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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갑 김원곤 교수의 외국어 도전기

4개 국어 도전 운명이 내게 왔다

지리적 근접성에 인근 학원 등 니체의 ‘아모르파티(運命愛)’ 같은 것

  • 김원곤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교수 wongon@plaza.snu.ac.kr

4개 국어 도전 운명이 내게 왔다

4개 국어 도전 운명이 내게 왔다
“이제 나이 50인데 더 늙기 전에 외국어라도 하나 더 배워볼까.”

2003년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실 영어 외에 새로운 외국어를 배워야 할 현실적인 필요성이나 미래의 특별한 계획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개인적으로 생기기 시작한 약간의 여유 시간을 활용해 뭔가 의미 있는 지적 활동을 하고 싶다는 심리가 중요한 동기가 됐다.

일단 결심을 하자 그다음 관건은 ‘어떤 외국어를 배울 것인가’하는 것이었다. 일본어, 중국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독일어, 러시아어 등 여러 언어가 떠올랐지만, 고심 끝에 일본어를 택했다. 우리나라 사람 처지에서 비교적 배우기 쉬울 뿐 아니라 무엇보다 지리적 근접성 때문에 활용도가 높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다음에는 어떻게 공부할 것인지를 선택해야 했다. 결국 학원 강좌를 수강하기로 결정하고 전문학원을 알아보니 여러 시간대에 다양한 강의가 있어 선택 폭이 컸다.

50의 적잖은 나이에 새 도전

그렇다고 바로 학원으로 직행하지는 않았다. 학원에서 완전 기초부터 시작하면 효율성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몇 달 동안 내 나름대로 열심히 가타가나와 히라가나를 공부하고 대략적인 문법을 예습했다. 일본어는 우리나라 말과 공통된 점이 많기 때문에 독학 과정에서도 힘든 부분은 그리 많지 않았다.



이렇게 기초적인 준비를 한 다음, 2003년 6월 서울 강남역 근처의 한 일본어학원에 등록했다. 당시 평일에는 시간을 내기 어려워 매주 토요일 주말반 강좌를 듣기로 했다. 강좌명은 ‘일본어 기본문법 정리반’으로 그동안 혼자 공부했던 문법을 총괄적으로 점검한다는 명분이 그럴듯하게 여겨졌다. 게다가 강사가 한국인이라 처음 배울 때 느낄 수 있는 어색한 분위기를 덜 수 있어 좋았다.

마침내 강의 첫날, 집을 나서는데 약간 설레는 느낌이 들었다. 과거 영어 공부를 하려고 학원에 다닌 지도 10년이 훨씬 넘는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순수한 향학열로 적잖은 나이에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다는 데 대해 뿌듯함이 몰려왔다. 30대로 보이는 강사는 성의를 다해 가르쳤고, 나 역시 젊은 학생들에 뒤지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다른 학생들은 이따금 결석도 했지만 나는 한 번도 강의에 빠지지 않았다. 이렇게 두 달이 지났다.

문법에 어느 정도 자신감이 붙자 그다음부터는 본격적으로 회화와 청취에 도전했다. 학원과 강좌를 바꿔가며 꾸준히 공부해나가자 실력 역시 착실히 붙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 가운데 어느덧 두 해를 넘겨 2005년 초가 됐다. 새삼 세월이 빠르다는 것을 절감했다. 그렇지만 지난 2년은 그전의 2년과는 달랐다. 그동안 주말 시간을 활용해 일본어라는 새로운 외국어를 공부했다는 자긍심이 가슴속에 가득했다.

그리고 이 무렵 나는 외국어 도전사에 큰 전환점이 될 중요한 결정을 하게 된다. 당시 2년 가까이 학원 주말반에 다니다 보니 더는 들을 만한 강좌가 없었다. 여전히 주중에는 시간을 내기 어려워 고민이 깊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발상의 전환을 해보기로 했다. 일본어는 웬만큼 배웠으니 독학으로 실력을 유지하고, 그 대신 같은 한자 문화권인 중국어에 도전해보기로 한 것이다.

