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78

2015.03.09

마이너스 금리 시대의 투자법

다양한 자산과 지역에 분산투자해 리스크 줄여라

  • 이상건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상무 sg.lee@miraeasset.com

    입력2015-03-09 14: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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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이너스 금리 시대의 투자법

    은행 예 · 적금의 절반 정도는 금리가 1%대이고, 정책적으로 금리 우대를 해주는 청약통장 같은 상품도 최근 금리가 낮아지고 있다.

    당신은 1000만 원을 은행의 1년 만기 정기예금에 가입했다. 그런데 1년 뒤 은행은 이자는 고사하고, 970만 원만 돌려줬다. 원금 손실이 발생한 것이다. 대다수는 이를 두고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할 것이다. 그리고 실제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예금하려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 ‘마이너스 금리’를 지급하는 상식 밖의 일이 나타났다. 물론 우리나라 일은 아니다. 다른 나라 얘기다. 유럽의 스웨덴, 스위스, 덴마크 등이 마이너스 금리를 적용하고 있다. 이들 국가의 중앙은행은 최근 들어 기준금리를 마이너스로 내렸다. 스위스 일부 은행은 이미 대규모 예금과 대기업 자금에 마이너스 금리를 적용하기 시작했다.

    마이너스 금리, 역사상 처음 있는 일

    인터넷 포털사이트 네이버 백과사전에서 ‘금리’를 검색하면 요약 부분에 이렇게 쓰여 있다. ‘자금을 대차(貸借)할 때 부과하는 사용료.’ 대학 금융 관련 교과서에 실린 내용도 보자. ‘시간이 개입되는 대차거래에서 미래소비와 현재소비를 동등한 가치로 만들기 위해 미래에 대가를 지불할 때 추가되는 부분을 ‘이자(interest)’라고 하며, 원금에 대한 이자의 비율을 ‘이자율(rate of interest)’이라고 한다.’(‘금융시장의 이해’에서 인용). 백과사전이나 교과서에 등장하는 금리 또는 이자율 개념에는 모두 플러스를 전제로 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금리에 관한 한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가 된 듯하다. 자본주의 역사상 마이너스 금리가 등장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지금까지 실질금리가 아닌 명목금리가 마이너스인 적은 없었다. 유럽 국가들이 마이너스 금리라는 상식을 뒤집는 금리정책을 펼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통적으로 중앙은행은 ‘인플레이션 파이터’로서의 면모를 강조해왔다. 우리나라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에도 ‘물가안정’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 파이터로 자리매김한 데는 1970년대 영향이 컸다.



    1970년대는 경기 침체와 인플레이션이 결합된 스태그플레이션 시대였다. 일부 학자는 70년대를 두고 ‘인플레이션 시대’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이 시기를 대표하는 중앙은행장이 폴 볼커(Paul Volcker)다. 1979~87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을 역임한 볼커는 기준금리를 4~5%대에서 20%로 확 끌어올려 70년대 내내 그 위세를 떨치던 인플레이션에 전면전을 선포했다. 고금리 탓에 부채가 많은 기업과 개인은 한순간 목숨을 잃어야 했다. 그러나 확고하고 단호한 고금리정책은 효과를 발휘해 인플레이션을 잠재웠고, 80년대 미국 경제가 성장하는 데 주춧돌 구실을 했다.

    각국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 파이터로서의 모습을 거두고, 디플레이션 파이터로서 새로운 싸움을 선언한 것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부터다. 더 정확히 말하면 최근 1~2년 사이 자신들의 구실을 디플레이션과의 싸움으로 규정하고 있다. 미국은 양적완화를 통해, 일본은 아베노믹스를 통해, 유로존 역시 대대적인 양적완화를 통해 돈 풀기를 하고 있고, 유로존에 맞서고자 유럽 일부 국가들은 마이너스 금리라는 카드를 빼들었다. 일부에서는 이들 두고 보이지 않는 ‘신(新)환율전쟁’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지금 주요 국가들은 경제적 난국을 타개하고자 어떻게든 자국의 금리와 통화가치를 떨어뜨리려고 안간힘을 쓰는 모양새다.

    우리나라 기준금리는 2014년 10월 15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에서 0.5%p 인하해 2.0%가 된 후 2015년 2월까지 계속 2%에 머물고 있다. 일부에서는 한국은행이 너무 인플레이션에 집착하고 디플레이션을 과소평가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각국 주요 중앙은행이 공격적으로 마이너스 금리를 펼치는 시대에 한가롭게 과거 구실에만 머물고 있다는 것이다.

    글로벌 플랫폼 기업이 유망

    한국은행이 이후 기준금리를 인하하든 그렇지 않든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것은 금리는 당분간 오르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미 은행 예 · 적금의 절반 정도가 금리 1%대인 상황이고, 정책적으로 금리 우대를 해주는 청약통장 같은 상품도 최근 금리가 낮아지고 있다. 글로벌 차원에서도 디플레이션의 파괴력을 잘 아는 각국 중앙은행들은 볼커 전 의장이 인플레이션을 잡으려고 극단적인 고금리정책을 펼쳤듯이, 디플레이션을 막기 위해서라면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다할 개연성이 높다. 따라서 미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들의 금리인하 레이스는 당분간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행만 금리를 올린다는 것은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봐야 한다.

    초저금리는 이제 우리 시대 삶의 기반이다. 초저금리 상황에서 저축의 매력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투자하지 않고서는 수익을 높이기 어렵다. 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이런 사정을 전혀 반영하지 않고 있다. 초저금리에도 정기예금 잔액은 늘고, 주식형 펀드 같은 투자 상품은 줄었다. 주요 4대 시중은행의 1년 만기 정기예금 잔액은 2014년 1월 말 359조 원에서 올해 1월 말 367조5000억 원으로 최근 1년 새 8조5000억 원 증가했다. 반면 주식형 펀드는 같은 기간 1조 원가량 감소했다.

    초저금리 상황에서는 투자 비중의 확대와 투자 지역의 분산이 중요하다. 특히 세계화와 플랫폼 기업의 증가로 각 산업에서 글로벌 플레이어의 시장 지배력이 더욱 커지고 있는 만큼 투자 지역을 국내로만 좁혀 놓는 것은 투자 기회를 스스로 좁히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애플, 나이키 등 상품 기획과 디자인 같은 핵심 기능만 본사에 두고 나머지는 모두 글로벌 아웃소싱 전략을 구사하는 플랫폼 기업은 세계화의 최대 수혜자이자 승자들이다.

    저성장 기조가 완연하고 초저금리가 지속되는 상황에서는 더 넓게 자산을 분산해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투자자들이 선구안을 발휘해 성과를 내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이런 시대에는 다양한 자산과 지역에 분산해놓는 것이 리스크를 줄이면서도 적정 수익을 추구하는 길이라 할 수 있다. 마이너스 금리라는 이상한 나라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가장 교과서적인 투자, 다시 말해 분산투자를 해야 한다. 교과서는 오랜 경험의 압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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