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기 삶 의미 헤아려야
오리는 알을 깨고 나올 때 처음 본 존재를 제 어미로 안다. 동물학자 콘라트 로렌츠가 새끼오리에게 어미오리 대신 자기 모습을 가장 처음 보여줬더니 어미로 알고 졸졸 따라왔단다. 오리로서는 생존을 위해 ‘처음 본 존재=어미’라는 등식을 유전자에 심어 전달해왔을 뿐, 단 한 번도 제 눈을 의심하지 않았던 것이다. 로렌츠의 실험은 눈(겉)에 비치는 것을 진리로 삼는 관념의 위험성을 퉁겨준다.
사람 사이의 관계 방정식인 ‘의리’에도 새끼오리 수준이 있다. 고작 밥을 준 사람을 은인으로 알고 그 은혜를 갚는 것을 의리로 여기는 수준이다. 이를테면 ‘개는 주인을 위해 짖고, 선비는 알아주는 사람에게 목숨을 바친다’는 말이나, 주군을 위해 제 배를 갈라 충성심을 보이는 일본 사무라이의 짓이 그렇다. 충성 대상의 의, 불의는 따지지 않는다. 사람이 이런 짓을 오래 하다 보면 문득 남의 노예가 된 자신을 발견하리라.
그렇다면 사람다운 의리는 무엇인가. 말뜻 그대로 ‘의로운 길’을 걷는 것이다. 먼저 ‘의롭다’는 것은 ‘이롭다’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때로 이로운 것과 정반대 자리에 위치할 수도 있다. 우리는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 안중근을 의사(義士)라고 부른다. 의사라는 말 속에는 제 한 몸의 이로움을 넘어 ‘올바른 가치를 향해 몸을 바친 사람’이라는 뜻이 담겼다.
안중근은 고종 밀사로서 그 명령을 집행한 것이 아니다. 즉 그는 자기를 알아주는 권력자나 밥을 준 은인을 위해 몸을 바치지 않았다. 이 점은 그가 죽는 순간까지 ‘동양평화론’을 집필한 데서 엿볼 수 있다. 안중근은 그가 옳다고 믿은 대의(大義)를 위해 몸을 바친 것이지, 사사로운 분노를 풀기 위해서나 남의 은혜를 갚기 위해서 희생한 것이 아니다. 그를 의사라고 부르고, 또 그의 행동에 의거(義擧)라는 이름을 붙이는 까닭이다.
그렇다고 아무 총질이나 의거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의거와 테러의 차이는 무엇일까. 어떤 관념에 포로가 된 행동은 테러일 것이고, 자유로운 가치판단과 공공성을 지향하는 행동은 의거가 된다. 광신도의 행동이나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테러 역시 또 다른 형태의 새끼오리 짓이 되는 것이다.
이에 의리는 자기 생각과 행동을 성찰하는 과정을 요구한다. 실은 이게 ‘공부’의 본래 뜻이다. 공부란 고작 지식을 머리에 담는 것이 아니요, 자신을 돌이켜 생각은 바른지, 행동은 부끄럽지 않은지를 양심에 비춰 따지고 또 바로잡는 과정을 뜻한다. 윤동주 시인이 노래했듯,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기약함이 진짜 공부다. 자기 성찰을 통해 부끄럼이 없다는 확신이 들 때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의리의 길이다.
따라서 진짜 의리는 사람에게 충성은커녕 도리어 배신하는 것일 수 있다. 공무원을 감사하는 감사원이 스스로 공정성을 확보하지 못할 때 그 부당성을 고발하는 행동이 진짜 의리요, 기업이 사회 정의를 위반했을 때 그것을 고발하는 것이 올바른 의리요, 상명하복이라는 노예 도덕으로 사적 테러를 일삼는 군대 내부의 부당성을 고발하는 것이 참된 의리다. 즉 의리는 공공성을 의식하며 사는 삶, 좁히면 자기 삶의 의미를 헤아리며 사는 ‘살아 있는 삶’에서야 피어난다.
우리 공동체의 가치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헌법 제1조 문장 속에 압축돼 있다. 곧 민주성과 공화성에 부합하게 살아가려는 노력이 오늘날 의리를 구성한다. 그런 점에서 의리는 ‘의미(意味)를 따지며 사는 삶’, 즉 인문학적 삶을 그 속성으로 한다. 힘센 자에게 기대려는 의존심, 약한 자를 위한답시고 내미는 강자의 손길 속에는 의리가 아니라 노예의 독약이 들어 있다. 기대지 않으려는 자립정신과 나와 다르더라도 상대방 가치를 인정하는 다양성 속에서 참된 의리는 피어난다.
