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10

2013.10.28

허물은 외모가 아니라 마음에 있죠

뮤지컬 ‘날아라 박씨!’

  • 김유림 월간 ‘신동아’ 기자 rim@donga.com

    입력2013-10-28 10: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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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물은 외모가 아니라 마음에 있죠
    재주는 뛰어나지만 천하 박색인 여인이 남편의 사랑 덕에 허물을 벗고 나라를 위해 공을 세운다는 내용의 고전소설 ‘박씨부인전’. 이 이야기를 그저 ‘그 후 모두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정도의 ‘신데렐라 스토리’로 봐야 할까, 아니면 못생긴 여자가 사랑을 찾았으니 영화 ‘슈렉’이나 ‘헤어스프레이’류의 판타지로 봐야 할까.

    뮤지컬 ‘날아라 박씨!’는 박씨 부인이 허물을 벗는 계기와 과정, 그리고 박씨 부인의 변화에 주목했다. 화려한 뮤지컬무대 뒤에서 묵묵히 일하던 스태프가 하룻밤 뮤지컬 여주인공으로 거듭나는 사건을 통해 허물은 외모가 아닌 마음속에 존재하며,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을 존중하는 마음이라고 강조한다.

    뮤지컬 속 ‘날아라 박씨’ 공연 첫날, 뮤지컬컴퍼니 매니저인 여주는 이 작품을 준비한 지난 1년을 돌아본다. 잘난 척하는 연출가와 대본이 촌스럽다며 타박하는 작곡가, 연기력이 떨어지는 아이돌 출신 남자주인공, 앙상블 7년 만에 대사를 얻었지만 무대 울렁증 탓에 고민하는 조연배우 등 말도 많고 탈도 많은 1년이었다.

    그런데 첫 공연 한 시간을 앞두고 ‘대박 사건’이 발생한다. 더블 캐스팅으로 신경전을 벌이던 여배우 두 명이 동시에 목이 쉬어버린 것. 공연 막을 올리지 못할 위기 상황에 한때 가수를 꿈꿨던 여주가 주인공이 돼 무대에 오른다.

    사실 본격 무대를 다룬 2막보다 무대 뒷이야기를 전하는 1막이 훨씬 더 흥미롭다. 꿈 언저리를 맴돌며 가장 화려한 무대를 꾸미는 스태프의 속사정은 평범한 직장인의 고민과 닮아 공감이 간다. 각자의 애환을 리드미컬한 음률에 담아내 경쾌하면서도 짠하다. 뮤지컬을 소재로 만든 작품답게 ‘레베카’ ‘지킬 앤 하이드’ ‘오페라의 유령’ 등 유명 뮤지컬을 적절히 패러디한 장면은 관객의 호응을 얻기에 충분하다. 뮤지컬에 대한 작가와 작곡가의 애정을 흠뻑 느낄 수 있는 장면이기도 하다.



    허물은 외모가 아니라 마음에 있죠
    반면 아이돌 황태경의 공연 장면이나 공연 내용 중 박씨가 청나라 기녀와 도술로 싸우는 장면, 앙상블이 ‘장옷녀’를 소개하는 장면은 지루하게 이어져 아쉬웠다. 대사에서도 나오듯, 이 작품은 병자호란 당시 활약한 박씨가 아니라 박씨의 내면 변화를 다루는 것인 만큼 도술 장면은 짧고 강렬하게 전달해도 충분할 것 같다. 또한 연출가가 “칙칙한 스토리에 ‘브레이트의 소격효과’를 도입하자”며 등장시킨 천사(에인절)는 박씨와 남편 이시백을 이어주는 구실을 하는데, 작품을 풍성하면서도 산만하게 만든다. ‘절제의 미덕’이 필요한 듯하다.

    박씨는 깨닫는다. 사랑받지 않아도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을. 돈, 평판, 성공…. 많은 욕심이 눈을 가리지만, 마음속 짐을 덜어내면 마음속 공명이 오직 나 자신을 위해서만 울리고, 그 안에서 나는 최고의 노래를 부를 수 있다. 여주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지만 오늘은 어제와 같지 않다.

    커튼콜에서 혼자 박수를 받지는 못하지만 꿈이 있어 행복하고, 더 행복할 날을 위해 노력하는 많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11월 25일까지, 서울 이화여대 삼성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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