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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섭의 작은 사치

의자는 말한다, 우리 모습 담는 멋진 그릇이라고

당신의 의자

  •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장 trendhitchhiking@gmail.com

의자는 말한다, 우리 모습 담는 멋진 그릇이라고

의자는 말한다, 우리 모습 담는 멋진 그릇이라고
지방선거와 고위 공직자 인사청문회는 새로운 누군가가 자리에 앉느냐 마느냐를 결정하는 기점이 된다. 바로 지금이 무수히 많은 의자의 새 주인이 결정되는 시점이다. 자리에 앉은 권력자 가운데 의자를 바꾸는 이가 꽤 많다고 한다. 전임자가 앉던 의자가 아닌 자기만의 의자에서 새로 시작하고 싶은 것이다.

의자는 단순한 가구가 아니다. 권력과 깊은 인연을 갖고 있다. 영어 ‘chairman’이란 단어는 의자와 사람이 합쳐져 최고 권력자를 지칭한다. 이는 ‘권위의 의자를 차지한 사람’(occupier of a chair of authority)’이란 말에서 유래했다. 한자에는 권좌(權座)라는 말이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의자는 아무나 쉽게 앉을 수 있는 가구가 아니었다. 고대 이집트 왕조 때부터 의자는 왕족과 귀족의 권위를 상징하는 도구였다. 서양에서는 상류계급만 의자를 사용했고, 일반 사람에게 의자가 보급된 것은 18세기부터다.

요즘 우리는 참 쉽게 의자에 앉지만 여전히 의자에 의미를 두는 이가 꽤 있다. 당신은 지금 어떤 의자에 앉아 있는가. 자신만의 의자를 갖는 건 아주 중요한 자기만족이자 사치 가운데 하나다. 당신은 지금 의자에 어떤 투자를 하고 있는지 생각해보자. 업무시간 중 주로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에겐 의자만큼 중요한 도구도 없다.

요즘 들어 비싸고 좋은 의자나 책상을 탐내는 이가 많아졌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게 아니다. 그 가구를 사용하는 일상의 자신에게 주는 선물이자 사치인 셈이다. 특히 의자는 자기 자신을 위한 가장 만족스러운 사치품이 될 수 있다.



나를 위한 가장 만족스러운 사치품

지난 대통령선거(대선) 때 한 대선후보의 홍보 영상물에 등장한 의자가 고가라는 것이 이슈가 된 적이 있다. 서민 이미지와 어긋나는 걸 지적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서민은 좋은 의자를 가지면 안 되는 걸까. 솔직히 그 정도 사회생활을 했으면 그 정도 의자 한 개쯤 가져도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요즘 많은 이가 들고 다니는 샤넬백과 비교해보면 오히려 의자가 훨씬 싸다.

당시 영상물에 등장한 ‘임스 라운지체어’는 디자이너가 자기 친구인 영화감독에게 주려고 만든 것으로, 이후 현대 가구의 상징과도 같은 유명 의자가 됐다. 아파트 모델하우스나 영화, 드라마에 종종 등장하기도 한다. 결정적으로 그 의자는 아주 편하다. 휴식을 취할 때 그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사람들이 많이 봤을 법한 유명한 의자 가운데 미스 반데어로에의 ‘바르셀로나 체어’도 있다. 이것 역시 모델하우스나 CF에 자주 등장한다. 정품의 경우 1000만 원대를 호가한다. 예전 어느 기업 건물의 로비에 바르셀로나 체어가 여러 개 있는 걸 보고 놀란 적이 있다. 기업 이미지를 중시하는 그 기업의 로비에 있던 의자가 오리지널을 카피한 ‘짝퉁’이었기 때문이다. 공공도서관에서도 바르셀로나 체어의 짝퉁을 본 적이 있다. 애초에 공공도서관 관리자는 그 의자가 진품이 따로 있다는 걸 몰랐을 수도 있다. 우리나라에 짝퉁이 너무 많으니 말이다.

카페에 있는 멋진 의자도 상당수는 오리지널이 있는 것을 비슷하게 베껴 만든 것이다. 심지어 온라인 쇼핑몰에서 오리지널 의자 브랜드나 디자이너 이름까지 버젓이 올려놓고 진짜인 양 파는 것도 꽤 많다. 오리지널이 비싸긴 하다. 그렇다고 짝퉁을 사는 건 좀 그렇다. 가짜로 남을 속일 수는 있어도 본인 자신은 속이지 못한다. 짝퉁을 사는 건 절약이 아니라 오히려 부끄러운 낭비가 된다.