배병삼 영산대 교수·‘논어, 사람의 길을 열다’ 저자 baebs@ysu.ac.kr
# 우리가 함께하는 것
요즘 대학가는 봄맞이 축제 기간이다. 각 학과마다 ‘축제 나드으리(나들이)’ 갈 사람을 모으고, ‘으리(우리)학과 으리(의리)주점’에 오라고 떠들썩하게 홍보한다. 과제 스트레스를 잊고자 몇 달 전 만기 전역한 친구 5명과 술자리를 가졌다. 화두는 동기의 행정고시 합격 이야기. 부러움과 질투가 섞인 친구들의 대화에 한숨이 섞이기 시작했다.
“군대 갔다 와보니 합격해 있더라. 근데 원래 걔한테 고시공부 어떻게 하는지 내가 다 알려줬는데. 기분 그렇더라. 그앤 지금 꿈꾸는 것 같대. 나는 (그 친구보다) 학점도 더 좋은데….”
‘의리’를 찾아 주점에 왔지만 결국 경쟁 이야기였다. 행정고시에 합격한 동기는 안정적인 직장으로, 생계 걱정 없는 다른 세상으로 갔다는 느낌에 질투와 자괴감이 동시에 들었다. 무의식중에 ‘그보다 뒤처지는 것 같다’고 생각하니 불안했다.
돌아보면 입학 당시 대학은 신세계였다. 사투리를 구수하게 쓰는 사람을 처음 봤다.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상에서 친구관계를 맺으니 친구들이 새로 올리는 게시물을 모아서 보여주는 알림창이 바빠졌다. 방학 때마다 해외여행을 다닌 사진을 올리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어떤 친구는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해 휴학을 결정했다는 글을 올렸다. 고민 글도 제각각. 한 친구는 아버지 사업을 물려받을 생각에 걱정이라는 글을 써놓는데, 한편에서는 미래가 불투명하다며 돈을 쏟아 관성적으로 취업 준비를 한다는 고민을 올렸다.
천차만별이었다.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데는 많은 대화와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다. 하지만 교내 취업지원센터에 ‘면접역량강화캠프’는 있지만 ‘친구를 이해하는 캠프’ 같은 것은 없다. 전공 배정도 경쟁, 학점도 경쟁, 장학금도 경쟁이었다. 그렇게 닥친 일만 해결하다 보니 친구의 고민은 단지 나와 다른 고민이 아니라, 배부르거나 하찮은 것으로 느껴졌다. 어느 순간 나는 우위에 서고 싶었고 때로는 거만하게 평가했다. 그래야 이긴 것 같았고 안심이 됐다.
그러던 중 부끄러운 일이 생겼다. 5월 16일 교육봉사 차원에서 고려대와 자매결연을 한 경기 남양주시 판곡중 학생들을 만났다. 중학교 3학년 국어교과서 ‘언어의 특성’ 지문을 가르쳤다. 대학생이 왔다고 우러러보는 학생들의 얼굴에 한껏 거만한 표정으로 지문을 읽어주던 차였다.
나 : 우리가 주로 사용하는 언어는 음성언어예요. 밑줄 그어볼까요.
학생 : (언어)장애를 가진 친구는요? 음성 언어를 주로 사용하지 않잖아요.
할 말을 잃었다. 학생은 ‘우리만 사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 순간 얼굴에 뜨거운 물을 부은 것 같았고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문득 입버릇처럼 “뭘 그런 걸 갖고 그래”라고 말하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이 말은 “어떻게 그런 것까지 배려해”와 같은 뜻이었다. 무례한 말이었다. ‘이해하고 싶다’는 게 아니라 ‘무작정 고치라’는 말. 이렇게 ‘의리’가 없다니.
2011년 도서관에서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검색하면 항상 ‘대여 중’이라고 떴다. ‘사회학의 이해’ 과목을 강의하던 교수님은 청년들이 가진 정의에 대한 갈증을 반영한 것이라 설명했다. 3년 5개월이 지난 지금 의리 열풍은 마치 이런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우리가 함께하는 것’에 대한 갈증이 말끝마다 ‘의리’를 외치는 목소리에 투영된 게 아닐까. 의리의 사전적 의미가 유난히 깊게 다가왔다.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 지켜야 할 바른 도리.’
