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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전통식초를 살려라

“다양한 전통식초 있어야 식탁도 경제도 살죠”

인터뷰 l 한상준 초산정 대표

  •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이근희 인턴기자·원광대 한의대 2학년

“다양한 전통식초 있어야 식탁도 경제도 살죠”

“다양한 전통식초 있어야 식탁도 경제도 살죠”
한상준(45·사진) 초산정 대표의 첫인상은 ‘시큼’했다. 전날 직원들과 회식을 해 숙취가 남았다며 헛개나무식초를 연신 들이켰다. “내일 가족과 일본 흑초 산지인 가고시마현에 가야 하는데 술이 안 깬다”고 말하는 그의 너스레가 식초향과 뒤섞였다.

한 대표는 젊지만 식초 분야에선 항상 ‘최초’ ‘선구자’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농림축산식품부(농식품부) 등과 한국전통식품 곡물식초규격 초안을 만들었고, 국내 최초로 전통식초 신지식인에 선정됐으며, 국내 최초 곡물식초 전통식품 품질인증을 획득한 전통식초 명인이다. 전통식초 생산업체인 초산정을 운영하며 ‘한상준식초학교’를 여는 등 전통식초 알리기에 앞장서는 그와 8월 11일 경북 예천 초산정에서 마주앉았다.

▼ 40대 중반과 식초, 왠지 어울리지 않는데요.

“어린 시절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며 돈이 없어 정말 고생했습니다. 어머니의 고생을 보는 것이 가장 힘들었죠. 그래서 가난에서 벗어나려고 직업군인이 됐고, IT(정보기술) 업계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하기도 했습니다. 작은 성공을 이룬 적도 있지만 태생이 촌사람이라 그런지 도시생활에 점점 지쳐갔습니다. 힘들었지만 자연 속에서 살았던 어린 시절이 계속 생각나 결국 귀농을 준비했죠. 그런데 ‘귀농하면 무엇을 하고 살까’ 고민하다 우연히 식초 효능에 관한 책을 읽었는데, 깨달은 게 많아 ‘이걸 하면 밥벌이는 하겠구나’ 생각했죠(웃음). 결국 2002년 귀향해 식초 사업을 시작했고요.”

식초 만드는 사람 더 늘어나야



▼ 전통식초 제조법을 익히는 과정은 어떠했나요.

“정말 힘들었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밥벌이를 하려고 공부했는데, 국내에서는 가르쳐주는 곳도 없었어요. 제조 기술을 배워보겠다고 대기업 공장에 찾아갔더니 어이없다는 듯 쳐다보더군요. 일본에는 400년, 중국에는 600년 된 식초양조장이 있는데 우리는 제대로 된 식초양조장도 없었어요. 독학하고, 막히면 일본에 가서 배웠어요. 지금은 제자들에게 5분이면 가르치는 산도 측정 기술을 배우려고 외국에 다녀왔으니…. 제조 기술과 데이터를 하나하나 쌓는 게 참 어려웠어요. 하긴 우리나라 전통식품 표준규격에 전통식초가 없었던 시절이니 그럴 수밖에요.”

▼ 표준규격에 전통식초가 없다니요.

“네. 미숫가루, 장아찌, 족발 같은 먹을거리에도 정부가 인증하는 표준규격이 있어요. 그런데 식초는 없었어요. 그래서 당시 농림부(현 농식품부)에 ‘전통식초 규격을 만들어달라’고 건의했더니 ‘식초가 옛날부터 우리 전통식품이었는지 자료를 가져오라’고 하더군요. 그런 자료는 많잖아요. ‘향약집성방’ ‘음식디미방’ 등 선조들의 기록을 가져다줬더니 한국식품연구원에서 연락이 왔어요. 같이 규격을 만들자고요. 그래서 각종 전문가 회의를 거쳐 2008년 1월 4일 전통식초인 곡물식초 규격을 만들었고 첫 품질인증을 받았습니다. 그때 전통식초의 현실을 보면서 ‘제대로 살려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꿈속에서도 식초를 만들었을 정도로 미쳤습니다(웃음).”

▼ 어렵게 체득한 기술을 ‘한상준식초학교’를 통해 쉽게 전파하는군요.

“사실 그리 대단한 기술은 아니지만, 우리 가족은 10년 동안 고생하며 익힌 걸 왜 남에게 가르쳐주느냐고 합니다. 그런데 저는 생각이 달라요. 짧게 생각하면 기술이 전파해 경쟁자가 늘어나겠죠. 하지만 우리나라 전통식초시장이 아직 정립이 안 돼 미미합니다. 전통식초를 만드는 사람이 늘어나야 전통식초의 효능을 널리 알릴 수 있고, 그럼 전통식초를 직접 만들어 먹는 가정도 많아질 겁니다. 김치를 만들어 먹든 사먹든 좋아하는 사람이 많아져야 김치시장이 커지잖아요. 지난해에 대학, 백화점, 지방자치단체에서 강연을 많이 했는데 수강생이 3000명 정도 됩니다. 그중 30명만이라도 식초인이 되면 서로 경쟁하면서 제대로 된 식초를 많이 개발할 수 있겠죠. 해외 시장도 개척하고요.”

