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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여름보다 더 뜨겁다, 맥주전쟁

국내 맥주시장 진입 장벽 사라져 춘추전국…대기업 신규 참여에 외국 맥주도 봇물

  • 이근희 인턴기자 원광대 한의대 2학년

여름보다 더 뜨겁다, 맥주전쟁

여름보다 더 뜨겁다, 맥주전쟁

80여 년간 국내 맥주시장을 과점했던 오비맥주와 하이트진로 제품들.

국내 맥주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오비맥주와 하이트진로의 과점 구조에 금이 가고 있기 때문이다. 롯데주류 같은 대기업이 새롭게 시장에 들어와 선전하는 데다 주세법 개정으로 숨통이 트여 중소 맥주 제조업체들도 급부상하고 있다. 해외 맥주의 급격한 상승세도 양대 맥주 회사의 과점 체제를 위협하는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국내 맥주시장의 총매출액은 약 4조 원(2012년 기준). 일제강점기였던 1933년 조선맥주(하이트맥주 전신)와 소화기린맥주(오비맥주 전신)가 맥주 생산을 시작한 이래 80년 가까이 과점 체제가 유지됐다. 2012년에도 맥주시장 점유율은 오비맥주와 하이트진로 96.1%, 수입맥주 3.6%, 하우스 및 중소기업 맥주 0.3% 순이었다.

주세법 개정 중소업체 급부상

이들이 이토록 오랜 시간 시장을 석권할 수 있었던 이유는 많은 규제와 높은 세금 등 진입 장벽 탓이 컸다. 거기에다 맥주 제조업 자체가 규모가 클수록 생산단가가 낮아지는 장치산업이라는 점도 한몫했다. 맥주시장은 거대자본을 바탕으로 대량 생산을 하면 생산비를 크게 낮출 수 있기 때문에 대기업에 유리한 구조다. 실제 대량생산이 불가능한 업체에는 제조면허조차 주지 않았다. 2014년 4월 주세법이 개정되기 전에는 277.5만ℓ이상(개정 이후는 7만5000ℓ이상) 대규모 양조장을 갖춘 곳에만 일반 맥주 제조면허를 내줬다. 더욱이 특정 술집에서 판매하는 하우스맥주는 외부 유통 자체가 불가능했다.

고율 주세(출고가의 72%)도 문제였다. 맥주 판매량에 따라 세금을 부과하는(종량세) 대부분의 나라와 달리 우리나라는 맥주 가격에 따라 세금을 부과하는 종가세 체제를 고집하고 있다. 종량세제는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같은 판매량에 대해선 동일한 세금이 부과되기 때문에 오히려 중소기업에게 유리한 구조다. 중소기업 처지에선 상대적으로 감세 효과도 볼 수 있다.



그에 반해 종가세제를 채택한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대량생산, 대량판매로 맥주 가격을 낮춘 대기업에 비해 비싼 맥주 가격으로 중소기업이 오히려 역차별을 받는 상황이다. 두 대기업을 제외한 국내 중소 맥주 제조사의 씨가 마른 상황이 최근까지 지속된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자본이 풍부한 대기업만 시장에 진입해 경쟁할 수 있는 구조 속에서 중소 규모의 맥주 제조자는 좋은 기술력으로 맛있는 맥주를 만들어도 살아남기조차 힘들었으며, 그 결과 다양한 맛을 원하는 소비자의 선택권도 거의 없었다. 독일로 교환학생을 다녀온 김모(23) 씨의 말이다.

“솔직히 대중 브랜드 맥주의 경우는 우리나라나 독일이나 맛 차이가 그리 크지 않아요. 그렇지만 독일은 수백, 수천 가지 다양한 맥주를 팔아 골라먹는 재미가 있는데 한국은 몇 개 없잖아요.”

오랜 시간 깨질 것 같지 않던 두 대기업의 과점체제에 최근 균열이 생기면서 국내 맥주시장에 급격한 변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먼저 새로운 대기업의 국내 시장 진출이 눈에 띈다.

여름보다 더 뜨겁다, 맥주전쟁

4월 국내 맥주시장에 새롭게 진출한 롯데주류의 ‘클라우드’.

그 첫 번째 주인공은 4월 맥주 ‘클라우드’를 출시한 롯데주류다. 출시 당시 고전을 면치 못하리라는 시장의 우려와 달리 그 기세가 심상치 않다. ‘물을 섞지 않은 맥주’라는 슬로건을 앞세워 판매에 들어간 클라우드는 출시 100일 만에 2700만 병(330ml 기준) 판매를 돌파했다. 클라우드는 출시 이후 6월까지 롯데마트 약 16%, 홈플러스 약 6%, 이마트 10%대 점유율을 기록하며 시장에 안착하는 모습이다. 롯데주류 관계자는 “안정적인 시장 안착이 목표였는데, 어느 정도 소기의 목표를 이룬 것 같다”고 말했다.

신세계그룹도 수입 맥주 판매에서 벗어나 직접 맥주 제조를 준비하고 있다. 신세계푸드는 3월 열린 주주총회에서 ‘맥주 제조업’을 정관에 추가했다. 10월 서울 강남에 고급 ‘하우스맥주 전문점’을 오픈할 계획이다. 업계에서는 자체 유통망을 가진 신세계그룹이 본격적으로 맥주 사업을 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자본력을 갖춘 대기업의 잇따른 맥주시장 진출은 하이트진로와 오비맥주를 긴장케 하기에 충분하다. 롯데그룹이 맥주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함에 따라 다른 대기업도 호시탐탐 진출 기회를 노리는 상황이다.