윤솔 고려대 사회학과 3학년 zzyori0206@gmail.com
# 쿨하게 사과하는 모습
사람의 진면목이 드러나는 장면은 두 가지다. 첫째는 일이 잘 돌아갈 때가 아닌, 잘 안 돌아갈 때이고, 둘째는 강자가 아닌 약자를 대할 때다. 실수와 잘못 앞에서 잘 보일 필요가 있는 사람이 아닌 아랫사람을 대할 때 ‘의리’는 비로소 모습을 드러난다. 이때 ‘쿨(cool)하게’ 사과하는 것이 의리 있는 모습이다.
요즘 한국 사회에서는 ‘사과 같지 않은 사과’가 논란이 되고 있다. 사과는 ‘쿨’ 커뮤니케이션이어야 한다. 자기 잘못이나 약점 앞에서 피하지 않고, 그것을 인정하며 정면 돌파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쿨한 사과는 어떻게 해야 할까.
1. “미안합니다” “유감입니다” 말고 “제가 잘못했습니다”라고 해야 한다. “아이 엠 소리(I am sorry)”가 아닌 “아이 워스 롱(I was wrong)”이 진정한 사과다. 변호사로 일하다 철학교수로 변신해 사과에 대해 연구하는 미국 뉴햄프셔대 닉 스미스 교수가 쓴 책 제목이 ‘아이 워스 롱’인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핵심은 ‘메아쿨파(Mea Culpa·라틴어로 ‘나의 죄’라는 뜻)’, 즉 ‘내 탓이오’다.
2. “미안해”보다 “약속시간을 지키지 못해 미안해”가 더 나은 사과다. 사과는 자신의 잘못을 공개할 수 있는 용기이기 때문이다.
3. 사과는 행동이다. 스마트폰을 빌려 쓰다 떨어뜨려 액정을 깨놓고는 “미안해” “내가 잘못했다” 해봐야 용서받을 수 없다. 어떻게 보상할 것인지 구체적 행동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용서가 될 수 있다. 사과는 액션이다.
4. 사과에는 조건을 달면 안 된다. “기분 나빴다면 미안해”라는 말은 사과가 아니다. 이 말이 뜻하는 바는 “당신이 그렇게까지 기분 나빠할 것은 없는데, 정 그렇다면 내가 사과할게”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의리 있는 사과에는 조건이 없다.
5. 사과에는 ‘하지만’이란 말도 없다. “미안해. 하지만 너도 잘못했잖아”가 과연 사과일까. 아니다. ‘하지만’이란 말이 붙는 순간 사과는 갈등 ‘조정’에서 갈등 ‘조장’ 도구로 바뀐다. 사과란 자기 잘못에만 집중하는 것이다. 많은 경우, 특히 ‘의리 있는’ 상대방이라면 나의 사과에 화답해 “나도 잘한 건 없지, 뭐”라고 툴툴 털기 마련이다.
6. 사과는 수동태가 아니다. 미국 정치인이 가끔씩 쓰는 “Mistakes were made(실수가 있었다)”라는 표현은 외교가에서나 쓸 일이다. “저희 팀에 잘못이 있었네요” 대신 “팀장인 제가 잘못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쿨한 사과다.
7. 소통이 그렇듯 사과도 듣기가 중요하다. 피해자에게 분노를 쏟아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줘야 한다. 피해를 입은 사람이 분노도 표현하지 못한 채 사과받았을 때, 그 사과는 역효과를 내기 마련이다. 잘못을 저질렀다면 피해자의 분노를 먼저 들어야 한다.
8. 사과는 ‘사과문’이 아니다. 대표이사는 ‘임직원 일동’이란 말 뒤에 숨고, 오너는 대표이사 뒤에 숨은 채 신문에 광고하는 사과문은 사과가 아니라 광고일 뿐이다.
9. ‘사과 이전’이 사과보다 더 중요하다. 대통령의 사과가 제대로 된 것일까, 아닐까. 사과가 있을 때마다 여러 말이 나온다. 사과 효과의 ‘평가공식’이란 것을 만든다면, 절반의 비중은 사과 이전과 이후 행동에 둬야 할 것이다. 사과가 효과를 발휘하려면 사과 주체가 ‘코너’에 몰리기 전 해야 한다. “사과하라”는 주변 압력에 못 이겨 어쩔 수 없이 하는 사과는 사과하기 전부터 이미 효과가 반은 깎이는 셈이다.
