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61

2014.11.03

따뜻한 쌀밥에 김치찌개 한 숟갈 살맛 난다 살맛 나

서울의 김치찌개

  • 박정배 푸드칼럼니스트 whitesudal@naver.com

    입력2014-11-03 11:40: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따뜻한 쌀밥에 김치찌개 한 숟갈 살맛 난다 살맛 나

    ‘광화문집’입구(위)와 김치찌개.

    ‘김장’이 2014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됐다. 김장은 한민족의 겨울철 먹을거리를 대표하는 문화다. 우리 조상은 겨우내 김치와 밥을 먹으며 추운 시절을 보냈다. 김치가 시어지면 김치전이나 김치만두, 김치볶음밥 혹은 김치찌개를 만들어 먹었다. 1980년대가 되면서 김장하는 집이 줄어들고, 외식이 본격화하자 김치찌개가 세상 밖으로 나왔다. 김치찌개는 어머니 손맛을 그리워하는 직장인들의 점심 단골 메뉴가 됐다.

    서울 마포구 공덕역 주변에는 ‘굴다리식당’이 두 개 있다. 어머니와 아들이 식당을 분리한 드문 경우다. 식당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원래는 용산선이 지나던 굴다리 밑에 있었다. 두툼한 돼지 목살과 다리살로 만든 제육볶음, 그리고 깊은 감칠맛이 나는 김치찌개로 유명하다. 조리법은 같지만 어머니 식당은 간이 조금 세다. 외식 산업 초창기 손님들이 강한 간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2000년대 분가한 아들의 식당은 1990년대 들어서 짜고 자극적인 음식을 피하는 사람들의 요구가 반영된 순한 맛을 낸다. 매운 김치찌개를 다스리기 위해 만든 달걀말이도 제법이다.

    1970년대 돼지고기가 본격적으로 대중화하면서 신 김치 맛과 찰떡궁합인 비계가 붙은 돼지고기를 넣은 김치찌개가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돼지고기 지방이 국물 맛을 진하고 풍부하게 하고 김치의 신맛이 식욕을 돋웠다. 탄수화물 덩어리인 밥은 지방과 짠맛이 도는 음식이 어우러져야 제맛을 낸다. 김치찌개가 사랑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옛날 광화문 모습이 남아 있는 좁은 골목에 시간이 멈춘 듯 서 있는 작은 ‘광화문집’의 김치찌개는 주변 직장인은 물론 명성을 들은 젊은 미식가들도 자주 찾는 집이다. 젓갈을 넣지 않은 김치찌개용 김치를 사용해 개운하다. 신 김치가 기본으로 들어가지만 덜 삭은 경우 식초를 넣기도 한다. 냉장 돼지목살은 고소하고 식감도 좋다. 이 집도 역시 달걀말이를 낸다.

    중앙일보사 건물 건너편 서소문 ‘장호왕곱창’도 서울 김치찌개 집에서 빠지면 서운한 집이다. 언제 봐도 친근한 양은냄비에 붉지만 맑고 순한 맛이 나는 김치찌개를 낸다. 편안한 맛 때문에 단골이 많다. 식당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곱창을 팔면서 김치찌개를 내놓았는데 이제는 곱창보다 김치찌개를 찾는 사람이 더 많아졌다.



    따뜻한 쌀밥에 김치찌개 한 숟갈 살맛 난다 살맛 나

    ‘굴다리식당’의 김치찌개(왼쪽)와 ‘장호왕곱창’의 김치찌개.

    서대문역 주변 ‘한옥집’은 묵은 김치를 사용한, 신맛이 강한 김치찌개로 유명하다. 이곳은 김치찌개 원형에 가까운 맛을 낸다. 김치찌개 집은 가게마다 특색 있는 음식들이 별도로 있는데 이 집에서는 아예 김치를 전면에 내세운 김치찜이 유명하다. 통김치와 돼지고기가 같이 나와 술안주로 제격이다.

    중구 주교동 방산시장 골목에 자리 잡은 ‘은주정’은 삼겹살 전문점이다. 점심시간엔 김치찌개만 팔고 저녁에는 삼겹살을 시키면 김치찌개를 공짜로 준다. 이 집도 ‘장호왕곱창’처럼 삼겹살보다 김치찌개가 더 유명해졌다. 졸깃한 식감이 일품인 돼지고기의 양이 많은 것도 이 집 인기 비결이다. 주변 상가와 시장 상인들 입맛을 넘어 서울에서 맛을 좀 챙긴다는 사람들 발길이 이어진다. 삼겹살 전문점답게 김치찌개만 시켜도 나오는 청경채나 깻잎에 고기와 김치를 쌈 싸먹는 것도 별난 체험이다.

    신맛은 식욕을 부른다. 지방, 단백질, 탄수화물을 한 번에 먹을 수 있는 김치찌개는 영양학적으로도 완벽한 음식이지만, 가장 한국적인 밥과 결합된 영혼의 음식이다. 김치찌개는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지금부터 초봄까지가 제철이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