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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카드 중지된 北, 현찰 박치기 거래

지난해 국제금융망 통한 송신은 ‘0’…범죄조직 등 ‘불법우회로’도 이용하는 듯

  • 황일도 기자·국제정치학 박사 shamora@donga.com

카드 중지된 北, 현찰 박치기 거래

카드 중지된 北, 현찰 박치기 거래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SWIFT(국제은행간통신협회) 본부.

SWIFT(국제은행간통신협회). 무역 등 외국과의 거래에 종사하는 이들에게는 낯익은 용어다. 한 국가의 은행에서 다른 국가 은행으로 송금할 때 사용하는 일종의 온라인 통신망. 흔히 ‘스위프트 코드(Swift Code)’라 부르는 상대방 은행의 식별부호를 첨부해야 해외 온라인 송금이 가능하기 때문에 주요 외국 은행의 코드를 확인하는 것은 무역업체 회계 담당자의 기초업무 가운데 하나다.

정확히 말하자면 SWIFT는 벨기에 브뤼셀에 본부를 둔 비영리법인의 명칭이다. 1973년 유럽 은행들이 처음 만든 이 법인에는 2013년 현재 1만500여 개 은행과 금융회사가 가입해 있고, 이들은 SWIFT가 제공하는 서버와 통신망을 이용해 송금 및 외화자금매매 업무를 처리한다. 매번 송금이 처리될 때마다 SWIFT에는 메시지 형태로 기록이 남는다. ‘A국가의 B은행이 C국가의 D은행으로 얼마를 송금했다’는 식이다. 지난 한 해 동안 이 시스템에서 오간 메시지는 대략 50억 건. 하루 평균 2000만 건의 국제 송금과 결제가 이 통신망을 통해 이뤄진 셈이다.

SWIFT가 집계하는 이러한 메시지 건수는 세계 각국의 경제 상황을 보여주는 매우 유력한 지표 중 하나다. 수출입을 비롯한 대외 경제활동이 많은 국가는 당연히 메시지 건수가 많기 때문. 특정 시기 SWIFT 메시지 증감을 분석해 해당국의 경제성장률을 예측하는 작업은 기본에 속한다. 특정 국가끼리의 SWIFT 메시지 양을 따져 전쟁이 발발할 가능성을 가늠하는 논문도 있을 정도다.

예컨대 지구상에서 가장 폐쇄적인 국가에 속하는 북한의 경제 상황을 들여다보는 데도 SWIFT 메시지는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다. 1970년대 이후 북한은 경제 관련 공식통계를 전혀 발표하지 않고 있지만, 이를 통해 대략 어느 정도의 대외 경제활동이 이뤄지고 있는지 가늠해볼 수 있는 것. 북한 경제가 현재 처한 상황과 봉착한 난관이 무엇인지도 이를 통해 엿볼 수 있다.

BDA 사건으로 발목 잡힌 북한



6월 말 미국의 대표적인 북한전문가 포럼인 전미북한위원회(NCNK)와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가 2001년부터 2013년까지 북한의 SWIFT 메시지 건수를 집계한 자료를 공개했다. 북한은 2001년 SWIFT에 가입했고, 이후 대외 금융업무를 총괄하는 조선무역은행이 유일한 회원기관으로 등록돼 있다. 이번에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2013년 북한의 SWIFT 이용은 단 2000여 건. 그나마 이들은 모두 수신일 뿐 송신은 한 건도 없었다. 7명의 주주와 16개의 기관이 SWIFT를 통해 해외로부터 메시지를 받았지만, 북한에서 해외로 온라인 송금된 돈은 한 푼도 없다는 뜻이다. 같은 기간 한국의 SWIFT 메시지가 6900만 건인 점을 보면 비교 자체가 불가능한 수준이다.

