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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훈의 자연주의 캠핑

겨울밤 별 헤아리며 모닥불 낭만

영월 보보스캇 캠핑장 누구나 편하게 쉬어갈 수 있는 따뜻한 공간

  • 양영훈 여행작가 travelmaker@naver.com

겨울밤 별 헤아리며 모닥불 낭만

겨울밤 별 헤아리며 모닥불 낭만

서강 물길의 침식작용으로 형성된 선돌.

스노캠핑(snow camping)은 캠퍼들의 로망이다. 캠핑장에서 맞는 눈은 특별하다. 엄동설한의 맹추위도 녹일 만큼 따뜻하고, 첫사랑의 추억처럼 달콤하고 낭만적이다. 같은 눈인데도 극심한 교통체증을 감내해야 하고, 녹아서 질척거릴 것부터 염려할 수밖에 없는 도시의 눈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래서 캠핑 마니아는 한겨울에도 주저 없이 자연으로 떠난다. “따뜻한 집 놔두고 왜 사서 고생하느냐”는 비아냥거림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스노캠핑을 기대하며 강원 정선 땅으로 향했다. 동강의 절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는 캠핑장이 우리 목적지였다. 전날에도 적잖은 눈이 내렸던 터라, 영동고속도로 진부IC에서 정선으로 가는 59번 국도는 군데군데 빙판을 이뤘다. 그래도 하얀 설원이 펼쳐질 캠핑장에 대한 기대만으로도 소풍을 앞둔 아이처럼 가슴이 설다.

산수 조화 절묘한 영월

장을 보려고 정선 읍내에 잠깐 들렀다. 다시 출발하기에 앞서 캠핑장 상황을 알아보려고 관리소에 전화를 걸었다. 관리소 직원은 동강변 큰길에서 캠핑장까지 2.5km 되는 진입로 일부가 얼어붙어 미끄러울 것이라고 했다. 네 바퀴에 모두 스노타이어를 장착한 사륜구동형 스포츠 유틸리티 차량(SUV)을 타고 갈 거라고 했더니, “캠핑장에 올라오는 건 어렵지 않겠지만, 내일 내려갈 때까지도 얼음이 녹지 않으면 좀 위험할 것 같은데요”라며 친절하게 조언했다.

함께 길을 나선 일행은 모두 다른 캠핑장을 알아보자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눈이 없으면 삭막하고, 눈이 많으면 찾아가는 길이 불편하면서 위험할 수밖에 없는 겨울 여행의 딜레마를 피하지 못한 셈이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영월로 발길을 돌렸다.



영월군은 경기 포천 다음으로 캠핑장이 많은 지역이다. 특히 수주면 법흥 계곡에는 40여 곳에 이르는 영월 캠핑장의 절반 이상이 몰려 있다. 한겨울에 문을 여는 캠핑장도 적지 않다. 법흥 계곡을 새로운 목적지로 정한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목적지가 분명해지니 마음과 시간 여유도 생겼다. 곧바로 캠핑장을 찾기엔 이른 시간이라 영월의 대표적 절경인 선돌과 한반도지형(명승 제75호)을 먼저 둘러보기로 했다.

남한강의 양대 줄기인 동강과 서강을 품은 영월 땅은 산수 조화가 참으로 절묘하다. 두 강의 물길과 첩첩 산등성이가 어우러져 만들어낸 절경이 가히 국보급이다. 실제로 영월군에 위치한 어라연, 청령포, 선돌, 한반도지형 등 4곳은 국가문화재인 명승(名勝)으로 지정됐다. 그중 가장 쉽게 찾아갈 만한 곳은 영월읍 방절리 서강가에 우뚝한 선돌이다. 70m 높이의 선돌이 마치 신선처럼 초연한 자태로 서 있다고 해서 신선암(神仙岩)으로도 부른다. 31번 국도가 지나는 소나기재 정상의 주차장에서 100m쯤 걸어가면 선돌 전망대에 도착한다. 아득한 절벽 위 전망대에 올라서니 ‘산태극 수태극’을 이루며 굽이치는 서강과 끝없이 뻗은 산줄기가 장쾌하다. 차가운 날씨 속에 한결 투명해진 강물이 그야말로 옥빛이다.

소나기재 정상에서 찻길로 약 14km 떨어진 서강 상류엔 한반도지형이 있다. 오늘날 영월에서 가장 인기 있는 관광명소이자 영월을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소재한 면의 지명조차 영월군 서면에서 한반도면으로 바꿨다. 주차장에서 한반도지형 전망대까지는 1km가량의 조붓한 솔숲길을 가로지른다. 이 숲에는 카르스트(Karst) 지형 중 하나인 돌리네(Doline)가 군데군데 형성됐다. 돌리네는 석회암 지대의 주성분인 탄산칼슘이 지하수에 용식(溶蝕)되면서 깔때기처럼 움푹하게 꺼진 지형이다. 그 형태가 마치 모래밭에 흔한 개미지옥을 닮았다.

