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24

2014.02.10

불온한 상상력 ‘더티밤’ 쾅!

소치 올림픽 방사성 물질 살포 테러 그림자…만일의 경우 심리적 공포 예측 불허

  • 부승찬 연세대 북한연구원 연구원 baramy1001@naver.com

    입력2014-02-10 14:14: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불온한 상상력 ‘더티밤’ 쾅!

    2014 겨울올림픽이 열리는 러시아 소치의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 아들레르 아레나.

    더티밤(dirty bomb). 재래식 폭탄에 방사성 물질을 결합해 만드는 일종의 살포장치다. 폭발력이 크지 않아 단기적인 인명피해는 적을 수 있지만, 방사능 유출로 자연적인 암과 구분이 어려운 암을 유발한다는 점에서 대중의 공포를 극대화하고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는 무기체계다. 만에 하나 겨울올림픽이 열리는 러시아 소치 경기장 인근에서 이러한 폭탄이 터진다면 어떤 결과를 초래할까.

    과학적으로만 따지자면 상황 자체는 충분히 관리 가능하고 피해 정도도 심하지 않을 공산이 크다. 폭발에 의한 직접적인 사망자나 방사선 노출로 단기간 내 사망하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많지 않을 것이기 때문. 그러나 대중과 언론 반응은 상상 이상의 공포로 이어질 것이다. 집단적 패닉이 추가 사망자나 부상자 발생을 야기할 수도 있다. 올림픽이 완전히 중단되지는 않더라도 경기 운영에 심각한 걸림돌로 작용하게 될 것이라는 시나리오다.

    분쟁지역 체첸과 가까운 소치

    2월 초 미국과학자연맹(FAS)은 인터넷 전략안보 블로그 홈페이지를 통해 이러한 가능성을 우려하는 분석글을 게재했다. 내용 자체는 소치 겨울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다양한 경로를 통해 쏟아져나온 테러 위험 경고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국제원자력기구(IAEA) 핵안보사무국 선임분석관을 역임한 필자 조지 무어 박사의 이력을 감안하면 이야기는 사뭇 달라진다. 소치가 안고 있는 다양한 지리적, 정치적 특성을 분석한 그는 이슬람 반군단체에 의해 이 같은 핵테러가 발생할 개연성을 설득력 있게 경고한다. 길지 않은 그의 글이 이목을 집중시키며 적잖은 파장을 불러일으킨 이유다.

    2월 8일 겨울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소치에 잠입한 것으로 알려진 체첸 여성 자살폭탄테러 조직 ‘검은 과부(Black Widows)’와 영상 메시지를 통해 올림픽 참가국에 위협을 가한 반군단체들의 소식은 외신을 통해 국내에도 소개된 바 있다. 러시아 정부는 대대적인 검거작전에 나서는 한편, 푸틴 대통령이 직접 나서 “올림픽 안전에는 문제가 없다”고 강조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올림픽 개최지인 소치가 분쟁지역이던 체첸과 지리적으로 가깝다는 사실 때문에 안보 불안은 더욱 심화되고 있고, 이는 이슬람 반군에게 올림픽의 와해를 촉구하는 체첸 반군 지도자 도쿠 우마로프의 존재와 관계가 깊다. 실제로 지난 수주일 사이 이슬람 반군은 러시아 남부도시인 볼고그라드에서 자살폭탄테러 2건을 감행해 사망자 34명과 부상자 수십 명을 낳음으로써 자신들의 위협을 ‘증명’하기도 했다.

    특히 우려할 만한 대목은 이들이 방사성 물질을 테러에 활용한 전례가 있다는 점이다. 러시아와 체첸의 분쟁이 한창이던 1990년대 중반 모스크바 한 공원에 세슘 소량을 방치해 피해를 입혔고, 이후에도 방사성 물질을 사용하겠다는 위협을 지속해왔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방사성 물질을 살포하려고 더티밤을 터뜨리겠다는 내용이었다.

    전문가들은 더티밤 제조가 가능한 방사선 동위원소로 아메리슘 241, 칼리포르늄 252, 세슘 137, 코발트 60, 이리듐 192, 플루토늄 238, 폴로늄 21010, 라듐 226, 스트론튬 90 등을 꼽는다. 소련이 해체된 이후 체첸 지역에서 다양한 방사성 물질이 통제 불능 상황에 놓인 상태에서, 이들 가운데 소량이 반군단체 수중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 문제 핵심이다. 쉽게 말해 이들이 올림픽을 와해하려는 목적에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할 만한 ‘물건’을 이미 갖고 있을 확률이 매우 높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거꾸로 이러한 시도를 차단하는 일은 가능할까. 언론을 통해 낱낱이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냉전 종식 이후 올림픽을 비롯한 주요 국제행사에 대한 핵테러 예방 조치는 꾸준히 이뤄져왔다. IAEA는 핵안전 지침서와 함께 필요한 장비 및 지원을 행사 주최국에 제공하고 있다. 물론 러시아가 IAEA 관련 지침을 정확히 준수하는지는 확인하기 어렵지만, IAEA와의 공조를 통해 대응책을 고심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러시아 정부는 반군단체들의 침투를 막으려고 소치를 중심으로 2400km 범위에 이르는 특별경계구역(ring of steel)을 설정하고, 선수촌이나 경기장으로 이어지는 도로와 철도가 포함된 구역에 총 5만 명에 달하는 보안요원을 배치해 경계를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높은 수준의 보안태세에도 자살 의도를 가진 테러리스트의 접근을 완벽하게 차단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특히 문제는 더티밤이 폭발하거나 방사성 물질이 살포됐을 때 대중의 심리적 공포를 차단할 방안이 과연 있느냐는 점이다. 방사성 물질의 존재 여부나 이동 경로를 실시간으로 추적하는 체계를 만드는 것 못지않게 대중의 정서적 충격을 최소화하는 대응 방안도 필요하다는 게 핵테러 우려를 제기하는 전문가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방사성 물질 살포장치는 흔히 대량살상무기(Weapons of Mass Destruction)가 아닌, 대량혼란무기(Weapons of Mass Disruption)라고 불린다. 이는 수차례 제기된 바 있는 재래식 폭탄보다 더티밤 우려가 한층 심각해 보이는 이유고, 소치 겨울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가로막을 수 있는 최대 위협 요인으로 지목되는 배경이다. 소련 해체 과정에서 핵물질 통제에 실패한 국제사회의 무능, 그리고 러시아와 체첸의 분쟁 상처가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물지 않은 채 남은 결과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