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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잉여 인생, 삼포세대, NG족…청년 세대의 다른 이름

세대 지칭 신조어로 살펴본 이 시대 청년층의 초상

  • 구희언 기자 hawkeye@donga.com

잉여 인생, 삼포세대, NG족…청년 세대의 다른 이름

어느 날 ‘88만 원 세대’라는 말이 뚝 하고 떨어졌다. 2007년 8월 경제학자 우석훈 전 성공회대 외래교수와 사회운동가 박권일이 쓴 책 ‘88만원 세대’가 히트하며 이 말은 제목 그대로 20대의 경제적 상황을 뜻하는 사회용어가 됐다. 88만 원은 비정규직 평균임금 119만 원에 20대의 평균 소득 비율 74%를 곱해 나온 금액이다.

2012년 3월 26일 우 전 교수는 자신의 인터넷 블로그에 저서가 의도와 다르게 활용됐다며 ‘88만 원 세대’의 절판을 선언했지만, 이후에도 ‘88만 원 세대’라는 용어는 살아남아 정치권과 언론, 학계에서 지금의 청년세대를 가리키는 용어로 쓰이고 있다.

이 책의 성공 이후 극심한 취업난에 직면해 암울한 청년 세대를 나타내는 신조어들이 속속 만들어졌다. 2010년 대학가에는 졸업 후 실업자 또는 신용불량자가 된다는 ‘청년실신’이란 말이 유행했다. 졸업 후 취업에 실패해 ‘실업자’가 되고 빌린 학자금을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가 되는 사회 분위기를 풍자한 말이다. 이들에게는 졸업을 계속 미룬다고 해서 ‘모라토리엄(Moratorium)족’ 혹은 ‘NG(No Graduation)족’, 학교라는 둥지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한다 해서 ‘둥지족’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또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취업이 어렵다는 ‘낙타세대’, 장기간 미취업자라는 뜻의 ‘장미족’도 이들을 따라다니는 말이다. 20대 태반이 백수라는 뜻의 ‘이태백’이나 31세까지 취업을 못하면 길이 막힌다는 ‘삼일절’등 우울한 신조어가 계속 생겨났다.

절망과 결핍의 우울한 흔적

재학생도 졸업생 못지않게 어렵기는 마찬가지. ‘알바’(아르바이트)로 부족한 학자금을 충당하는 학생은 ‘알부자족’이고, 방학이나 명절이면 평소 시급의 1.5배를 주는 일자리를 찾는 학생은 ‘점오(0.5)배족’이다. 점심값을 아끼려고 도시락을 싸는 ‘도시락족’이나 하루 생활비 5000원이라는 뜻의 ‘5000원족’ 역시 팍팍한 이들의 삶을 보여준다.



이 모든 것을 담은 말이 ‘삼포(三抛)세대’다. 삼포세대는 불안정한 일자리, 학자금 대출 상환, 기약 없는 취업 준비, 치솟은 집값 등 과도한 삶의 비용으로 연애, 결혼, 출산 3가지를 포기한 세대를 말한다. 경제 불황이 장기화하면서 집 마련과 인간관계까지 포기하는 ‘오포세대’도 생겨났다.

‘잉여’라는 말도 재해석되고 있다. 본디 ‘남아도는’이란 뜻의 한자어였으나, 청년실업 시대가 오면서 ‘취업시장에서 남아도는 인력’ ‘쓸모없는 인력’, 즉 백수를 뜻하는 부정적 단어로 자리매김한 것. 잉여스러움을 측정하는 수치인 ‘잉여력’, 쓸데없이 질 높은 일을 했을 때 장인정신 대신 ‘장잉정신’이라는 말을 쓰며 젊은 층은 자기비하 세계에 빠져들었다.

애인 없음, 돈 없음, 직업 없음, 집 없음…. 청년층을 가리키는 말에는 ‘결핍’의 정서가 담겨 있다. 청년실업과 비정규직이 증가하면서 자력으로는 집을 구하기 힘들어 고시원과 하숙집, 기숙사, 친척집 등을 전전하는 이들은 스스로를 껍데기(집)가 없는 민달팽이에 빗대 ‘민달팽이 세대’라고 부른다.