한반도지형은 영월군 한반도면 옹정리 선암마을에 있다. 억겁의 세월 동안 평창강 물길의 침식과 퇴적작용에 의해 형성된 지형이 실제 한반도 모양과 똑같다. 동고서저(東高西低)의 지형적 특징까지도 아주 비슷하다. 동쪽에 우뚝한 신선바위는 융기 해안인 동해안의 특성을 완벽하게 보여주고, 서쪽과 남쪽의 완만한 모래톱은 갯벌이 넓고 경사가 완만한 침강해안인 서남해안의 특징이 고스란히 표현됐다. 백두대간의 높은 산줄기와 울창한 숲, 땅 끝 해남과 포항 호미곶까지도 또렷하다. 게다가 맨 위쪽 시멘트공장은 압록강 너머 만주 땅에 들어선 중국 공장지대를 연상케 한다. 누구 봐도 영락없는 한반도지형이다. 이처럼 특이한 한반도지형은 선암마을 주민인 고(故) 이종만 씨가 1999년 처음 발견했다. 전망대가 세워진 종만봉이란 지명은 그의 이름을 따서 붙였다.

겨울밤 별 헤아리며 모닥불 낭만

강원 영월군 주천면 판운리의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 보보스캇 캠핑장 안에 조성돼 있다.

한반도지형 꼭 한 번 가볼 만

겨울밤 별 헤아리며 모닥불 낭만

강원 영월군 한반도면 선암마을의 한반도지형. 형태뿐 아니라 지형적 특성도 한반도 모양과 거의 똑같다.

한반도지형에서 함경도 북청쯤 되는 곳엔 소나무와 솔가지를 엮어 만든 섶다리가 놓였다. 지금은 관광용 다리지만, 육지 속 섬이던 시절엔 선암마을 주민과 바깥세상을 이어주던 유일한 통로였다. 지금도 영월군에는 강물이 줄어드는 가을철마다 어김없이 섶다리를 가설하는 곳이 여럿 있다. 특히 주천면 판운리 섶다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섶다리로 손꼽힐 만하다.

내친걸음에 우리는 판운리 섶다리도 잠깐 둘러보기로 했다. 태극 형상으로 굽이치는 평창강에 가로놓인 판운리 섶다리는 여전히 아름답고 튼실했다. 콘크리트다리나 철다리에서는 느낄 수 없는 푹신함과 가벼운 율동감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고스란히 느껴졌다. 100m 가량의 짧은 섶다리를 하릴없는 사람처럼 몇 번이나 왕래했다.

섶다리 건너편 미다리마을엔 멋진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이 있다. 잎을 모두 떨군 메타세쿼이아는 앙상한 가지만 남았지만, 하늘 높이 곧게 뻗은 위용은 보기 드문 장관이었다. 전남 담양의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보다 짧고, 춘천 남이섬의 그 나무들보단 작지만, 현존하는 화석식물 중 하나인 메타세쿼이아 특유의 준수한 자태를 실감하기에는 전혀 부족함이 없다.

길이가 150m쯤 되는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은 보보스캇 캠핑장이란 사유지 안에 조성됐다. 주인 박인규(77) 씨가 20여 년 전 나무농장을 시작하면서 처음 심은 나무들이 오늘날과 같은 거목으로 자랐다고 한다. 메타세쿼이아뿐 아니라 벚나무, 잣나무, 산수유나무, 홍도화, 향나무, 단풍나무 등을 8000평(2만6446m2)쯤 되는 캠핑장 곳곳에 심어 놓았다. 마치 강변 자연휴양림 같은 캠핑장을 우연히 발견한 것이다.

겨울밤 별 헤아리며 모닥불 낭만

강원 영월군 주천면 판운리 평창강 물길에 놓인 섶다리.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섶다리로 꼽힌다(위). 영월화석 박물관에 전시된 공룡알화석을 관찰하는 엄마와 아이.

보보스캇(Bobo’s cot)의 보보(bobo)는 부르주아(bourgeois)와 보헤미안(bohemian)에서 따왔다. 캇(cot)은 작은 집을 뜻하는 코티지(cottage)의 줄임말이다. ‘돈 있는 자나 가난하고 자유로운 예술가나 상관없이 누구나 편하게 쉬어갈 수 있는 작은 집’이라는 뜻에서 그런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법흥 계곡의 어느 캠핑장 대신 보보스캇 캠핑장에서 하룻밤을 묵기로 했다. 커다란 나무 아래에서 별을 헤아리며 모닥불놀이도 즐기고, 물안개가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새벽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과 강변 버드나무 숲길을 산책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여름철엔 이 캠핑장을 휘감고 흐르는 평창강에서 물놀이와 천렵도 즐길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보다는 녹음 우거진 여름날의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 풍경이 더 기대된다.

