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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재의 중국 속 북한

‘공포정치’ 후 유화 공세 이산가족 상봉 물꼬 터지나

2월 20~25일 금강산서 열기로 합의…남북대화 긍정적인 국면 전환

  • 김승재 YTN 기자·전 베이징 특파원 sjkim@ytn.co.kr

‘공포정치’ 후 유화 공세 이산가족 상봉 물꼬 터지나

‘공포정치’ 후 유화 공세 이산가족 상봉 물꼬 터지나

1월 27일 서울 중구 대한적십자사 이산가족 상봉 신청 접수처를 찾은 실향민 박덕순(80·왼쪽에서 두 번째) 할아버지와 부인 김경애(73) 할머니가 이산가족 상봉 대상자에 포함될 수 있는지 문의하고 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남북 이산가족은 속이 타들어간다. 지난해 추석을 앞두고 남북은 이산가족 상봉을 추진했지만 불과 며칠을 앞두고 북한이 일방적으로 행사를 취소했다. 올해는 설 명절을 앞두고 남북 쌍방이 이산가족 상봉을 교차로 제기하면서 상봉에 대한 기대가 부풀었다. 우리 정부가 제안한 ‘2월 17일부터 22일까지 개최’ 일정에 대해 북한은 설연휴가 끝나도록 아무런 답을 내놓지 않다 연휴가 끝난 직후인 2월 3일에서야 판문점 연락관 채널을 통해 실무 접촉을 제안하는 전화 통지문을 보내왔다.

남북은 2월 5일 적십자 실무접촉을 갖고 2월 20일부터 25일까지 상봉 행사를 개최하기로 합의했다. 필자는 새해 들어 중국 내 취재원으로부터 올해 북한이 의도하는 대남정책 흐름에 대해 들었다. 여기에는 이산가족 상봉에 대한 북한 속내도 담겼다.

무력과 돈벌이 동시 추구

올해 평양의 대남정책 방향에 대해 취재원은 유화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제1비서의 1월 1일 신년사에 주목하라는 게 그의 주문이었다. 김정은의 육성 신년사에는 농업, 건설 등 경제 살리기와 더불어 남북관계 개선을 강조하는 대목이 여러 군데 나온다. “북남 사이 관계 개선을 위한 분위기를 마련해야 한다” “백해무익한 비방과 중상을 끝낼 때가 됐으며 화해와 단합에 저해를 주는 일을 더는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같은 문장들이다.

지난해 말 이른바 ‘장성택 쇼크’를 통해 평양은 대내적으로는 물론, 대외적으로도 북한 특유의 ‘공포정치’를 과시했다. 핵과 경제, 즉 무력과 돈벌이를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 김정은 체제의 기본 노선임을 감안할 때, 장성택 사건으로 무력은 충분히 보여준 셈이니 이제 돈벌이를 위해 유화 제스처를 보일 필요성이 있는 셈이다.



물론 김정은의 신년사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기 힘들다는 지적도 있다.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센터는 보고서를 통해 ‘올해 북한의 대내정책은 정치·경제 안정에 치중하고, 대외 및 대남정책은 기본 노선을 유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신년사에 등장한 ‘남북관계 개선’ 언급과 관련해서는 과연 평양이 진정으로 노력을 기울일 것인지 의문을 제기하며 경계했다.

필자의 취재원은 북한이 1월 8일 김정은 생일을 지나면서 대남 유화책을 계획했다고 전했다. 유화책의 구체적 내용이 바로 이산가족 상봉 제안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계획은 성사되지 않았다. 남측이 먼저 제안했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1월 6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북측에 “설을 계기로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열자”고 제안했다. 이에 대한 북한 측 반응은 사흘 뒤인 1월 9일 나왔다. 북한 조선적십자회 중앙위원회가 우리 측에 보낸 통지문을 통해서다.

북한은 남측 제안을 일단 거부했다. 그리고 이산가족 상봉과 금강산관광 재개를 연계하는 기존 주장을 되풀이했다. 하지만 여지는 남겼다. 설 상봉에 대해 ‘계절적으로나 시간적으로 맞지 않다. (중략) 우리 제안도 다 같이 협의할 의사가 있다면 좋은 계절에 마주앉을 수 있다’는 문장이었다. 결국 북한은 보름 뒤인 1월 24일 “설이 지난 뒤 편리한 시기에 금강산에서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갖자”고 전격 제의했다.

北 사정 모르는 1월 상봉 제안?

‘공포정치’ 후 유화 공세 이산가족 상봉 물꼬 터지나

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제1비서의 신년사를 전한 1월 1일자 ‘노동신문’.

박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이산가족 상봉을 제안한 것에 대해 북한은 어떻게 평가했을까. 북한 고위층 인사가 보인 반응을 우회적으로 취재한 결과 ‘북한 내부 사정을 너무 모르는 제안’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시점상 1월 말 설 즈음해 이산가족 상봉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북한은 보통 1월 1일 한 해 정책 방향을 담은 신년사(신년 공동사설)를 발표한 뒤 1월 15일 무렵까지 당·정·군 모두 이를 학습하는 데 총력을 기울인다. 실질적인 새해 업무는 학습이 끝난 이후인 1월 중순 무렵 시작한다. 그러니 1월 말 이산가족 상봉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이다.