유명 디자이너의 의자 진품을 상대적으로 싸게 갖는 가장 좋은 방법은 플라스틱 체어를 선택하는 것이다. 내로라하는 디자이너가 만든 의자의 경우 가죽이나 나무가 많이 들어간 제품보다 플라스틱을 주로 써서 만든 제품이 훨씬 저렴하다. 필립 스탁, 론 아라드, 찰스 임스 등 유명 디자이너는 플라스틱 체어도 만드니, 소재를 조금 양보하면 진품을 가질 수 있다. 개인적으론 이걸 권한다. 일종의 타협인 셈이다.

유명 의자의 오리지널을 중고로 구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요즘은 낡은 게 멋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하는 세상이라 중고라고 다 싼 것은 아니다. 사람 흔적이 배어 있는 의자는 하나의 역사가 되기도 한다. 유럽의 누군가가 쓰던 의자를 한국의 누군가가 쓰고, 다시 그 의자가 대를 이어 내려가는 건 아주 흥미로운 의자의 여정 아닌가. 유럽 벼룩시장을 돌며 좋은 빈티지 의자를 구해 한국으로 배송하는 이들을 봤다. 물론 이건 안목 있는 이들만의 특권이다.

과거 낡은 것이라 여겨지던 것이 요새는 빈티지나 앤티크라는 이름을 달고 매력적으로 부활하면서, 좋은 빈티지를 싸게 구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진다. 수십 년 전 초등학교에서 썼을 법한, 길이 잘 든 나무의자를 벼룩시장에서 구하는 건 행운이 없으면 어려울 정도다. 그래서 새것을 낡은 것처럼 꾸며 파는 경우도 많다. 가짜 빈티지인 셈이다.

다양한 의자는 프로젝트의 산물

의자는 말한다, 우리 모습 담는 멋진 그릇이라고
기업에선 좋은 의자가 곧 복지가 되는 경우도 있다. 업무 환경 개선에서 의자만큼 직접적인 효과를 볼 수 있는 것도 드물다. 2005년 인터넷 포털사이트 업체 네이버가 사옥을 새로 짓고 전 직원에게 허먼 밀러의 ‘에어론 체어’를 제공한 게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당시 다른 정보기술(IT) 기업이나 유수 대기업 직원은 새로 지은 사옥보다 그 의자를 더 부러워했다고 한다. 당시로도 가격이 100만 원대 중반이었고, 현재는 200만 원에 이르는 고가 사무용 의자다.

미국에선 구글, 애플, JP모건 등을 비롯한 ‘포춘’ 선정 500대 기업 중 절반 정도가 허먼 밀러의 사무용 가구를 사용한다고 한다. 국내에서는 다수의 IT 기업과 디자인 회사, 일부 대기업에서 이를 사용한다. 기업 회장이나 사장 중에도 에어론 체어를 쓰는 이가 꽤 있다. 비싸서가 아니라 편해서다.

인체공학을 고려해 만든 사무실용 의자 에어론 체어는 디자이너와 인체공학자, 정형외과 전문의, 기계공학자, 혈관 전문가까지 참여한, 아주 특이한 프로젝트의 산물이다. 이 의자는 1990년대 중·후반 인터넷 기업의 성장과 더불어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지금까지도 연간 100만 개 정도가 팔릴 정도로 인기를 누리며 의자 역사계의 한 획을 그었다.

물론 이 의자에 앉는다고 일이 단숨에 잘될 리는 없다. 의자는 그냥 의자일 뿐이다. 다만 장시간 의자에 앉아 일해야 하는 이라면 자기를 위한 선물로 고려해볼 가치는 충분하다. 우리나라에는 듀오백 같은 기능성 의자도 많다. 중요한 건 자신에게 맞는 의자를 잘 고르는 것이다.

당신은 지금 어떤 의자에 앉아 있는가. 그 의자가 당신의 권위와 품격을 담아내고 있는가. 의자는 그냥 가구가 아니다. 우리 모습을 담는 그릇일 수 있다.



주간동아 2014.06.09 941호 (p70~71)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장 trendhitchhiki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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