인근 박물관 탐방 쏠쏠한 재미

보보스캇 캠핑장이 있는 영월군은 박물관이 많기로 소문난 고장이다. 인구가 4만여 명에 불과한 작은 군에 박물관이 24개나 산재해 있다. 사진, 민화, 지리, 화석, 곤충, 책 등 테마도 매우 다양하다. 영월군이 지역 내 남아도는 공간을 재활용하고, 관광객의 발길을 끌어모으려고 박물관 유치와 지원에 적극 나선 결과다. 보보스캇 캠핑장이 위치한 판운리에도 영월화석박물관(033-375-0088)이 있다. 캠핑장에서 1.3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산책 삼아 다녀올 만하다.

영월화석박물관은 장기근(64) 관장이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수집한 화석을 시대와 지역별로 전시해놓은 사립 박물관이다. 이곳에 소장된 화석 1100여 점 가운데는 영월에서 발견된 삼엽충, 암모나이트 등 화석 320여 점도 포함돼 있다. 5억 년 전 영월 일대가 바다였음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연사 유물이다. 살아 있는 화석생물 중 하나인 실러캔스화석, 방금 낳은 듯 생생한 공룡알화석, 대륙이동설을 증명하는 메소사우루스화석 등 세계적으로 희귀한 화석도 적지 않다.

이곳에 있는 화석 가운데 32점은 여러 교과서에 수록되기도 했다. 무게가 50kg이 넘는 운석을 비롯해 상당수 화석과 소장품은 관람객이 직접 만져보거나 들어볼 수 있다. 오감(五感)으로 관람하는 현장학습장인 셈이다. 박물관 규모는 작고 소박하지만, 그곳에서의 여운과 감동은 캠핑장의 낭만적인 하룻밤만큼이나 크게 남았다.

◆ 여행정보

· 보보스캇 캠핑장 이용안내

보보스캇은 펜션을 겸한 캠핑장이다. 가로세로 7×8m 크기 캠핑사이트가 70여 개에 이른다. 사이트가 널찍한 편이라 독립적이고 여유 있게 캠핑을 즐길 수 있다. 캠핑장 사용료는 사이트당 2만5000원이며, 전기사용료 5000원은 별도다. 한 사이트에 작은 알파인용 텐트를 2동 설치해도 사용료는 하나 값만 받는다. 온수가 나오는 샤워장과 개수대가 설치돼 있고, 장작도 판매한다. 겨울철엔 캠핑장 이용객이 많지 않지만, 주말과 휴일에는 가급적 전화로 예약하고 찾아가는 것이 좋다.

문의 및 예약 033-375-1011, www.boboscot.com

· 숙식

겨울밤 별 헤아리며 모닥불 낭만

주천 신일식당의 메밀부침.

보보스캇펜션에는 황톳집, 통나무집, 돌집, 2층집, 유럽형 목조펜션 등 다양한 형태의 독채형 펜션이 10실 있다. 8평형(약 26m2)부터 25평형(약 83m2)까지 크기도 여러 가지다. 비수기 이용요금은 평당 1만 원 선. 강당, 어린이 풀장, 다용도 운동장, 캠프파이어장 등 부대시설도 두루 갖췄다. 판운리 평창강 주변에는 아뜰리에펜션(033-375-7427), 에피소드펜션(010-6247-1165), 사람과자연펜션(033-375-1027), 강변펜션(033-374-8283) 등 많은 펜션이 성업 중이다.

선암마을에서 8km 떨어진 주천면 소재지에는 강원도의 대표 한우 먹거리촌인 영월 다하누촌이 있다. 다하누촌 브랜드를 앞세운 정육점과 음식점 60여 곳에서는 인근 축산농가와 직거래를 통해 도축한 한우를 비교적 저렴한 값에 구매하거나 맛볼 수 있다. 이곳에는 풍류관(033-372-8851)을 비롯해 꺼먹돼지(흑돼지) 전문점도 많다. 주천 꺼먹돼지는 옛 토종돼지처럼 비계가 얇고 고소하며 육질이 쫄깃하다. 묵은김치를 넣어 부친 메밀부침과 메밀로 만든 ‘꼴두국수’가 맛있는 신일식당(033-372-7743)은 주천을 대표하는 맛집으로 첫손에 꼽힌다. 주천면 소재지 외곽에 위치한 주천묵집(033-372-3800)은 소문난 묵밥 전문점이다.

· 가는 길

중앙고속도로 제천IC→38번 국도(영월 방면)→연당 교차로(평창, 단양 방면)→연당교→영월 삼거리(우회전, 영월 방면)→소나기재 정상(선돌)→연당교→들골교→한반도지형 주차장 입구→방울재 삼거리(좌회전, 주천 방면)→한반도면 소재지→주천 사거리(우회전, 82번 국가지원지방도, 평창 방면)→판운리(섶다리, 보보스캇 캠핑장)



주간동아 918호 (p62~64)

양영훈 여행작가 travelmak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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