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38

2014.05.19

“핵과 경제 병진 불가능한 목표”

김정은 체제, 재원 확보 문제 해결 없이는 사실상 헛구호에 불과

  • 루디거 프랭크 비엔나대 동아시아 경제사회학 석좌교수 번역·강찬구 동아시아재단 간사 ckkang@keaf.org

    입력2014-05-19 11: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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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은 체제가 핵·경제 병진노선을 공식화한 지 1년여가 지난 지금, 박근혜 대통령의 드레스덴 선언과 북측의 거부를 통해 이 문제가 남북관계 키워드로 떠올랐다. 핵 무력과 경제발전을 한 손에 쥐겠다는 젊은 지도자의 욕망은 과연 실현 가능한 목표인가. 북한을 여러 차례 방북한 바 있는 유럽의 북한 전문가가 영문계간지 ‘글로벌아시아’ 2014년 봄호를 통해 해부했다.

    2013년 3월 31일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 연설에서 김정은 제1비서는 경제발전과 핵무기 개발을 동시에 추진한다는 이른바 병진전략을 발표했다. 궁금한 점은 두 가지 질문으로 요약할 수 있다. 과연 병진노선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실현가능성이 있는가 여부다.

    이날 연설은 북한 체제가 사상 최초로 주요 정책목표를 동시에 추진하겠다고 공식 발표한 사례였다. 통상 중요 정책 발표가 있을 때 활용되는 신년사설과 당 연례회의 연설에서 나온 기존의 발표 공식은 “올해에는 A 부문 발전을 최우선과제로 둘 것”이라고 발표한 뒤 이어지는 문장에 “B 부문도 최우선과제로 추진할 것”이라고 덧붙인 다음, 곧이어 “C 부문도 최우선적으로 다룰 것”이라는 말과 함께 끝맺는 식이었다.

    병진노선은 달랐다. 말 그대로 동시에 제시된 목표다. 기억해둘 것은 북한 지도부가 지난 십수 년간 ‘선군’을 국가 최우선정책으로 내세웠다는 점이다. 김정은의 병진노선 발표는 분명 선군정치와의 공식적 결별로 읽히는 측면이 있다. 북한 관영언론들은 어떤 식으로든 두 노선의 상충을 무마하려 시도했지만 ‘선군’과 ‘병진’은 엄연히 함의가 다르다. 이는 심지어 북한 내에서도 마찬가지다.

    병진노선의 발표 시점을 잠시 되돌아보자. 당시는 괌 미군기지에 대한 핵공격 위협 등 북한의 대미(對美), 대남(對南) 위협이 정점으로 치닫는 상황이었다. 이 민감한 시점에 자칫 ‘선군의 종식’으로 해석할 수 있는 노선을 제시한다는 것 자체는 김정은으로서도 의미심장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핵 보유국으로서의 위상을 재확인하고 독자적인 이념 발자취를 남기겠다는 의지의 산물이었지만, 그와 동시에 선대에 대한 효심을 자랑해온 새 집권자가 아버지 시대의 집권이념을 뒤집는 일은 결코 만만치 않은 선택이었을 것이다.



    위락시설 등 지출 오히려 증가

    군사력과 경제를 동일한 수준으로 다루는 것은 김정은이 2011년 12월 새 지도자로서 언급한 정치노선과 맥락을 같이한다. 권력승계 정당성의 근거로 인민의 행복하고 배부른 삶을 내세운 그는 이 약속을 지키려고 이념적 기반을 조정할 수밖에 없었고, 그 결론이 바로 병진노선이었던 셈이다. 국가 최우선과제를 군사문제에서 경제로 바꾸는 직접적인 방법 대신 경제를 한 단계 격상하고 이로써 사실상 군사문제를 한 단계 격하하는 우회로를 택한 셈이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의문점이 있다. 과연 병진노선은 성공할 수 있을까. 어떤 정치적 노선도 이를 실현할 재원 확보 문제를 피해갈 수는 없다. 정치적 실현가능성과 경제적 실현가능성을 모두 따져봐야 한다는 뜻이다. 정치적으로는 당이 모든 주도권을 갖는 체제 특성상 군부 반발이나 압력을 피해가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오히려 문제는 경제 측면이다.

    북한 같은 빈곤국의 경우 전체 세입이 급격히 증가하지 않는 한 한 분야에 지출이 늘면 다른 분야 지출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러한 지출 감소 추세는 어디에서도 눈에 띄지 않으며, 오히려 증가했다. 2012년 가을 북한은 의무교육 연수를 한 해 늘렸다. 문수물놀이장, 능라도 돌고래쇼장, 마식령 스키장에 이르기까지 위락시설 확충 사업에도 막대한 비용을 투입했다. 결과적으로 이들 사업은 가뜩이나 극심한 부족에 시달리는 북한의 경화 보유고에 큰 부담을 안겼다.

