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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파리가 선택한 ‘이달고’ 거물로 급부상

첫 여성 시장으로 6년 임기 시작…차기 대권 지형에 큰 변화 부를 듯

  • 전승훈 동아일보 파리특파원 raphy@donga.com

파리가 선택한 ‘이달고’ 거물로 급부상

‘빛의 도시(la ville lumiere)’로 불리는 프랑스 파리에서 첫 여성 시장이 탄생했다. 2001년부터 베르트랑 들라노에 파리시장을 13년간 보좌해온 사회당(PS) 안 이달고(55) 부시장이 그 주인공이다. 파리코뮌 붕괴로 폐지됐던 파리시장직이 1977년 부활한 이후 여성이 시장에 당선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3월 30일 결선투표를 치른 파리시장선거는 좌우파 양당이 내세운 여성 후보 간 맞대결이었다. 집권여당 후보인 이달고는 54.5%를 득표해 45.5%를 얻은 제1야당 대중운동연합(UMP)의 나탈리 코시위스코모리제(40) 전 교통환경부 장관을 여유 있게 물리쳤다.

임기 6년의 파리시장은 대권으로 가는 징검다리로 여겨지는 자리다. 18년간 파리시장을 지낸 자크 시라크도 1995년 대통령에 당선한 바 있다. 여성 시장의 등극에 따라 앞으로 대권 지형에도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달고도 이날 당선 연설에서 “나는 파리의 첫 여성 시장”이라며 “이 도전의 의미를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자유, 평등, 박애를 내세운 ‘프랑스 혁명’의 나라임에도 프랑스는 의외로 여성에게 정치 벽이 높다. 남성 중심적 정치문화가 뿌리 깊은 프랑스에서는 1944년에야 여성 참정권을 인정했다. 이는 미국(1920), 영국(1918), 독일(1918) 등 선진국뿐 아니라 스리랑카(1931)보다도 한참 뒤진다.

‘유리천장’ 깨뜨릴 실력 보유



프랑스에서 여성의 정계 진출은 1970년대 보수당의 발레리 지스카르데스탱 대통령 정권에서 시몬 베유와 프랑수아즈 지루가 내각 장관을 맡으면서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정계에서 여성 비율은 여전히 낮다. 45년 하원의원 중 여성 비율은 5%였으며, 96년까지도 여성 의원 비율은 6%에 불과했다. 97년 이후 여성 하원의원 비율은 11%로 늘었지만, 상원에서는 여전히 5.9%밖에 되지 않는다. 이는 그리스를 제외하고 모든 유럽국가 가운데 최하위다. 프랑스 지방자치단체장 중 여성 비율은 더 낮아 8%에 불과한데, 그나마 대부분 700명 이하 소도시다.

칠흑처럼 검은 머리카락과 타오르는 정열적인 눈빛이 인상적인 이달고(사진)는 여성이라는 점뿐 아니라 프랑스에서 태어나지 않은 가난한 이민자 출신이라는 점도 눈길을 끌었다. 그는 1959년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의 카디스 인근 산페르난도에서 태어났다. 카디스는 1810년 나폴레옹 점령기간에 유일하게 항복하지 않은 스페인 도시였다.

이달고의 할아버지는 스페인 사회주의자였다. 할아버지는 스페인 내전이 끝난 후 아내와 아이 네 명을 데리고 프랑스로 망명했다. 그러나 조부모는 얼마 후 다시 스페인으로 돌아갔다. 결국 할아버지는 사형선고를 받았고 후에 무기징역으로 감형됐다.

이달고의 아버지는 1950년대 후반 결혼해 딸 둘을 낳았다. 가난에 시달리던 아버지는 61년 다시 딸들을 데리고 프랑스 리옹으로 이민을 갔다. 할아버지가 정치적 이유로 망명했다면 아버지는 경제적 이유로 이민을 떠났다. 공공임대주택에 살던 이달고는 14세 때 프랑스로 귀화했다.

이처럼 가난한 스페인 이민자 출신이라는 이달고의 배경 때문에 이번 선거는 두 여성 후보의 계급에 초점이 맞춰졌다. 라이벌이던 UMP의 코시위스코모리제 후보는 정반대였다. 그는 프랑스 최고 명문인 에콜 폴리테크니크를 졸업한 수재로 29세에 정계에 입문해 34세에 니콜라 사르코지 정부에서 미래기획 디지털경제부 장관이 됐다. 할아버지가 주미대사를 지냈고, 아버지는 파리 근교 세브르 시 시장인 정치 명문가 출신이다.

