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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국민연금 주주권 행사 확대 누구 몫?

주식시장의 ‘큰손’ 움직임 경제계 민감 반응…일본과 호주 사례 참고할 만

  • 송치훈 우리금융경영연구소 책임연구원 s.chihoon@woorifg.com

국민연금 주주권 행사 확대 누구 몫?

국민연금 주주권 행사 확대 누구 몫?

3월 27일 서울 강서구 아시아나항공 본사 OZ홀에서 제26기 정기 주주총회가 열리는 동안 관계자들이 문 밖에서 지키고 있다.

국민연금은 국내 주식 전체 시가총액의 6.4%에 해당하는 83.9조 원을 운용하는 ‘주식시장의 큰손’이다. 국내 최대 규모 기관투자자인 국민연금이 2009년 7%에 불과하던 반대의결권 행사 비중을 2013년에는 11%로 크게 확대하자 경제계가 민감하게 반응하고 나선 것도 무리가 아니다. 국민연금의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 움직임이 초미 관심사로 떠오른 것이다.

더욱이 일각에서는 국민연금이 의결권보다 더 능동적인 주주권이라 볼 수 있는 소수주주권도 적극 행사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우리나라 상법은 보유 지분율에 따라 임시총회소집청구권, 이사해임청구권, 주주제안권 등 다양한 소수주주권을 보장한다. 국민연금이 5% 이상 지분을 소유한 회사가 277개에 달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주주권 행사가 이처럼 확대될 경우 그 파급 효과는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기금운용위’가 최고 의사결정기구

원칙적으로 따지면 국민연금은 연금수혜자인 국민에 대해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 의무’를 이행해야 하므로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는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우려 목소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예컨대 공적 연기금의 특성상 정부가 국민연금을 통해 개별 기업 경영에 개입할 개연성도 있다는 것이다.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체계는 이러한 우려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국민연금의 최고 의사결정기구는 ‘기금운용위원회’다. 이 위원회는 표면적으로는 국민연금 가입자인 근로자와 지역가입자를 비롯해 기업인 대표 등이 참석해 다양한 사회계층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구조지만, 실질적으로는 위원장을 비롯한 정부 위원의 비중이 높다. 정부 간섭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구조라는 뜻이다



이 때문에 국회에는 독립성 제고를 위해 기금운용본부를 별도 공사로 독립시키는 등의 국민연금법 개정안이 발의된 상태다. 그러나 이러한 조직 구성 변화가 독립적인 의사결정을 얼마나 보장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설령 독립적 구조가 확립된다 해도 이를 통해 내려진 의사결정이 옳다고 확신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 여지를 피할 수 없다.

연기금의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와 관련해 자주 언급되는 사례가 미국 캘퍼스(CalPERS·캘리포니아 공무원연금)다. 캘퍼스는 지배구조에 문제가 있는 기업 목록을 매년 공표하고 반대의결권 등을 행사한다.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를 통해 주주 가치 증대를 위해 노력하는 대표적인 연기금에 해당한다. 캘퍼스가 투자하면 주가가 오른다는 뜻의 ‘캘퍼스 효과’라는 표현이 회자할 정도다.

이렇듯 캘퍼스는 분명 국민연금의 주주권 강화와 관련해 참고할 만한 사례지만, 두 연기금의 차이점도 짚어볼 필요가 있다. 먼저 캘퍼스는 캘리포니아 주 공무원을 대상으로 하는 제한된 범위의 연기금이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다양한 사회계층의 이익을 반영해야 하는 국민연금과는 태생적으로 차이가 있는 것이다. 더욱이 미국 주식시장에서 캘퍼스의 비중은 0.3%로 6.4%인 국민연금에 비해 훨씬 낮은 수준. 주식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큰 부담 없이 적극적으로 주주권 강화에 나설 수 있었다는 평가가 가능하다(표 참조).

그렇다면 국민연금보다 규모가 큰 다른 나라 연기금은 어떤 방식으로 주주권을 행사할까. 세계 최대 공적연기금인 일본 공적연금기금(GPIF)은 일본 주식시장에서의 비중이 5% 내외로 국민연금과 비슷한 수준인데, 이 연기금은 의결권을 직접 행사하지 않고 외부 자산운용사에 위임한다. 장기 이익 극대화를 위해 의결권 행사의 필요성에는 동의하면서도 기업경영에 대한 영향은 최소화해야 한다는 일본 정부의 원칙 때문에 선택한 일종의 우회로인 셈이다.

호주의 대표적 연기금인 슈퍼애뉴에이션(SuperAnnuation)의 사례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로 치면 국민연금과 퇴직연금을 합쳐놓은 형태인 이 연기금은 호주 주식시장 전체의 20% 이상을 보유한 절대적 ‘큰손’이다. 그러나 이 연기금 역시 의결권은 외부 펀드매니저에게 위임하고 있다. 보통 연기금은 복수의 외부 자산운용사를 선정하므로, 일본이나 호주의 경우 연기금 의결권이 분산돼 비통일적으로 행사된다. 정부가 각 기업을 한 방향으로 몰아가려고 주주권을 행사하기는 어려운 특징을 가진 셈이다.

현재 국민연금은 원칙적으로 모든 주식의 의결권을 직접 행사한다. 환경이나 사회적 요인, 지배구조 같은 비재무적 요소를 고려하는 이른바 ‘사회책임 투자형’으로 위탁 운용하는 6조4000억 원만 제외돼 있을 뿐이다. 보유 주식 중 90% 이상의 주주권을 직접 행사하는 구조이다 보니 견제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국민연금 주주권 행사 확대 누구 몫?
시장으로 상당 부분 이관하는 방식

이렇게 놓고 볼 때 국민연금이 각종 우려를 불식하면서도 합리적으로 주주권 행사를 강화하려면 일본과 호주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의결권 행사의 외부 위임을 확대하는 한편 위탁 자산운용사를 선정할 때 주주권 행사에 대한 평가 비중을 늘리는 것을 하나의 방안으로 검토해볼 만하다는 뜻이다. 자산운용사의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를 유도함으로써 국민연금이 보유한 주주권 행사 주체를 시장으로 상당 부분 이관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방식이 자리 잡는다면 정부의 부적절한 개입 가능성에 대한 외부 비판을 일정 부분 차단하면서도 반대의결권을 행사한 안건의 실제 부결 가능성을 오히려 높이는 전략적인 결과도 노려볼 수 있다. 국민연금은 2012년 주총 안건 2565개 중 17%에 해당하는 436개 안건에 반대의결권을 행사한 바 있지만, 실제로 안건이 부결된 것은 8건으로 0.3%에 불과했다. 국민연금은 선도적으로 주주권 강화에 나서는 반면, 국민연금을 제외한 일반 기관투자자는 0.48% 안건에만 반대의결권을 행사하는 등 주주권 행사에 여전히 소극적이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분명 주식시장의 ‘큰손’이다. 그러나 혼자 힘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오히려 가진 것을 나누고 다독이는 ‘큰형님’ 구실을 자임하며 시장 참여자 전반의 주주권 행사 역량을 개발하는 것이야말로 주주 가치를 실질적으로 제고하는 방안이 될 수 있다. 돌아가는 길이 때로는 가장 빠른 길이라는 진리다.



주간동아 940호 (p48~49)

송치훈 우리금융경영연구소 책임연구원 s.chihoon@woorif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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