10. 사과는 말보다 태도다. ‘쿨’하지 않은 사과는 사과가 아니다. 의리는 ‘쿨’하다.
김호 커뮤니케이션 전문가·‘THE LAB h’ 대표 hoh.kim@thelabh.com
# 비애감 짙은 메시지
새삼스럽게 의리가 각광받는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요즘 회자되는 의리는 ‘의리는 산 같고 죽음은 홍모 같다’는 식의 구닥다리 의리와는 조금 다른, 희극적 요소가 가미된 ‘으리’다. ‘항아으리’처럼 아무 데나 ‘으리’를 갖다 붙여 갖가지 패러디 시리즈가 넘쳐날 정도다.
‘으리’의 분위기는 다분히 해학적이지만 그 내밀한 곳에 깔린 메시지에는 비애감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이런 현상의 대두는 아마도 ‘사람이 살아가는 데 마땅히 지켜야 할 바른 도리’라는 사전적 의미의 의리를 잘 지키지 못하는 작금의 사회 풍토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온 국민을 슬픔에 잠기게 한 세월호 사고도 의리를 모르는 인간들이 촉발한 인재였다. 그 구조와 수습 과정에서도 의리를 모르는 관리와 위정자의 행태는 나라를 송두리째 더 큰 슬픔의 바다로 밀어 넣었다.
의리의 역사는 길다. 의리는 남송의 주자가 집대성한 성리학에서 도의를 규명하는 학문으로 내세운 것에서 비롯됐다. 그래서 성리학을 의리를 밝히는 학문이라는 의미에서 의리학이라 부르기도 했는데 그 뿌리는 공맹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의리라는 용어 자체는 공자가 편찬했다고 전해지는 ‘예기’의 ‘충신은 예의 근본이고 의리는 예의 문식이다’라는 구절에 등장한다. 그 후 맹자는 의를 중요시하는 중의경리사상(重義輕利思想)을 주장했고 ‘인은 사람의 마음이고, 의는 사람의 길’이라는 말을 남겼다.
성리학은 고려 말 우리나라에 들어와 정몽주, 정도전, 길재 등을 거치고 이이, 이황에 이르러 조선성리학으로 체계화됐다. 성리학은 조선 통치이념이 되는데, 새 왕조 개창 과정에서 이색의 문하생이던 정몽주와 정도전은 서로의 목에 칼을 겨누게 된다. 정도전 일파는 맹자의 민중군경설(民重君輕說)에 입각한 상황적 의를 근거로 역성혁명의 정당성을 제기한 반면, 정몽주 측은 원리적 의에 기반을 둔 군신강상론(君臣綱常論)을 주장하며 혁명에 반대했다. 결국 혁명이나 반대의 명분도 기본적으로는 의리였던 셈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혁명을 주도하고 성공한 정도전은 동지였던 이방원에게 살해당하고 조선시대 내내 역적으로 몰린 반면, 혁명 과정에서 참살당한 정몽주는 오늘날까지도 충절의 표상으로 남아 있다는 점이다. 그런 영향 때문인지 조선시대는 줄곧 왕과 신하의 규범을 강조하는 강상에 의리의 정당성을 부여했고, 정몽주의 맥을 잇는 사림파의 의리 사상은 시대 가치로 남게 된다.
이러한 전통은 조선시대 후기로까지 이어져 ‘일성록’에는 주자를 계승해 송자로까지 불린 송시열에 대해 정조가 “강상을 부지하고 천 년토록 변치 않을 의리를 실천해 우리 동방으로 하여금 지금까지 이적이나 금수 같은 지경에 들어가지 않게 하였다”고 칭송하는 대목이 기록돼 있을 정도다.
이러한 역사를 가진 의리가 지금처럼 암울한 시기에 다시 관심을 끄는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라 여겨지는데, 이는 곧 국민의 의리에 대한 갈구를 반영한 것은 아닐까. 의리 열풍을 일으킨 주인공은 실제로도 의리를 지키는 인물인 모양이다. 대출받은 1000만 원을 세월호 희생자 유족에게 기부하면서 돈이 적어 미안하다고 한 걸 보면 어려운 이웃을 배려할 줄 아는 의리의 사나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말처럼 대한민국이 의리공화국이 됐으면 좋겠다.