이렇게 2005년 5월 왕초보 과정인 ‘기초중국어’ 강좌를 수강하는 것으로 중국어 공부를 시작했다. 그런데 그럭저럭 무난하게 초급과 중급 과정을 순차적으로 밟아가는 중에 학원 사정 때문에 본의 아니게 ‘고급 회화반’으로 월반해야 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엉겁결에 듣게 된 고급 회화반의 강의 내용은 어려울 수밖에 없어 매주 토요일 4시간 동안 강의를 듣고 나면 머리가 지끈지끈할 정도였다. 그러나 ‘한번 해보자’는 오기가 발동해 공부를 포기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듣게 된 중국어 강좌는 2005년을 넘어 이듬해인 2006년 12월 말까지 매주 토요일 17개월 동안 이어졌고, 해외 학회에 참석할 때 빼고는 단 한 번도 결석하지 않았다. 고급반이었기 때문에 웬만큼 시간이 경과해도 항상 새롭게 도전하는 느낌이 들었다. 이러다 보니 오히려 강사가 계속 바뀌어 마지막 달에는 네 번째 강사를 맞이할 정도였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일본어와 중국어 공부에 시달리는 상태에서 2006년 5월 새롭게 프랑스어 공부를 시작했다는 것이다. 프랑스어 공부의 시작 배경은 소소했다. 즐기던 와인이나 치즈에서 프랑스어 단어를 접할 기회가 많았는데 발음조차 하지 못할 때가 대부분이었다. 이 때문에 상표 이름만이라도 제대로 발음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공부를 시작했던 것이다.

토요일은 이미 중국어 강좌로 차 있었기 때문에 수소문 끝에 일요일에 프랑스 ‘왕초보반’이 개설된 학원을 찾았다. 이렇게 시작한 프랑스어 공부는 발음만 배우겠다는 애초 목표와 달리 필수 통과의례인 숫자에서부터 요일, 달, 계절, 시간 등을 빠짐없이 배우는 과정으로 진행됐다. 동사나 인칭 변화 같은 기본 문법도 당연히 포함됐다.

하루도 쉬지 않고 외국어 공부

4개 국어 도전 운명이 내게 왔다

만학도들의 외국어 공부 열기가 갈수록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처음에는 필요도 없는 공부를 괜히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왕초보반’ 한 달 과정을 끝내고 어느 정도 감을 잡았다고 생각했던 프랑스어 발음이 2~3개월이 지나면서 점점 희미해져가는 것이 느껴졌다. 어떤 언어든 기초 바탕이 굳건해야 정확한 발음도 오래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 순간이었다. 결국 프랑스어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부터 일본어 독학과 함께 매주 토요일 오전 프랑스어 강좌를 듣고 점심을 간단히 해결한 뒤 바로 중국어 학원으로 달려가는 빡빡한 일정이 이어졌다. 3개 외국어를 동시에 공부하다 보니 언어들 간 혼동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렇게 사서 하는 고생에 방점을 찍는 일이 발생하고 말았다.

2007년 1월 또 하나의 새로운 외국어로 스페인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스페인어를 배우게 된 이유도 프랑스어만큼이나 단순했다. 프랑스어를 함께 듣는 학생들이 스페인어는 우리나라 사람 처지에서 발음이 매우 쉽고, 프랑스어에 대한 기초 지식만 있으면 두 언어의 문법 구조가 유사해 배우기 쉽다고 했던 것이다.

게다가 때마침 프랑스어학원 바로 앞에 스페인어학원이 들어섰다. 이를 나는 스페인어를 배우라는 운명적 힘이라고 억지 해석을 했다. 그때부터 주중과 주말의 모든 여유 시간을 총동원하다시피 해 4개 외국어를 동시에 공부하는 가시밭길에 들어섰다. 당연히 어려울 수밖에 없었지만 일단 시작한 이상 끈기 있게 이어나가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고 공부를 계속했다.

그 결과 2012년 대장정의 막을 내린 ‘1년에 4개 외국어 능력 평가시험 도전’도 성공적으로 끝났고, 이 글을 쓰는 지금은 그때보다 한 단계 올라선 외국어 실력을 갖고 있다고 자신한다. 돌이켜 보면 2003년부터 10년이 넘는 오랜 기간 거의 하루도 쉬지 않고 생업이나 미래 계획과는 전혀 관계없는 외국어 공부에 시간을 투자한 셈이니 이것을 운명이 아닌, 다른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겠나. 니체의 말을 빌리자면 ‘아모르파티(運命愛)’쯤 될 것이다.



주간동아 2014.10.20 959호 (p72~73)

김원곤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교수 wongon@plaza.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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