“다양한 전통식초 있어야 식탁도 경제도 살죠”

발효 온도를 맞추기 위해 천을 씌운 옹기(위)와 오곡미초.

▼ 해외 시장을 개척하려면 한국 대표 식초 브랜드가 있어야겠네요.

“일본은 현미식초인 흑초, 중국은 쌀로 만든 미초가 대표적입니다. 우리나라 사람은 흑초, 미초, 발사믹식초는 들어봤겠지만 정작 한국 대표 식초가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말을 못 해요. (식초 제조회사인) ‘오뚜기’라고 안 하면 다행이죠. 그만큼 외국 식초와 주정식초, 빙초산이 시장을 장악한 상황입니다. 그래서 9월 협회(한국전통식초협회)도 출범하고 우리 식초의 뿌리를 찾는 작업도 지속할 계획입니다.”

▼ 말씀대로 빙초산과 주정식초가 우리 식탁을 장악했는데요.

“빙초산은 우리 식탁에서 추방해야 합니다. 국내에서는 빙초산을 식품첨가물로 허가했지만, 그렇다고 마음껏 먹으라는 건 아니에요. 무해한 게 아니라 소량 섭취했을 때 문제가 없다는 거죠. 식용색소와 같은 겁니다. 주정식초는 주정(에탄올)을 이용해 2~3일 속성발효하는데, 자연의 이치가 아니라 사람의 기술로 만드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맛과 향이 떨어지니 불필요한 첨가물을 넣게 됩니다. 식초의 원래 효능을 감쇄시키죠.”

6차 산업으로 충분한 가능성

“다양한 전통식초 있어야 식탁도 경제도 살죠”

전통식초를 만들고 있는 초산정 한상준 대표와 직원들.

▼ 음용식초 덕에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식초를 건강음료로 즐길 수 있지 않나요.

“글쎄요. 식초가 당뇨나 혈압에 좋다고 하는데, 달달한 식초를 마시면 좋을 게 있을까요. 액상과당, 감미료가 들어간 음용식초를 식초 효능만 생각하고 마시다가는 오히려 부작용이 생길 수 있어요. 액상과당이 저렴하니까 음료 대부분에 들어가는데, 식초는 그 자체 맛으로 즐기는 게 최선입니다. 저는 500㎖ 생수병에 소주잔만큼 식초를 타서 마셔요. 첨가물 없이.”

▼ 오곡식초를 대표 브랜드로 삼은 이유는 뭔가요.

“전통식초 하면 일반적으로 떠오르는 게 현미식초인데, 우리 선조들은 옛날부터 쌀이나 현미뿐 아니라 보리, 기장, 조, 수수 등으로도 술과 초를 빚어왔어요. 이처럼 오곡은 잡곡 문화가 발달한 우리나라의 특성을 가장 잘 나타낸다는 생각이 들었죠. 중국인의 1인당 식초 소비량이 한국인의 4배입니다. 전통식초시장을 확대해 중국인 입맛까지 사로잡으려면 오곡식초 외에도 다양한 전통식초를 만들어야 해요. 많은 식초 장인이 생겨나야 하는 이유죠.”

▼ 전통식초를 통한 관광객 유치도 벤치마킹해야 할 거 같은데요. 최근 농식품부에서 주관하는 6차 산업 우수사례 경진 대회에서 동상을 받았더군요.

“그게 식품가공과 관광산업을 연계해 지역 수입원을 창출하는 건데요. 1차 산업인 농업, 2차 산업인 제조업(식품가공), 3차 산업인 서비스업을 연계한다고 해서 6차 산업이라고 해요. 6차 산업 측면에서도 식초는 충분히 가능성이 있습니다. 농민이 키운 작물을 우리가 사서 가공해 식초로 만들고 유통하죠. 관광객도 찾아오고요. 이탈리아 발사믹식초의 고향인 모데나에는 관광객이 연 1000만 명 넘게 찾아와요. 흑초 산지인 일본 가고시마현을 찾는 관광객의 70%가량은 식초 관광을 한다고 해요. 식초 수입보다 관광 수입이 더 많을 정도죠. 그래서 우리 한국전통식초협회도 관광객을 유치할 목적으로 식초박물관 등을 건립할 준비를 하고 있어요.”



주간동아 2014.08.18 951호 (p30~31)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이근희 인턴기자·원광대 한의대 2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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