예종석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아름다운재단 이사장 yepok@daum.net
오리는 알을 깨고 나올 때 처음 본 존재를 제 어미로 안다. 동물학자 콘라트 로렌츠가 새끼오리에게 어미오리 대신 자기 모습을 가장 처음 보여줬더니 어미로 알고 졸졸 따라왔단다. 오리로서는 생존을 위해 ‘처음 본 존재=어미’라는 등식을 유전자에 심어 전달해왔을 뿐, 단 한 번도 제 눈을 의심하지 않았던 것이다. 로렌츠의 실험은 눈(겉)에 비치는 것을 진리로 삼는 관념의 위험성을 퉁겨준다.
사람 사이의 관계 방정식인 ‘의리’에도 새끼오리 수준이 있다. 고작 밥을 준 사람을 은인으로 알고 그 은혜를 갚는 것을 의리로 여기는 수준이다. 이를테면 ‘개는 주인을 위해 짖고, 선비는 알아주는 사람에게 목숨을 바친다’는 말이나, 주군을 위해 제 배를 갈라 충성심을 보이는 일본 사무라이의 짓이 그렇다. 충성 대상의 의, 불의는 따지지 않는다. 사람이 이런 짓을 오래 하다 보면 문득 남의 노예가 된 자신을 발견하리라.
그렇다면 사람다운 의리는 무엇인가. 말뜻 그대로 ‘의로운 길’을 걷는 것이다. 먼저 ‘의롭다’는 것은 ‘이롭다’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때로 이로운 것과 정반대 자리에 위치할 수도 있다. 우리는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 안중근을 의사(義士)라고 부른다. 의사라는 말 속에는 제 한 몸의 이로움을 넘어 ‘올바른 가치를 향해 몸을 바친 사람’이라는 뜻이 담겼다.
안중근은 고종 밀사로서 그 명령을 집행한 것이 아니다. 즉 그는 자기를 알아주는 권력자나 밥을 준 은인을 위해 몸을 바치지 않았다. 이 점은 그가 죽는 순간까지 ‘동양평화론’을 집필한 데서 엿볼 수 있다. 안중근은 그가 옳다고 믿은 대의(大義)를 위해 몸을 바친 것이지, 사사로운 분노를 풀기 위해서나 남의 은혜를 갚기 위해서 희생한 것이 아니다. 그를 의사라고 부르고, 또 그의 행동에 의거(義擧)라는 이름을 붙이는 까닭이다.
그렇다고 아무 총질이나 의거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의거와 테러의 차이는 무엇일까. 어떤 관념에 포로가 된 행동은 테러일 것이고, 자유로운 가치판단과 공공성을 지향하는 행동은 의거가 된다. 광신도의 행동이나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테러 역시 또 다른 형태의 새끼오리 짓이 되는 것이다.
이에 의리는 자기 생각과 행동을 성찰하는 과정을 요구한다. 실은 이게 ‘공부’의 본래 뜻이다. 공부란 고작 지식을 머리에 담는 것이 아니요, 자신을 돌이켜 생각은 바른지, 행동은 부끄럽지 않은지를 양심에 비춰 따지고 또 바로잡는 과정을 뜻한다. 윤동주 시인이 노래했듯,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기약함이 진짜 공부다. 자기 성찰을 통해 부끄럼이 없다는 확신이 들 때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의리의 길이다.
따라서 진짜 의리는 사람에게 충성은커녕 도리어 배신하는 것일 수 있다. 공무원을 감사하는 감사원이 스스로 공정성을 확보하지 못할 때 그 부당성을 고발하는 행동이 진짜 의리요, 기업이 사회 정의를 위반했을 때 그것을 고발하는 것이 올바른 의리요, 상명하복이라는 노예 도덕으로 사적 테러를 일삼는 군대 내부의 부당성을 고발하는 것이 참된 의리다. 즉 의리는 공공성을 의식하며 사는 삶, 좁히면 자기 삶의 의미를 헤아리며 사는 ‘살아 있는 삶’에서야 피어난다.
우리 공동체의 가치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헌법 제1조 문장 속에 압축돼 있다. 곧 민주성과 공화성에 부합하게 살아가려는 노력이 오늘날 의리를 구성한다. 그런 점에서 의리는 ‘의미(意味)를 따지며 사는 삶’, 즉 인문학적 삶을 그 속성으로 한다. 힘센 자에게 기대려는 의존심, 약한 자를 위한답시고 내미는 강자의 손길 속에는 의리가 아니라 노예의 독약이 들어 있다. 기대지 않으려는 자립정신과 나와 다르더라도 상대방 가치를 인정하는 다양성 속에서 참된 의리는 피어난다.
