서 공연을 보고, 퍼플레코드에서 음반을 산 후, 벨 앤 세바스찬 같은 음악 펍에서 그 음반을 들으며 맥주 한 잔 하는 게 당시 홍대 앞 사람들의 일상이었다. 단골끼리 친구가 되는 일이 흔했고, 음악 친구들을 가게에서 조우하는 일은 더 흔했다.

    2000년대와 함께 디지털 시대가 시작되면서 음반산업은 말 그대로 붕괴했다. 동네 음반가게가 빠른 속도로 사라져갔고 1980~90년대 번영하던 시내 유명 음반가게들 역시 휘청거렸다. 음반보다 MP3 플레이어나 헤드폰, 이어폰 판매로 명맥을 유지하곤 했다. 그도 아니면 휴대전화 판매를 겸업하기도 했다. 그나마 음악 애호가가 모여든다는 홍대 앞 음반가게들은 수명이 좀 긴 편이었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 이후 홍대 앞 부동산가격이 급격히 치솟으면서 다른 많은 작은 가게와 마찬가지로 음반가게도 하나 둘씩 사라졌다. 일렉트로닉 전문숍이던 시티 비트, 아트록의 성지였던 시완 레코드 등이 문을 닫거나 홍대 변방으로 이전할 수밖에 없었다. 퍼플레코드는 그래도 꿋꿋이 버텼다. 새롭게 융성하기 시작한 DJ문화에 발맞춰 국내 어디서도 구할 수 없는 일렉트로닉 음반을 수입했고 힙합 LP를 들여놨다. 홍대 앞 음악 애호가들의 마지막 보루가 된 것이다.



    그 마지막 보루가 사라진다. 그렇다고 ‘음반을 듣지 않는 시대’ 등등 빤한 한탄을 남길 생각은 없다. 큐레이션 시대에 걸맞게 퍼플레코드보다 더 섬세하게 애호가의 취향을 자극하며 홍대 앞 음반가게의 명맥을 새롭게 잇는 김밥레코드가 있기 때문이다. ‘치솟는 월세 때문에 전통의 가게들이 쫓겨난다’는 탄식 또한 할 생각은 없다. 이건웅 사장에게 물었다. “월세 때문에 그러세요?” 그는 손사래를 쳤다. “여긴 월세 그렇게 안 비싸요, 메인 스트리트도 아니고. 내가 스물일곱 살 때부터 음반을 팔아서 지금이 21년째예요. 가게에서 음악을 틀어놓을 때 판매와 연결되는 음악을 틀어야 하잖아요? 이젠 그게 지겨워져서 내가 듣고 싶은 음악 들으려고요.”

    그랬다. 퍼플레코드를 지나가다 흘러나오는 음악에 홀려 질렀던 음반이 몇 장이던가. 20대 중반부터 30대까지 산 음반 대부분이 그랬다. 많은 밴드, DJ, 평론가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오프라인 매장 철수 소식에 많은 뮤지션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한결같이 아쉬움과 추억을 이야기한 것은 그런 경험의 집산이다. 다른 곳에 가봐야 한다는 이건웅 사장에게 한 번 더 들르겠다고 한 후 LP 2장을 골라 들고 나왔다. 그중 하나가 다이애나 로스와 슈프림스의 마지막 라이브 앨범 ‘Farewell’이었다. 공교롭게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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