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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한국 축구 다시 사는 법

원정 8강은 무슨…예고된 참패였다

한국 대표팀 1무2패 참혹한 귀국…의리 기용·축구협 무능에 비난 쏟아져

  • 김도헌 스포츠동아 기자 dohoney@donga.com

원정 8강은 무슨…예고된 참패였다

원정 8강은 무슨…예고된 참패였다
아시아 축구는 2014 브라질월드컵에서 세계 수준과 현격한 기량 차이를 확인하며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아시아 4개국이 조별리그 12경기에서 거둔 성적은 고작 3무9패. 단 한 팀도 16강에 오르지 못했다. 일본과 이란은 1무2패, 호주는 3패를 기록했다. ‘아시아의 맹주’를 자처하던 한국 역시 1무2패에 그쳐 H조 4위로 탈락했다. 한국이 월드컵 본선에서 단 1승도 거두지 못한 것은 1998 프랑스월드컵 이후 16년 만이다.

한국은 2002 한일월드컵에서 ‘세계 4강’, 2010 남아공월드컵에서 ‘사상 첫 원정 16강’이란 역사를 썼다. 이번 브라질월드컵에서는 16강을 넘어 사상 첫 원정 월드컵 8강 진출을 목표로 했지만 이는 한여름 밤의 공허한 꿈으로 끝나고 말았다. 사령탑을 맡았던 홍명보(45) 감독의 무능과 대한축구협회의 근시안적 행정이 빚어낸 참사였다.

# ‘의리 축구’ 한계 보인 홍명보 감독

조별리그 탈락 직후 한국 축구는 홍 감독의 거취와 관련해 한바탕 홍역을 치렀고, 결국 유임으로 가닥이 잡혔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도 대한축구협회는 깔끔하지 못한 일처리로 또 한 번 도마 위에 올랐다.

2002 한일월드컵 당시 우리 국가대표팀 주장을 맡았던 홍 감독은 선수로 4번, 코치로 1번 월드컵 무대를 밟았다. 이번 대회가 개인 6번째 월드컵 참가였다. 본선에 오른 32개국 사령탑 중 가장 풍부한 월드컵 경험을 갖고 있었지만, 감독으로서 준비는 허술했고 결과 못지않게 과정도 매끄럽지 못했다. 선수 시절은 물론이고 2009년 20세 이하(U-20) 월드컵 8강,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 동메달, 2012 런던올림픽 동메달 등 지도자 데뷔 이후 승승장구하던 홍 감독의 축구 인생에 가장 큰 오점으로 남았다.



지난해 6월 25일 대표팀 사령탑에 취임한 홍 감독은 이번 월드컵을 앞두고 최종 엔트리 선정 때부터 논란을 일으켰다. 23명 중 13명을 2012 런던올림픽 동메달 멤버로 채웠고, 특히 ‘소속팀에서의 활약’이라는 스스로 정한 원칙까지 깨며 박주영(29·전 아스널)과 윤석영(24·퀸즈 파크 레인저스)을 포함시켰다. ‘의리 엔트리’라는 비난을 감수하면서 밀어붙였던 홍 감독의 자기 식구 챙기기는 결국 결정적 패착이 됐다.

특히 박주영의 선발 기용은 뚝심보다 ‘집착’에 가까웠다. 본선을 앞두고 가진 튀니지, 가나와의 두 차례 평가전에서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던 박주영을 조별리그 1차전 러시아전에 이어 2차전 알제리전까지 잇달아 선발 출장시키며 또 다른 비난을 자초했다. 홍 감독은 경쟁국들의 전력 분석에서도 한계점을 드러내고 뻔히 보이는 단순한 전술로 일관하는 등 선수 기용뿐 아니라 경기 운용 측면에서도 적잖은 문제점을 노출했다.

원정 8강은 무슨…예고된 참패였다

조광래 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2011년 12월 7일 전격 경질된 후 9일 서울 역삼동 노보텔앰배서더 강남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조 전 감독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며 눈시울을 붉히고 있다(위). 최강희 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선수 시절부터 남다른 카리스마로 무장했던 홍 감독은 축구계에서 ‘호불호가 뚜렷하고 자기주관이 확실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래서인지 주변 시선 역시 극단적으로 엇갈린다. 지도자 경력이 짧은 홍 감독이 대표팀 사령탑으로 발탁된 데는 ‘홍명보의 장점’이 큰 힘이 된 것이 사실이지만, 월드컵이라는 큰 무대에서 바닥까지 역량이 드러난 데는 ‘홍명보의 단점’이 결정적 이유가 됐다. 뚜렷한 호불호와 확실한 주관이 오히려 그의 발목을 잡은 셈이다. 조별리그 탈락 직후부터 홍 감독 거취에 대한 논란이 일어난 것도 비단 성적 때문만은 아니다.