대학에서 사회사업과 노동법을 전공한 이달고는 1982년 노동감독관 시험에 합격해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84년부터 9년간 파리 시내에서 근로감독관으로 일했다. 94년 PS에 입당하면서 정치 경력을 쌓았으며, 리오넬 조스팽 정부에서 마르틴 오브리 고용노동부 장관 자문역으로 일했다. 당시 관여했던 게 주 35시간 노동제였다. 이후 2001년 지방선거에 도전했고, 들라노에 시장이 당선한 후 파리시의 제2인자가 됐다.

“부드럽지만 소신 있는 정치인”

파리 부시장이 됐지만 이달고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었다. 처음엔 노동시간 감독과 남녀평등 업무를 맡았으나 점차 직업교육, 문화정책, 도시계획까지 총괄하는 중책을 맡았다. 특히 들라노에 시장의 치적으로 손꼽히는 파리 명물 무인자전거 대여 시스템 ‘벨리브(Velib)’와 전기자동차 ‘오토리브(Autolib)’를 도입하고, 센 강변에 인공 백사장 등을 조성해 바캉스를 즐기게 하는 친서민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이달고는 막후에서 큰 구실을 했다. 그는 이번 선거에서도 전기 오토바이를 대여하는 ‘스쿠트리브(Scootlib)’를 비롯해 공공주택, 유치원 건설 등 서민을 겨냥한 공약들을 내놓고 표를 끌어모았다.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이 취임한 2012년 5월 이달고는 장관직을 제안받았다. 그러나 그는 이를 거절했다. 당시 그는 들라노에 시장이 12년에 이르는 두 차례 임기를 마치면 파리시장에 도전할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이달고는 2012년 9월부터 차근차근 시장 출마를 준비해왔다. 그의 선거전략은 시정의 연장선에 있었다. 미디어에 노출되는 대신 파리 시민을 직접 만나는 ‘조용한 선거’를 치른다는 것이다. 이미 검증받은 부시장 경력을 무기로 삼았다. 반면 코시위스코모리제 후보는 이달고에 대해 “카리스마가 약하다”고 비난하며 소란스러운 행보를 보였지만 우왕좌왕한 끝에 실패하고 말았다.

들라노에 시장은 이달고에 대해 “그는 부드럽고 따뜻하고 매력적인 동시에 매우 단호하며 소신 있고 끈질긴 정치인”이라고 평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프랑스의 집권당 PS 는 전국 150개 시에서 시장직을 내줄 정도로 참패했다. 올랑드 대통령의 체면을 그나마 살려준 것이 바로 이달고의 파리시장 당선이다. 올랑드는 침체된 경제를 살리려고 마뉘엘 발스(51) 내무부 장관을 총리로 기용했다. 발스 총리는 친기업 정책, 불법이민 단속, 치안 강조 등 우파 성향으로 ‘사회당의 사르코지’로 불린다. 올랑드 대통령으로서는 지방선거 참패로 차기 대권에서 자신의 강력한 경쟁자일 수밖에 없는 발스를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총리로 발탁할 수밖에 없었다.

올랑드 대통령은 또 최근 개각에서 자신의 첫 동거녀이자 2007년 대통령선거 후보였던 세골렌 루아얄을 환경에너지부 장관에 기용했다. 대통령이 동거, 이혼, 스캔들, 파경 등 복잡한 사생활이 얽힌 전 동거녀를 다시 장관으로 기용해 함께 국정을 펼친다는 것이 우리 정서에는 무척 낯선 일이다.

파리시의 첫 여성 시장 당선자인 이달고는 PS의 잠재적 대권 후보로 올랑드, 발스, 루아얄과 경쟁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달고는 당선 직후 “더 창조적이고 혁신적이며, 소외된 이 없이 더불어 잘 사는 파리시를 만들겠다”며 먼저 시정에 전념할 뜻을 밝혔다.



주간동아 2014.04.08 932호 (p48~49)

전승훈 동아일보 파리특파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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