눈여겨볼 대목은 북한의 SWIFT 메시지 건수가 늘 이 정도 수준은 아니었다는 것. 가입 첫해 9000여 건 안팎을 기록했던 건수는 2004년 갑자기 폭증해 5만 건 수준으로 뛰어오른다. 이때를 시작으로 2011년까지 8년간은 매년 4만~5만 건을 오가는 꾸준한 이용 횟수를 기록해온 것. 다만 2004년 이후로 본격화한 SWIFT 이용 횟수가 2005년 4만2000건 내외로 떨어진 것은 BDA(방코델타아시아) 계좌동결 사건의 영향으로 보인다. 쉽게 말해 막 ‘날아오르던’ 북한의 대외 경제활동이 BDA 사건에 발목이 잡혀 주춤거리게 됐다는 뜻이다.

반면 2006년과 2009년 1, 2차 핵실험에 따른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경제·금융제재가 수년 동안 북한의 대외 경제활동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히지는 못했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그 이듬해인 2007년과 2010년 메시지 건수가 전해에 비해 소폭 감소하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이용 횟수는 꾸준히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흐름은 2011년까지 이어지다 2012년 들어 갑자기 양상이 달라진다. 4만 건 수준이던 메시지가 6000건 수준으로 급락했고, 2013년에는 앞서 말했듯 2000건 수준으로 떨어졌다. 키리바시, 투발루, 소말리아 등 이름조차 낯선 소국 수준의 대외 경제활동 수준이다.

이러한 갑작스러운 변화에 대해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측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산하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의 대북 거래 감시 강화가 요인으로 작동했을 수 있다고 평가했다. 2011년 2월 FATF는 미국 요청에 따라 북한을 테러자금 조달방지 비협조 국가로 지목하면서 회원국에 북한과의 거래에 주의해줄 것을 당부한 바 있다. 올 1월에도 FATF는 같은 취지의 결정을 다시 한 번 공표했다.

카드 중지된 北, 현찰 박치기 거래
19세기식 무역으로 겨우 버텨

문제는 FATF가 북한을 감시 대상으로 지목할 것인지 여부를 결정하는 데 10년 이상 걸렸다는 사실. 2006년 유엔 안보리의 1718호 결의 후 5년, 2009년 1974호 결의로부터도 2년의 시간이 걸린 후에야 북한의 국제 금융망 사용에 본격적인 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핵실험 임박 징후가 있을 때마다 관련국과 국제사회가 공언해온 ‘단호한 응징’이 실제로는 얼마나 지난한 절차와 장애물을 거쳐야 효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실례다.

국제 금융망을 사용할 수 없게 된 국가는 비유하자면 신용카드 지급이 정지된 소비자와 처지가 비슷하다. 수출로 벌어들인 모든 자금, 수입하며 결제해야 하는 모든 돈을 현찰로 주고받아야 한다. 달러화나 위안화를 가방에 가득 넣고 비행기에 태워 현지로 날려 보내야 하는 상황이 된 셈. 물론 은행이 아닌 비공식 금융조직을 이용한 ‘불법우회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북한 일부 기업이나 개인이 삼합회(三合會) 같은 국제 범죄조직을 통해 해외 송금 업무를 처리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외신보도가 나온 배경이다.

한국과 일본의 대북 경제제재가 본격화한 2010년 이후 북한 대외 경제활동에서 중국의 비중이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는 것도 이와 관련 깊어 보인다. 2003년 이후 중국의 대북 FDI(외국인 직접투자) 명세를 살펴보면, 중앙정부 소속 기업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고 동북3성 기업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것. 중국계 자금의 투자 중에서도 ‘현찰’로 실어 나르는 일이 가능한 거래만 성사되고 있다는 뜻이다. 21세기 IT(정보기술) 시대에도 광물과 현찰을 맞바꾸는 19세기식 무역만이 외부 세계와의 유일한 연결고리로 남은 북한의 현실이다.

카드 중지된 北, 현찰 박치기 거래

2012년 5월 17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외교통상부 국제회의실에서 열린 대량살상무기(WMD) 확산금융에 관한 국제회의. 아시아·태평양 지역 14개국 외교, 금융, 산업, 사법 당국 관계자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위원회 전문가 패널 및 국제 자금세탁방지기구(FATF) 등 국제기구 전문가 60여 명이 참석했다.





주간동아 2014.07.07 945호 (p52~53)

황일도 기자·국제정치학 박사 shamo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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