    “핵과 경제 병진 불가능한 목표”

    함경남도 원산 인근 마식령 스키장 건설 현장을 찾은 김정은 조선노동당 제1비서. ‘노동신문’이 2013년 12월 15일 보도한 사진이다(왼쪽). 김일성 생일인 4월 15일 평양에서 진행된 불꽃놀이 행사를 보도한 이튿날 ‘노동신문’.

    이뿐이 아니다. 평양 만수대의 김일성 동상과 김정일 동상 리모델링 작업, 조국해방전쟁 승리기념관 개조, 혁명열사릉 개선 공사, 김일성화·김정일화 온실 건축 등 크고 작은 사업이 줄줄이 이어졌다. 김정일 이름을 추가한 구호를 화강암에 새기는 작업에 들어가는 비용도 막대하다. 거주시설 확충 사업도 늘어났다. 만수대 아파트와 김일성대 직원들을 위한 고층빌딩 2채가 새로 건설됐다. 이는 빙산의 일각일 뿐, 북한 전역에서 건축 붐이 일고 있다고 최근 방북한 인사들은 전한다. 이들 모두 이념적으로는 긴요했을지 몰라도 경제적으로는 실패한 투자였다.

    국가가 통제권을 가진 북한 경제의 특성상 이 같은 건설사업 투자를 통해 수익을 바라기는 어렵다. 사실상 일방통행식의 무작정 지출로 끝난다. 예컨대 아파트 사업의 경우, 탈북자나 내부 소식통들은 이와 관련해 평양에 거대한 회색시장이 형성되고 있다고 전한다. 당의 혜택을 받아 아파트에 입주한 사람들이 이내 돈을 가진 이들에게 아파트를 양도하는 일이 반복된다는 이야기다. 북한에는 거래세나 부가세 제도가 없으므로 이러한 아파트 임대 혹은 판매는 국가에 아무런 이득을 주지 못한다. 국가 재정에는 건설비 부담만 고스란히 남는 것이다.

    국제 제재로 곳간 바닥 드러낼 듯

    자금은 없는데 씀씀이는 증가한 상태에서 국가 재정 수지를 맞추려면 당연히 세수를 늘려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생산성이 높아지거나 해외 무역규모가 증가해야 하지만, 2012년 이른바 6·28조치 등 새로운 경제정책에 관한 소문만 무성할 뿐 경제난을 타개할 결정적 변화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무역 부문에서 이 모든 사업을 충당할 자금을 마련한다는 것도 기대난망이다. 전 세계 대부분 국가로부터 쏟아지는 극심한 경제제재를 뚫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이 유일한 예외이긴 하지만 이 역시 철저하게 실용주의적 차원을 벗어나지 않는다. 북한의 전체 교역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율은 80% 이상이다. 북·중 교역 규모는 2013년 64억5000만 달러에 달했고, 북한의 무역수지 적자 규모도 25%가량 감소했다. 얼핏 나쁘지 않은 성적표다. 그러나 이것으로는 충분치 않아 보인다는 사실도 분명하다. 인민의 환심을 사기 위한 대형 건설 사업에 들어가는 자금을 대중 교역에서 벌어들인 돈으로 감당하기는 어려워 보인다는 뜻이다.

    추측하자면 현재 북한은 이내 바닥을 드러낼 곳간에 의지해 연명하는 신세다. 물론 국제사회 제재를 우회하는 어둠의 경로로 별도의 수입을 만들어내고 있을 개연성을 배제할 순 없겠지만, 재정상 경제적으로나 전략적으로나 병진정책을 꾸준히 뒷받침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선대가 축적해놓은 자금에 기대는 데는 분명히 한계가 있고,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심화되는 것도 평양이 감내할 수 있는 선택은 아니다. 김정은 본인이 의욕적으로 꺼내놓은 어젠다를 밀어붙일 방법이 마땅치 않은 것이다.

    북한이 최근 일본과의 국교 정상화나 경제 교류 논의에 눈을 돌린 데는 이러한 배경이 깔려 있다. 일본은 2002년까지 북한의 주요 교역 상대였다. 물론 김정은 체제가 장기적으로 혹은 안정적으로 국가 재정 수입을 확보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바로 경제개혁이다. 평양 지도부도 이러한 결론을 피해갈 수는 없을 것이다. 그 결론을 정책으로 만들어 실천하는 작업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게 될지 아무도 가늠할 수 없을 뿐이다.

    ※영어원문은 www.globalasia.org/Issue/ ArticleDetail/552/can-north-korea-prioritize-nukes-and-the-economy-at-the-same-time.html 참조

    *‘Global Asia’는 동아시아재단이 발간하는 국제문제 전문 계간 영문저널이다. ‘21세기 아시아가 열어가는 세계적 변화의 형성 과정을 주목한다’는 기조 아래 아시아 지역의 주요 현안에 관한 각국 전문가와 정책결정자의 공론장 구실을 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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