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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한국 축구 다시 사는 법

학교에선 축구를 즐기라고 제발!

처음부터 승부에 집착 성인 되어도 ‘뻣뻣’…창조적 플레이는 재미있어야 키워져

  • 이형삼 출판국 기획위원 hans@donga.com

학교에선 축구를 즐기라고 제발!

학교에선 축구를 즐기라고 제발!

6월 23일 오전(한국시간) 브라질 포르투 알레그레의 에스타디오 베이라-리우에서 열린 브라질월드컵 조별리그 H조 알제리와의 경기에서 손흥민이 기회를 놓치자 아쉬워하고 있다.

2010 남아공월드컵에서 사상 첫 원정 16강을 일구고 돌아온 허정무 감독에게 한국 축구의 난치병인 ‘문전 처리 미숙’에 대해 물은 적이 있다. 우리 팀이나 상대 팀이나 실력은 엇비슷해 보이는데 왜 우리는 결정적인 기회를 잇달아 놓치고 상대는 단 한 번의 기회를 득점으로 연결하는 거냐고. 허 감독의 대답은 진솔하고 냉정했다.

“실력이 비슷한 게 아니다. 그게 바로 실력 차이다. 기회를 안 놓치는 게 진짜 기술이다. 박지성, 이동국, 박주영 같은 선수도 결정적인 순간에 힘이 들어가 기회를 놓친다. 발은 뇌에서 가장 먼 곳에 있지만 손처럼 자유자재로 쓸 수 있어야 한다. 축구 기술엔 패스, 드리블 같은 공 컨트롤 능력은 물론 경기 운영, 상황 판단 같은 능력도 포함된다. 그런데 이런 능력은 단기간에 향상하기 어렵다.”

당시 허 감독이 품고 있던 고민은 한층 젊어진 이번 브라질월드컵 대표팀에서도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번 월드컵에서 터진 골은 대부분 논스톱 슈팅이나 한두 번의 짧은 볼터치 끝에 그물망을 갈랐다. 난다 긴다 하는 골잡이는 넓은 공간에서 어슬렁거리다가도 한 번 기회가 오면 유연하고 반사적인 몸놀림으로 벼락같이 슛을 날려 상대 수비수들이 손쓸 틈을 주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 공격수들은 열심히 뛰긴 했지만 좋은 위치에서 공을 받고도 ‘정조준’에 급급하다 번번이 타이밍을 놓쳤다. 몸이 뻣뻣해 순간적으로 찾아온 기회를 살려내지 못하고 오히려 역습의 빌미를 줬다.

한 종목에 ‘올인’ 들들 볶기

4년 전 허 감독은 이 ‘뻣뻣증’의 장기적 해법을 ‘즐기는 학교체육’에서 찾았다. 막 운동을 시작한 아이들이 축구 자체에 재미를 느끼게 만들어 두뇌와 감각을 키워야 창조적인 플레이를 펼칠 수 있는데, 우리는 처음부터 승부에 집착한 나머지 어린아이에게도 혹독한 체력훈련을 시켜 성장기에 몸의 균형감각과 유연성이 깨진다는 것. 가령 축구 선수는 골반이 유연해야 허리와 발목이 부드러워져 감각적인 패스와 드리블, 방향 전환을 할 수 있는데, 어릴 때부터 시합 위주의 강도 높은 훈련을 받아온 우리 선수들은 대개 골반이 굳어 있어 임기응변에 서툴다고 한다.



아이에게 너무 일찍 전문적인 훈련을 시킬 경우 심각한 부상이 우려될 뿐 아니라, 훗날 운동선수로도 대성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와 눈길을 끈다. 최근 ‘뉴욕타임스’ 기고문에 따르면 미국 로욜라대 스포츠의학 연구진의 조사 결과, 일찍부터 고도로 전문화한 훈련을 받은 아이는 척추나 팔다리 골절, 팔꿈치 인대 부상, 관절연골 파열 등의 큰 부상을 입을 가능성이 36%나 높았다. 수많은 어린 선수가 인공 관절 대치술 등 노인이 주로 받는 외과수술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일부 학부모가 자녀를 체육장학생으로 대학에 진학시키려고 코흘리개 때부터 한 종목에 ‘올인’해 맹훈련으로 들들 볶은 결과다.