배병삼 영산대 교수·‘논어, 사람의 길을 열다’ 저자 baebs@ysu.ac.kr
# 우리가 함께하는 것
요즘 대학가는 봄맞이 축제 기간이다. 각 학과마다 ‘축제 나드으리(나들이)’ 갈 사람을 모으고, ‘으리(우리)학과 으리(의리)주점’에 오라고 떠들썩하게 홍보한다. 과제 스트레스를 잊고자 몇 달 전 만기 전역한 친구 5명과 술자리를 가졌다. 화두는 동기의 행정고시 합격 이야기. 부러움과 질투가 섞인 친구들의 대화에 한숨이 섞이기 시작했다.
“군대 갔다 와보니 합격해 있더라. 근데 원래 걔한테 고시공부 어떻게 하는지 내가 다 알려줬는데. 기분 그렇더라. 그앤 지금 꿈꾸는 것 같대. 나는 (그 친구보다) 학점도 더 좋은데….”
‘의리’를 찾아 주점에 왔지만 결국 경쟁 이야기였다. 행정고시에 합격한 동기는 안정적인 직장으로, 생계 걱정 없는 다른 세상으로 갔다는 느낌에 질투와 자괴감이 동시에 들었다. 무의식중에 ‘그보다 뒤처지는 것 같다’고 생각하니 불안했다.
돌아보면 입학 당시 대학은 신세계였다. 사투리를 구수하게 쓰는 사람을 처음 봤다.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상에서 친구관계를 맺으니 친구들이 새로 올리는 게시물을 모아서 보여주는 알림창이 바빠졌다. 방학 때마다 해외여행을 다닌 사진을 올리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어떤 친구는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해 휴학을 결정했다는 글을 올렸다. 고민 글도 제각각. 한 친구는 아버지 사업을 물려받을 생각에 걱정이라는 글을 써놓는데, 한편에서는 미래가 불투명하다며 돈을 쏟아 관성적으로 취업 준비를 한다는 고민을 올렸다.
천차만별이었다.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데는 많은 대화와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다. 하지만 교내 취업지원센터에 ‘면접역량강화캠프’는 있지만 ‘친구를 이해하는 캠프’ 같은 것은 없다. 전공 배정도 경쟁, 학점도 경쟁, 장학금도 경쟁이었다. 그렇게 닥친 일만 해결하다 보니 친구의 고민은 단지 나와 다른 고민이 아니라, 배부르거나 하찮은 것으로 느껴졌다. 어느 순간 나는 우위에 서고 싶었고 때로는 거만하게 평가했다. 그래야 이긴 것 같았고 안심이 됐다.
그러던 중 부끄러운 일이 생겼다. 5월 16일 교육봉사 차원에서 고려대와 자매결연을 한 경기 남양주시 판곡중 학생들을 만났다. 중학교 3학년 국어교과서 ‘언어의 특성’ 지문을 가르쳤다. 대학생이 왔다고 우러러보는 학생들의 얼굴에 한껏 거만한 표정으로 지문을 읽어주던 차였다.
나 : 우리가 주로 사용하는 언어는 음성언어예요. 밑줄 그어볼까요.
학생 : (언어)장애를 가진 친구는요? 음성 언어를 주로 사용하지 않잖아요.
할 말을 잃었다. 학생은 ‘우리만 사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 순간 얼굴에 뜨거운 물을 부은 것 같았고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문득 입버릇처럼 “뭘 그런 걸 갖고 그래”라고 말하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이 말은 “어떻게 그런 것까지 배려해”와 같은 뜻이었다. 무례한 말이었다. ‘이해하고 싶다’는 게 아니라 ‘무작정 고치라’는 말. 이렇게 ‘의리’가 없다니.
2011년 도서관에서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검색하면 항상 ‘대여 중’이라고 떴다. ‘사회학의 이해’ 과목을 강의하던 교수님은 청년들이 가진 정의에 대한 갈증을 반영한 것이라 설명했다. 3년 5개월이 지난 지금 의리 열풍은 마치 이런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우리가 함께하는 것’에 대한 갈증이 말끝마다 ‘의리’를 외치는 목소리에 투영된 게 아닐까. 의리의 사전적 의미가 유난히 깊게 다가왔다.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 지켜야 할 바른 도리.’