홍 감독이 인정했듯, 참혹한 성적표의 일차적 책임은 홍 감독 자신에게 있다. 선수들은 100% 체력과 컨디션으로 뛸 준비를 하지 못했고, 훈련 과정에서 부상자가 나오는 등 이해할 수 없는 우여곡절이 반복됐다.

여기서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이번 한국 대표팀의 실패가 단순히 ‘홍명보의 실패’가 아니라는 점이다. 브라질에서의 실패는 어쩌면 3년 전 이미 예고된 참사였는지도 모른다. 전임 집행부인 조중연 회장 체제의 대한축구협회는 2011년 12월 아시아 지역 3차 예선에서 레바논에 1-2로 패해 상승세에 제동이 걸리자 조광래(60) 감독을 전격 경질하는 무리수를 뒀다. 이전까지 3승 1무로 선두를 달리던 중이라 고개를 갸우뚱하기에 충분했다. 특히 기술위원회를 거치지 않은 심각한 절차상의 하자를 드러내 거센 비난을 자초했다.

#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한 대한축구협회

조 감독에 이어 지휘봉을 잡은 사람은 K리그 대표 사령탑 중 한 명인 최강희(55·전북현대) 감독이었다. 끝까지 대한축구협회의 제안을 고사하다 ‘최종예선까지만 대표팀을 맡는다’는 조건하에 중책을 맡은 최 감독은 결국 브라질월드컵 본선 진출이라는 열매를 맺었지만 그 과정은 역시 순탄치 않았다. 애초 대한축구협회가 떠밀 듯 앉힌 자리에서 최 감독은 고독한 싸움을 벌였고, K리그 선수를 선호하고 해외파를 따돌린다는 일부 선수의 설화까지 감당해야 했다.

최 감독 이후 홍 감독이 ‘이미 짜인 각본처럼’ 대표팀 사령탑에 취임했다. 그러나 1년이라는 준비 기간은 월드컵 무대를 준비하기엔 충분치 않은 시간이다. 브라질월드컵에 나선 32개국 사령탑 중 재임기간이 1년 미만인 감독은 홍 감독을 포함해 4명에 불과하다. 이 중 16강에 오른 감독은 멕시코 미겔 에레라(8개월)뿐이다. H조에서 한국을 누르고 사상 처음 16강에 오른 알제리의 바히드 할리호지치 감독은 2011년부터 지휘봉을 잡았다. 대한축구협회는 16강 탈락 직후 불거진 ‘홍명보 감독 사퇴 논란’에서도 여론의 눈치만 보다 뒤늦게 7월 3일 허정무 부회장의 기자회견을 통해 ‘유임 발표’를 하는 등 늑장 대응을 해 또 다른 비난을 자초했다.

실패를 재도약 계기로 삼지 않는다면, 또 다른 기회가 와도 실패만 반복할 뿐이다. 한국은 불행 중 다행으로 이번에 소중한 경험을 얻었다. 이번 대표팀 선수가 대부분 만 22~27세인 만큼 4년 뒤 한국 축구는 월드컵 무대를 경험한 20대 중·후반 선수를 20명 가까이 보유하게 된다. 이 경험을 잘 살려 2018 러시아월드컵 때는 한국 축구의 힘을 다시 증명해야 한다. 특히 이번 월드컵에서 발군의 기량을 자랑한 손흥민(22·레버쿠젠) 등 ‘젊은 피’의 성장은 한국 축구의 큰 자산이 될 수 있다.

4년 뒤 웃으려면 더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플랜에 따른 대표팀의 경기력 향상이 우선시돼야 한다. 홍명보 감독이 우여곡절 끝에 내년 1월 호주에서 열리는 ‘2015 AFC 아시안컵’까지 지휘봉을 잡기로 했지만 이와 별도로, 월드컵 대표팀 사령탑의 연속성을 보장하는 장치도 필요하고, 세계적인 스타플레이어를 키우려는 노력도 수반돼야 한다. 무엇보다 한국 축구 발전의 자양분 구실을 해야 할 K리그를 살려야 한다. A매치 파트너 섭외 등에서 근시안적 스케줄밖에 제시하지 못하는 대한축구협회도 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다. 16년 만의 ‘무승 월드컵’으로 끝난 브라질월드컵이 많은 숙제를 안겨준 셈이다.



주간동아 2014.07.07 945호 (p60~61)

김도헌 스포츠동아 기자 dohon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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