더욱 중요한 부분은 이산가족 상봉 행사에 참석할 노인이 대부분 고령이라 이동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들은 각지에 뿔뿔이 흩어져 사는 데다, 거주 지역의 한겨울 체감온도는 영하 20~30도까지 떨어지곤 한다. 맹추위 속에서 고령의 노인들을 평양으로 집결하게 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평양에서 금강산까지 버스로 대여섯 시간 걸리는 데다 도로도 엉망이다. “우리는 한겨울엔 큰 행사를 치르지 않는다.” 베이징 특파원 기간 만났던 북측 인사가 필자에게 했던 말이다. 박 대통령의 이산가족 상봉 제안에 북한 고위급 인사가 보인 반응은 다음과 같았다고 한다. “상대 처지도 생각하며 제안해야지, 사전 교감도 없이 어떻게 이런 식으로 일을 처리하나.”

이산가족 상봉 제안보다 훨씬 강하게 북한을 자극한 사안은 따로 있었다. 바로 ‘장성택-이설주 추문’ 보도다. ‘김정은 조선노동당 제1비서가 자신의 부인 이설주와 장성택이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사실을 확인하고 이 때문에 장성택을 처형했다’는 것이 골자다. 지난해 말 장성택 처형 직후 국내 언론에 처음 보도되기 시작한 이 소문은 워낙 호기심을 자극하는 내용이다 보니 많은 언론이 다뤘다. 인터넷에서는 장성택과 이설주의 부적절한 관계를 암시하는 합성사진과 가짜 동영상까지 유포됐다.

남측 정보당국의 부인에도 장성택-이설주 추문 보도는 수그러들지 않은 채 새해까지 이어졌다. 이번에는 방송들이 경쟁적으로 이 얘기를 다뤘다. 자극적인 제목으로 장시간에 걸쳐 집중 토론하는가 하면, 일부 방송은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다루기도 했다. 북한 고위급 인사가 보인 반응은 한마디로 격분이었다.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상호 비방하지 말자고 했음에도 이런 보도가 이어지는 것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공포정치’ 후 유화 공세 이산가족 상봉 물꼬 터지나

1월 15일 경기 파주시 오두산통일전망대에서 바라본 황해북도 개풍군 관산반도 임한리 마을의 겨울 풍경.

“최고존엄 남측 정부가 정보 흘려”

북한은 남측 언론의 북한 관련 보도를 정부 견해와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기본적으로 이러한 보도는 개별 언론사가 자체 취득한 정보를 바탕으로 독자적으로 진행한다는 사실 자체를 북한 당국자는 신뢰하지 않는다. 필자는 특파원 시절 북한 고위급 인사와 이에 대해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필자는 “남과 북은 언론보도 시스템이 다르다. 북측이야 정부에서 모두 관리하고 통제하지만 남측은 그렇지 않다. 언론사 수도 굉장히 많고, 기사가 나가는 과정에 정부가 개입하지도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북측 인사는 “최소한 북측 관련 정보의 출처는 국가정보원 등 남측 정부다. 북측을 교란하려고 배후에서 고의로 거짓 정보를 흘린다”고 답했다. 그의 생각은 확고했다. 언론을 선전선동 도구로 활용하는 북한에서는 적대국 동향과 관련한 모든 보도를 정보공작 차원으로만 이해하는 것이다. 특히 북한은 이른바 ‘최고존엄’에 관한 보도에 대해서는 예외 없이 격한 반응을 보여왔다. 특정 기자의 실명을 직접 거론하며 협박을 가하기도 했다.

북한은 새해 들어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거듭 밝히고 있다. 1월 1일 신년사를 시작으로 1월 중순에는 국방위원회가 이른바 ‘중대 제안’을 통해 ‘상호 비방 및 중상 중단’을 제안했다. 1월 하순에는 남북관계 개선 주장을 담은 공개 서한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공식 문건으로 배포하기도 했다.

1월 29일에는 베이징 주중북한대사관이 외신을 상대로 기자회견을 열면서 한국 언론의 취재도 허용했다. 초청 대상에 포함되진 않았지만 혹시나 하는 생각에 대사관 앞에서 기다린 한국 기자들을 안으로 불러들인 것이다. 베이징 주중북한대사관은 현안이 있을 때면 종종 외신기자를 초청했지만, 한국 언론의 출입을 허용한 것은 전례가 드문 일이다. 이 역시 대남 유화 제스처 가운데 하나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렇듯 쇄도하는(?) 북한 측 제안은 충분한 신뢰를 얻지 못한다. 이유는 1년 전 상황만 봐도 알 수 있다. 김정은은 지난해 1월 1일 육성 신년사에서도 남북관계 개선을 언급했지만, 평양은 신년사가 있은 바로 다음 달부터 3차 핵실험 감행과 정전협정 백지화 선언, 개성공단 운영 잠정중단 발표 등 긴장을 최고조로 끌어올리는 도발을 잇달아 강행했다. 최근 북한의 잇단 유화 제스처가 또 다른 도발을 위한 평화 공세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는다는 전제하에서 북한의 유화 제스처는 일단 긍정적인 국면 전환이 아닐까 싶다. 그만큼 남북이 대화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기 때문이다. 다른 것은 차치하고, 헤어진 가족과의 만남을 애타게 기다리는 이산가족 노인들의 한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주간동아 2014.02.10 924호 (p48~50)

김승재 YTN 기자·전 베이징 특파원 sjkim@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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