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35

2014.04.28

대화와 공감이 우리의 새출발

살아남은 자의 아픔 껴안는 영화들

  • 이형석 헤럴드경제 영화전문기자 suk@heraldm.com

    입력2014-04-28 11: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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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화와 공감이 우리의 새출발

    소통을 통한 상처 치유 과정을 담은 영화 ‘라자르 선생님’.

    달아나려 해도 돌아보면 제자리다. 배의 마지막 자락을 집어삼킨 차갑고 시꺼먼 바다가, 전남 진도 해역에서 펼쳐진 세상에서 가장 잔인하고 안타까운 죽음과 통곡의 풍경이 마음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일상이 버겁고 죄스럽다. 살아서 아프고, 아무것도 해줄 게 없어 미안하다.

    모든 국민이 울었다. 죽음 속에서 살아나고 사랑하는 친구와 가족을 바닷속으로 떠나보낸 이들만 할까만, 세월호 침몰의 비극을 마주하며 모든 국민이 함께 울고 함께 아파했다. 서로 상처를 보듬고 새 삶에 대한 의지를 다지는 ‘치유’는 모든 살아남은 자의 몫이 됐다. 그 일에 아주 작은 보탬이 될 만한 영화, 치유의 영화를 골랐다.  

    캐나다 영화 ‘라자르 선생님’(감독 필리프 팔라르도)은 비극적인 죽음을 목격한 이들이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한 초등학교 교실이 배경이다. 예쁘고 귀여운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끊이지 않는 교실은 세계 여느 곳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초롱초롱 빛나는 아이들 눈망울에 때때로 슬픔이 깃든다. 이 교실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여느 날과 같은 어느 아침이었다. 우유 배급 당번을 맡은 시몽은 등교하자마자 친구들에게 나눠줄 우유를 챙겨 들고 교실 문을 열었다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한다. 담임선생님이 교실에서 목매달아 자살한 것이다. 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심리치료를 제공하지만, 그 시간 외에는 모두 다 보고 아는 죽음을 금기와 침묵에 부친다. 라자르 선생님은 이 학급의 후임 담임교사가 된 알제리 출신 이민자다. 그 또한 마음 깊이 상실감과 죄책감을 갖고 있다. 고국에서 폭동으로 아내와 두 자식을 잃고 혼자만 살아남은 처지. 라자르 선생님은 말하기 두려워 감춰둔 기억들을 드러내고 함께 나누는 것으로 치유하고자 한다. 숨기는 것이 아니라 드러내고 공유하는 것. 라자르 선생님과 아이들이 서로를 보듬어가는 과정이다.

    대화와 공감이 우리의 새출발

    ‘래빗 홀’(왼쪽)과 ‘시’.

    존 캐머런 미첼 감독의 영화 ‘래빗 홀’은 세상에서 가장 큰 슬픔, 가족의 상실을 치유해가는 과정을 그렸다. 교통사고로 어린 아들을 잃은 부부 이야기다. 남편은 아들 흔적을 간직함으로써 상실의 슬픔을 달래려 하고, 아내는 죽은 아이의 자취를 온전히 없앰으로써 시련을 이겨내려 한다. 이들은 고통과 치유의 막다른 길 끝에서 사고 가해자인 소년과 만난다.  



    이창동 감독은 영화에서 용서와 속죄라는 말뜻 너머에 있고, 종교 차원마저 벗어나버린 치유 과정을 그린다. ‘밀양’은 유괴로 아들을 잃은 어머니가 분노와 자책, 종교적 몸부림 사이에서 마지막에야 붙든 생의 의지를 담았고, ‘시’는 피해자의 상실감과 가해자의 죄책감을 껴안는 ‘대속’으로서의 치유를 이야기한다.

    이 영화들은 끔찍한 폭풍이 지나간 곳, 폐허 같은 마음자리에서 “여기, 함께 울고 고통스러워했던 당신과 내가 있다”고 말한다. 함께 있음, 그리고 공감과 교감, 대화. 이것이 어쩌면 우리의 새 출발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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