일본에서 건너온 용어도 눈에 띈다. 도(道)를 깨달은 사람을 가리키는 ‘사토리족’이라는 말은 20여 년 경기 침체 과정을 거친 일본 젊은이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신조어다. 국내에서 ‘달관 세대’ ‘관조 세대’라는 말로 쓰이며 출세나 돈벌이에 관심이 없고, 필요 이상 돈을 벌 생각도 없으며, 득도한 사람처럼 초연하게 삶을 살아간다고 소개됐다. 그러나 정작 ‘달관 세대’로 지목된 당사자들로부터는 “미화도 정도껏 하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대학생 최경아(23) 씨는 “우리는 달관한 게 아니라 체념한 것”이라며 “하루하루 취업 걱정에 짓눌려 아등바등 살고 있고, 비정규직으로 취직한다 해도 언제 잘릴지 몰라 불안하다. 반 포기 상태인 이들을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식으로 미화하지 마라”고 말했다.

청년층과 달리 장년층과 노년층을 일컫는 용어는 점점 화려해졌다. 여기서도 중요한 건 경제력이다. 실버 세대 중에서도 돈이 있는 노년층은 ‘골드 세대’로 불린다. 상위 1%는 화이트 골드 세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젊고 세련된 외모와 자유로운 생활방식을 지향하는 4050 중년 남성은 ‘노모어 엉클(No More Uncle)’의 약자를 따 ‘노무(NOMU)족’이라 부른다. 비슷한 말로 ‘신레옹족’이 있다.

노년층 일컫는 용어는 화려해져

‘루비(RUBY)족’은 신선함(Refresh), 비범함(Uncommon), 아름다움(Beautiful), 젊음(Young)의 단어 첫 글자를 따서 조합한 말로 평범하고 전통적인 아줌마를 탈피한 4050 여성이다. 은퇴 후에도 소비와 여가생활을 즐기며 사회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5060 세대는 ‘액티브 시니어(Active Senior)’라 불리고, 건강한 체력을 바탕으로 젊은이 못지않은 활동력을 보이는 6070 세대는 노인이 아니라는 뜻에서 ‘노노(No老)족’이라고 부른다. 케이블채널 tvN ‘꽃보다 할배’ 시리즈의 중견 배우들이 대표적인 액티브 시니어이자 노노족이다.

흥미로운 건 대다수 용어가 학계에서 나온 게 아니라는 점이다.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젊은이에게는 좀 더 처절한 의식이 수식어로 쓰였다면, 노인에 대해서는 비교적 장밋빛 전망이 있었다”라고 말했다.

“‘세대’라는 건 특정 연령층을 독점적으로 칭하는 말인데, 이 말 자체도 청년의 전유물이었어요. 노인을 ‘노인 세대’로 지칭하기 시작한 게 얼마 되지 않았죠. 인구수가 많아지면 힘이 커지게 마련인데, 오늘날처럼 고령인구가 많았던 적은 역사적으로 한 번도 없었어요. 그러다 보니 그런 부분에서 낙관적인 전망이 나오는 거죠. 노인 인구가 주된 소비자층으로 떠오른 것도 이런 용어의 증가에 영향을 미쳤어요. 골드 세대, 루비족 같은 단어가 쓰인다는 건 바꿔 말하면 ‘이들의 구매력이 탐이 난다’는 것이거든요. 나이 든 사람이 젊은 층에 비해 상대적으로 수동적이고 체념하는 이미지였다면 이제는 소비를 비롯해 정치, 일상생활에서도 액티브한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과거보다 젊은 층과의 이미지 격차도 많이 줄었죠. 이런 용어의 탄생도 그런 세태를 반영한 거라고 봅니다.”

젊은 층에게서 활력이 사라지는 것은 긍정적인 방향이 아닐 터. 전 교수는 “아직까지 이런 사례를 어떻게 해결할지 알려진 바가 없다”고 말했다. 이전까지 없었던 새로운 세대 변화를 우리가 지금 이 순간 겪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주간동아 2015.03.09 978호 (p40~41)

구희언 기자 hawkey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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