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25

2014.02.17

평범한 얼굴, 위대한 일상

박노해 아시아 사진전 ‘다른 길’

  • 송화선 주간동아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14-02-17 11: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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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범한 얼굴, 위대한 일상

    1 ‘짜이가 끓는 시간’ 2 ‘노래하는 호수’ 3 ‘파도 속에 심은 나무가 숲을 이루다’

    ‘박해받는 노동자의 해방.’

    1984년 스물일곱 살 노동자 박기평이 시집 ‘노동의 새벽’을 내며 필명으로 사용한 이름 ‘박노해’에 담긴 뜻이다. 야간 상고를 졸업한 이 청년의 시어는 생생함과 진정성으로 세상을 놀라게 했고, 그에겐 오랜 수배 생활과 체포, 수감으로 이어지는 고난을 선물했다. 그로부터 30년이 흐른 올해 50대 후반이 된 ‘시인’은 사진작가로 다시 대중 앞에 섰다. 서울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열리는 사진전 ‘다른 길’은 박노해의 오늘을 보여주는 전시다.

    2000년대 초반부터 평화운동, 생명운동을 해온 그의 카메라는 아시아 곳곳에 살고 있는 평범한 이들에 주목했다. ‘눈부시게 진보하는 세계와 멀어져 사람들 눈에 띄지도 않는 험난한 곳에서 자급자족의 삶을 이어온 전통마을 토박이들. 자신이 무슨 위대한 일을 하는지 의식하지도 않고 인정받으려 하지도 않고, 인류를 먹여 살릴 한 뼘의 대지를 늘려가고자 오늘도 가파른 땅을 일구어가는 개척자들’이 박노해의 관심사다. 현대를 ‘역사상 가장 풍요롭고 편리해졌지만, 인간은 스스로 할 수 있는 능력을 잃어버리고 모든 걸 돈으로 살 수밖에 없게 된 시대’라고 진단하는 그에게 이들의 일상은 ‘좋은 삶의 원형’이자 ‘희망의 종자’다. 그들을 통해 ‘무엇이 좋은 삶인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라는 물음의 답을 제시한 것이 곧 이번 전시다.

    박노해가 파키스탄의 한 흙집에서 촬영한 사진 ‘짜이가 끓는 시간’을 보자. 가족이 둘러앉아 전통차 ‘짜이’를 끓이며 오순도순 대화를 나누는 풍경 한가운데로 햇빛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얼핏 종교화로 보일 만큼 성스럽고 평화롭다. 작가는 사진 옆에 ‘(전략) 하루에 가장 즐거운 시간은 짜이가 끓는 시간. (중략) 탐욕의 그릇이 작아지면 삶의 누림은 커지고/ 우리 삶은 ‘이만하면 넉넉하다’’는 짧은 시를 적어놓았다.

    또 다른 사진 ‘노래하는 호수’에는 광대한 호수 위에서 작은 조각배에 몸을 실은 채 고기를 잡는 어부 모습이 담겨 있다. 따뜻하게 내리쬐는 아침 햇살 아래 그의 노동은 먹고살기 위한 고단한 작업이 아니라 삶의 기쁨을 찬미하는 춤처럼 보인다. 작가 또한 사진 설명으로 ‘(전략) 자연이 길러준 것을 오늘 하루 필요한 만큼만 취하는/ 깨끗한 노동은 감사한 밥이 되고 평정한 영혼이 된다./ 작은 그물을 당겨 은빛 물고기를 거두어 받는 시간,/ 어부의 노동은 우아한 춤이 된다’는 시를 적었다.



    ‘다른 길’ 전시에서 사진은 이렇게 시와 어우러져 더 깊은 생각거리를 준다. 3월 3일까지, 문의 02-734-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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