윤솔 고려대 사회학과 3학년 zzyori0206@gmail.com
# 쿨하게 사과하는 모습
사람의 진면목이 드러나는 장면은 두 가지다. 첫째는 일이 잘 돌아갈 때가 아닌, 잘 안 돌아갈 때이고, 둘째는 강자가 아닌 약자를 대할 때다. 실수와 잘못 앞에서 잘 보일 필요가 있는 사람이 아닌 아랫사람을 대할 때 ‘의리’는 비로소 모습을 드러난다. 이때 ‘쿨(cool)하게’ 사과하는 것이 의리 있는 모습이다.
요즘 한국 사회에서는 ‘사과 같지 않은 사과’가 논란이 되고 있다. 사과는 ‘쿨’ 커뮤니케이션이어야 한다. 자기 잘못이나 약점 앞에서 피하지 않고, 그것을 인정하며 정면 돌파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쿨한 사과는 어떻게 해야 할까.
1. “미안합니다” “유감입니다” 말고 “제가 잘못했습니다”라고 해야 한다. “아이 엠 소리(I am sorry)”가 아닌 “아이 워스 롱(I was wrong)”이 진정한 사과다. 변호사로 일하다 철학교수로 변신해 사과에 대해 연구하는 미국 뉴햄프셔대 닉 스미스 교수가 쓴 책 제목이 ‘아이 워스 롱’인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핵심은 ‘메아쿨파(Mea Culpa·라틴어로 ‘나의 죄’라는 뜻)’, 즉 ‘내 탓이오’다.
2. “미안해”보다 “약속시간을 지키지 못해 미안해”가 더 나은 사과다. 사과는 자신의 잘못을 공개할 수 있는 용기이기 때문이다.
3. 사과는 행동이다. 스마트폰을 빌려 쓰다 떨어뜨려 액정을 깨놓고는 “미안해” “내가 잘못했다” 해봐야 용서받을 수 없다. 어떻게 보상할 것인지 구체적 행동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용서가 될 수 있다. 사과는 액션이다.
4. 사과에는 조건을 달면 안 된다. “기분 나빴다면 미안해”라는 말은 사과가 아니다. 이 말이 뜻하는 바는 “당신이 그렇게까지 기분 나빠할 것은 없는데, 정 그렇다면 내가 사과할게”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의리 있는 사과에는 조건이 없다.
5. 사과에는 ‘하지만’이란 말도 없다. “미안해. 하지만 너도 잘못했잖아”가 과연 사과일까. 아니다. ‘하지만’이란 말이 붙는 순간 사과는 갈등 ‘조정’에서 갈등 ‘조장’ 도구로 바뀐다. 사과란 자기 잘못에만 집중하는 것이다. 많은 경우, 특히 ‘의리 있는’ 상대방이라면 나의 사과에 화답해 “나도 잘한 건 없지, 뭐”라고 툴툴 털기 마련이다.
6. 사과는 수동태가 아니다. 미국 정치인이 가끔씩 쓰는 “Mistakes were made(실수가 있었다)”라는 표현은 외교가에서나 쓸 일이다. “저희 팀에 잘못이 있었네요” 대신 “팀장인 제가 잘못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쿨한 사과다.
7. 소통이 그렇듯 사과도 듣기가 중요하다. 피해자에게 분노를 쏟아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줘야 한다. 피해를 입은 사람이 분노도 표현하지 못한 채 사과받았을 때, 그 사과는 역효과를 내기 마련이다. 잘못을 저질렀다면 피해자의 분노를 먼저 들어야 한다.
8. 사과는 ‘사과문’이 아니다. 대표이사는 ‘임직원 일동’이란 말 뒤에 숨고, 오너는 대표이사 뒤에 숨은 채 신문에 광고하는 사과문은 사과가 아니라 광고일 뿐이다.
9. ‘사과 이전’이 사과보다 더 중요하다. 대통령의 사과가 제대로 된 것일까, 아닐까. 사과가 있을 때마다 여러 말이 나온다. 사과 효과의 ‘평가공식’이란 것을 만든다면, 절반의 비중은 사과 이전과 이후 행동에 둬야 할 것이다. 사과가 효과를 발휘하려면 사과 주체가 ‘코너’에 몰리기 전 해야 한다. “사과하라”는 주변 압력에 못 이겨 어쩔 수 없이 하는 사과는 사과하기 전부터 이미 효과가 반은 깎이는 셈이다.