수입 맥주 권하는 유통업체

다양한 맥주를 맛보려는 국민의 욕구는 해외 맥주 구매 열기로 이어졌다. 해외 맥주를 즐기는 사람이 늘면서 국내에 수입되는 맥주 물량이 해마다 최고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관세청에 따르면 수입 맥주시장은 최근 3년간 연평균 30% 이상 높은 성장을 보였다. 이렇게 해외 맥주 판매가 늘어난 데는 유통업체들의 공격적인 할인 판매도 한몫했다. 대대적인 할인 판매로 국내 맥주와의 가격차가 사라짐으로써 소비자들이 굳이 국산 맥주를 고집해야 할 이유가 사라진 것이다.

심지어 유통업체에서 수입 맥주를 권하기도 한다. 서울 강남구에 사는 차모(50) 씨는 “동네 편의점에서 국산 맥주를 고르고 계산하려 하자 직원이 해외 맥주 4개를 1만 원에 사는 게 더 낫지 않겠느냐고 권했다. 그래서 해외 맥주로 바꿔 샀다”고 말했다. 수입 맥주가 이처럼 대폭 할인을 할 수 있는 이유는 출고가 이하 판매를 금지하는 국내 주세법이 적용되지 않는 데다 세금조차 적게 붙어 그만큼 이익이 크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현상은 버드와이저, 호가든, 기린 이치방, 산토리 맥주 등 우리에게 친숙한 일부 해외 맥주의 수입판매원이 하이트진로와 오비맥주라는 점이다. 자신들이 생산, 판매하는 국내 맥주의 시장점유율을 스스로 잠식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이는 마치 현대자동차가 일본 도요타가 생산한 승용차를 수입 판매하는 격이다. 한편, 두 대기업은 자신이 수입하는 맥주 외에 다양한 해외 맥주의 공세로 궁지에 몰리고 있다. 롯데아사히주류와 매일유업(삿포로)을 비롯한 다른 식음료 대기업들도 브랜드 파워가 있는 세계 주요 맥주를 수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간 높은 주세와 규제 등으로 시장 진출이 전무하던 중소기업의 맥주시장 진출도 주목할 만하다. 그 첫 시작은 2011년 10월 문을 연 세븐브로이맥주㈜다. 1933년 조선맥주와 소화기린맥주가 생긴 후 맥주제조 일반면허를 취득한 세 번째 맥주 제조업체다. 8월 현재 소규모 맥주 제조업체는 모두 49개, 일반 맥주 제조업체는 4개다. 중소 맥주 제조업자들은 ‘하우스 맥주의 성지’인 이태원을 중심으로 서울 곳곳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중소 맥주 제조업체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그간 중소 맥주 제조업체의 시장 진출을 막아온 규제가 다소 완화됐기 때문이다.

“42% 주세는 여전히 큰 부담”

여름보다 더 뜨겁다, 맥주전쟁

국내 최초 중소규모 맥주 제조업체인 세븐브로이맥주.

지난해 4월 새정치민주연합 홍종학 의원이 대표 발의한 주세법 개정안이 올해 4월1일부터 시행된 것이 신호탄이다. 개정된 시행령은 △하우스맥주의 외부 유통 허용 △맥주 제조시설에 대한 시설 기준 완화(7만5000ℓ이상 양조장) △중소기업 및 소규모 맥주 제조자에 대한 주세 부담 인하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주세의 경우 하우스맥주(300kl 이하)는 72%에서 32%로, 중소 맥주 제조업체도 72%에서 42%로 줄었다.

하지만 이런 주세법 개정안으로는 중소 맥주 제조업체의 시장 참여를 이끌어내는 데 충분치 않다는 게 업계의 전반적인 반응이다. 세븐브로이맥주 김강삼 대표는 “아직도 주세가 너무 높다”고 밝혔다.

“맥주 사업에 도전한 지 3년이 지났습니다. 삼성에서 반도체를 만드는데 나도 만들겠다고 뛰어든 격이죠. 그렇지만 우리 물로 만든 신선한 맥주를 국민이 마실 수 있게 해야겠다는 열정으로 노력했습니다. 아직도 어려운 점이 많죠. 일단 중소기업 맥주를 유통사에서 선호하지 않고, 낮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42% 주세는 부담이 됩니다.”

7월 22일 열린 ‘중소기업·소상공인 지원 2014 세제개편안 제1차 입법공청회’에선 이러한 중소규모 맥주 제조업체의 의견들이 논의됐다. 홍종학 의원은 이를 바탕으로 오는 정기국회 때 주세법 개정안을 한 번 더 발의할 예정이다. 새로운 개정안은 중소규모 맥주 제조사를 지원하기 위한 △세율 인하 △외부 유통 확대 △시설 기준 완화 등을 포함하고 있다.

2012년 영국 경제지 ‘이코노미스트’는 “한국 맥주는 북한 대동강 맥주보다 맛이 없다”고 혹평한 바 있다. 한국 최초의 개인 브랜드 ‘아이디어 닥터’이자 1인 창조기업의 시초인 이장우 박사는 “독특하고 특색 있는 하우스맥주와 맥주시장을 유지하는 대기업 맥주, 그리고 세계적인 경쟁력을 발휘하는 해외 맥주, 이들이 상호보완해야 맥주시장 생태계가 유지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 어느 때보다도 격변의 시기를 거치고 있는 한국 맥주시장, 맛있고 다양한 맥주를 우리 소비자가 맛볼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주간동아 2014.08.18 951호 (p40~42)

이근희 인턴기자 원광대 한의대 2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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