연구진은 적어도 만 12세 이전까지는 특정 종목의 전문적인 훈련 대신 다양한 종목의 운동을 즐기게 하라고 조언했다. 어린 시절 농구나 필드하키처럼 공격 기술이 다채로운 운동을 두루 즐기다 보면 자연스럽게 운동 근육이 발달하고, 한 수 앞을 내다보는 재능도 향상돼 나중에 다른 종목 선수가 되더라도 실전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게 된다고 한다. 이런 논리를 입증하는 흥미로운 데이터가 많다.

상당수가 전액 장학생인 미국 UCLA 학교대표 운동선수들은 평균 15.4세부터 특정 종목을 전문적으로 훈련받은 데 비해 고교 시절 운동을 했지만 대표선수급에 들지 못한 이 학교 학생들은 14.2세부터 한 종목에 올인했다. 고강도 조기교육의 실효성을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 미국프로농구(NBA)에서 두 차례 최우수선수(MVP)를 거머쥔 스티브 내시는 축구를 하면서 자랐고 13세 때까지는 농구공을 손에 쥔 적이 없다. 테니스 스타 로저 페더러의 부모는 어린 페더러에게 배드민턴, 농구, 축구를 즐기게 했다. 준(準)엘리트급 테니스 선수들이 테니스 조기교육에 내몰리느라 평균 11세 때 다른 운동을 포기한 반면, 엘리트급 선수들은 14세 때까지 높은 성취도를 강요하지 않는 화기애애한 클럽활동을 통해 여러 종목의 운동을 즐겼다는 스웨덴의 연구결과도 있다.

파르쿠르(Parkour)도 유소년의 운동감각 개발을 위해 많이 추천된다. 프랑스군의 장애물 통과 훈련에서 유래한 파르쿠르는 맨몸으로 도시와 자연 속에 있는 다양한 장애물을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넘고 이동하는 심신단련 운동. 일부 성인 마니아는 건물과 건물 사이를 건너뛰는 등 익스트림 스포츠에 가까운 고난도 동작을 즐기지만, 유소년에겐 안전설비를 갖춘 실내공간에서 아기자기한 인공 장애물을 이용해 달리기, 등반, 도약 등을 흥미롭게 체험하는 것이 권장된다.

아이에겐 운동 공간 크기도 중요하다. 어린 선수를 성인 규격 경기장에 몰아넣고 다그치는 것은 체력적으로 무리일 뿐 아니라 기술 향상 측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그래서 브라질에선 유소년 선수들에게 ‘축소판 축구’인 풋살을 가르친다. 아이들은 좁은 풋살 경기장에서 짧은 패스를 기민하게 주고받으며 압박 상황에서의 발재간과 판단력을 몸으로 깨쳐간다.

브라질엔 도시마다 수천 개 풋살 클럽

올해 FC 바르셀로나에 입단하며 유럽 무대에 진출한 브라질 골게터 네이마르 다 실바도 풋살로 축구의 기본기를 익혔다. 그는 “공간을 많이 내주지 않는 유럽 축구에서는 생각을 빨리 해야 하는데, 풋살을 한 것이 그런 면에서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브라질의 어지간한 도시에는 다 있는, 도시마다 수천 개를 헤아리는 풋살 클럽에서 미래의 네이마르들이 ‘축구놀이’에 흠뻑 빠져 있다.

솜털이 보송보송한 어린 선수들이 밤낮 없는 합숙훈련에 진이 빠지고, 왜 뛰는지도 모르면서 숨이 목에 차도록 운동장 ‘뺑뺑이’를 돌며, 온몸에 파스를 덕지덕지 붙인 고교생 투수가 9이닝 완투를 밥 먹듯 하다 꽃도 못 피워보고 선수생활을 접는 우리 현실에선 하나같이 새겨들을 만한 얘기다. 학교체육 일선에서 ‘비정상의 정상화’가 이뤄져야 월드컵 무대에서 한국 골잡이의 신들린 시저스 킥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주간동아 2014.07.07 945호 (p62~63)

이형삼 출판국 기획위원 han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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