10. 사과는 말보다 태도다. ‘쿨’하지 않은 사과는 사과가 아니다. 의리는 ‘쿨’하다.
김호 커뮤니케이션 전문가·‘THE LAB h’ 대표 hoh.kim@thelabh.com
# 비애감 짙은 메시지
새삼스럽게 의리가 각광받는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요즘 회자되는 의리는 ‘의리는 산 같고 죽음은 홍모 같다’는 식의 구닥다리 의리와는 조금 다른, 희극적 요소가 가미된 ‘으리’다. ‘항아으리’처럼 아무 데나 ‘으리’를 갖다 붙여 갖가지 패러디 시리즈가 넘쳐날 정도다.
‘으리’의 분위기는 다분히 해학적이지만 그 내밀한 곳에 깔린 메시지에는 비애감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이런 현상의 대두는 아마도 ‘사람이 살아가는 데 마땅히 지켜야 할 바른 도리’라는 사전적 의미의 의리를 잘 지키지 못하는 작금의 사회 풍토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온 국민을 슬픔에 잠기게 한 세월호 사고도 의리를 모르는 인간들이 촉발한 인재였다. 그 구조와 수습 과정에서도 의리를 모르는 관리와 위정자의 행태는 나라를 송두리째 더 큰 슬픔의 바다로 밀어 넣었다.
의리의 역사는 길다. 의리는 남송의 주자가 집대성한 성리학에서 도의를 규명하는 학문으로 내세운 것에서 비롯됐다. 그래서 성리학을 의리를 밝히는 학문이라는 의미에서 의리학이라 부르기도 했는데 그 뿌리는 공맹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의리라는 용어 자체는 공자가 편찬했다고 전해지는 ‘예기’의 ‘충신은 예의 근본이고 의리는 예의 문식이다’라는 구절에 등장한다. 그 후 맹자는 의를 중요시하는 중의경리사상(重義輕利思想)을 주장했고 ‘인은 사람의 마음이고, 의는 사람의 길’이라는 말을 남겼다.
성리학은 고려 말 우리나라에 들어와 정몽주, 정도전, 길재 등을 거치고 이이, 이황에 이르러 조선성리학으로 체계화됐다. 성리학은 조선 통치이념이 되는데, 새 왕조 개창 과정에서 이색의 문하생이던 정몽주와 정도전은 서로의 목에 칼을 겨누게 된다. 정도전 일파는 맹자의 민중군경설(民重君輕說)에 입각한 상황적 의를 근거로 역성혁명의 정당성을 제기한 반면, 정몽주 측은 원리적 의에 기반을 둔 군신강상론(君臣綱常論)을 주장하며 혁명에 반대했다. 결국 혁명이나 반대의 명분도 기본적으로는 의리였던 셈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혁명을 주도하고 성공한 정도전은 동지였던 이방원에게 살해당하고 조선시대 내내 역적으로 몰린 반면, 혁명 과정에서 참살당한 정몽주는 오늘날까지도 충절의 표상으로 남아 있다는 점이다. 그런 영향 때문인지 조선시대는 줄곧 왕과 신하의 규범을 강조하는 강상에 의리의 정당성을 부여했고, 정몽주의 맥을 잇는 사림파의 의리 사상은 시대 가치로 남게 된다.
이러한 전통은 조선시대 후기로까지 이어져 ‘일성록’에는 주자를 계승해 송자로까지 불린 송시열에 대해 정조가 “강상을 부지하고 천 년토록 변치 않을 의리를 실천해 우리 동방으로 하여금 지금까지 이적이나 금수 같은 지경에 들어가지 않게 하였다”고 칭송하는 대목이 기록돼 있을 정도다.
이러한 역사를 가진 의리가 지금처럼 암울한 시기에 다시 관심을 끄는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라 여겨지는데, 이는 곧 국민의 의리에 대한 갈구를 반영한 것은 아닐까. 의리 열풍을 일으킨 주인공은 실제로도 의리를 지키는 인물인 모양이다. 대출받은 1000만 원을 세월호 희생자 유족에게 기부하면서 돈이 적어 미안하다고 한 걸 보면 어려운 이웃을 배려할 줄 아는 의리의 사나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말처럼 대한민국이 의리공화국이 됐으면 좋겠다.
예종석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아름다운재단 이사장 yepok@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