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29

2014.03.17

‘브람스의 도시’서 만난 소콜로프 감성

독일 함부르크

  • 황장원 음악칼럼니스트 tris727@naver.com

    입력2014-03-17 09: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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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람스의 도시’서 만난 소콜로프 감성

    러시아 피아니스트 거장 그리고리 소콜로프.

    독일 북부 항구도시 함부르크는 클래식 애호가에게 ‘브람스의 도시’로 기억된다. 요하네스 브람스는 1933년 5월 7일 함부르크에서 태어나 순회음악가 생활을 시작한 20세까지 그곳에서 살았고, 이후 오스트리아 빈에 정착할 때까지 꾸준히 왕래했다.

    함부르크에 가보면 그곳에서 브람스가 얼마나 중요한 인물인지 실감할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 폭격에서 살아남은 건물에 ‘브람스 박물관’이 입주했고, 생가가 있던 자리에는 기념비가 들어서 있다. 주요 공연장인 ‘라이스할레(Laeiszhalle)’ 앞 광장 이름도 ‘브람스 광장’이며, 공연장 로비에는 브람스 기념상이 자리한다.

    2월 동료 칼럼니스트와 독일, 이탈리아로 음악·공연 여행을 다녀왔다. 함부르크는 그 기점이었고, 거기서 우리는 러시아 피아니스트 그리고리 소콜로프(Grigory Sokolov)의 리사이틀에 참석했다.

    소콜로프는 미하일 플레트뇨프와 더불어 현존하는 러시아 피아니스트 가운데 최고 거장으로 꼽힌다. 1966년 16세 나이로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에서 심사위원 전원 일치로 우승해 스타 자리에 올랐고, 옛 소련이 붕괴한 후 서유럽에 본격 진출해 독보적인 연주 스타일과 심오한 음악성으로 최고 명성을 쌓았다.

    2월 24일 라이스할레에서 열린 리사이틀 프로그램은 쇼팽 일색이었다. 소콜로프는 1부에서 ‘피아노 소나타 3번’ 전곡을 연주한 다음 2부에서는 마주르카를 10곡 골라 연주했다. 부드러운 악구에서는 한없이 투명한 음색과 유려한 감성을 들려주다, 강렬한 악구에서는 마치 핵폭탄이 터지듯 장중한 타건(터치·touch)과 거대한 스케일로 좌중을 압도했다.



    그 우주적 대비 속에서 쇼팽은 더는 유약한 살롱 음악가가 아니었다. 소나타는 피아노로 연주하는 교향곡을 방불케 했고, 마주르카 10곡은 다채로우면서도 폭넓은 감정과 사유의 스펙트럼을 아우르는 광시곡 같았다. 그러면서도 감정은 과도하게 범람하는 법이 없었고, 곡 전체 구도와 흐름은 놀라울 만큼 이지적인 절제로 통제되고 있었다. 그런 소콜로프의 연주는 쇼팽보다 브람스를 떠올리게 했다.

    소콜로프는 얼마 전 아내와 사별했다. 그래서인지 연주 내내 아련한 쓸쓸함과 사무치는 그리움이 묻어나는 듯했다. 앞서 언급한 대비도 음반이나 영상물에서 대하던 것보다 다소 거칠게 이뤄졌는데, 아마도 아내에 대한 상념으로 격한 감정을 표출한 것 내지는 새로운 깨달음의 결실 때문이지 않았을까. 어쩌면 클라라를 잃었을 당시 브람스의 심경과 연주도 그와 비슷했으리라.

    라이스할레 2층 로비에 있는 브람스 기념상은 독일 상징주의 작가 막스 클링거(Max Klinger)의 작품이다. 기념상은 키가 작았던 브람스와 달리 약 2m 높이의 대리석상이다. 근엄한 표정으로 망토를 두른 채 서 있는 그를 세 여인과 한 남자가 오른쪽 어깨부터 발치까지 둘러싸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같은 홀에 놓인 클라라와 슈만의 시선인데, 클라라의 흉상은 브람스의 왼쪽 옆에서 그의 얼굴을 물끄러미 올려다보는 듯하고, 슈만의 흉상은 등 뒤에서 묵묵히 지켜보는 듯하다. 브람스와 클라라, 그리고 슈만의 관계를 아는 사람이라면 이 오묘한 배치에서 모종의 애틋함을 감지할 수 있으리라.

    ‘브람스의 도시’서 만난 소콜로프 감성

    독일 함부르크 공연장 라이스할레의 저녁 빛(왼쪽). 라이스할레 2층 로비에 서 있는 브람스 기념상과 스승 슈만, 슈만 아내 클라라의 동상. 슈만이 병들자 브람스는 흠모하는 클라라와 그 가족을 돌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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